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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이 2000억 매출…AI가 만든 '초경량 유니콘'의 시대 [정혜진의 라스트컴퍼니]

커서, 미드저니 등 AI네이티브는 무엇이 다른가

AI네이티브 스타트업의 새로운 성장공식

AI로 프롬프트-자동화-최적화 '린 2.0'열렸다

/챗GPT 4o




직원 1인당 400만 달러(약 54억원) 매출이라는 놀라운 생산성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2023년 말 갓 50명이 된 팀이 일년 간 만들어 낸 매출은 2억 달러(약 27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까지만 해도 직원 수가 11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해 1인당 매출(PRE)는 가장 보수적으로 잡아도 400만 달러가 넘는다. 그해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PRE가 2023년 103만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생산성을 짐작할 수 있다. 괴물같은 생산성은 낸 이 기업은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생성 플랫폼 미드저니(Midjourney)다. 2021년 8월 연쇄 창업자인 데이비드 홀츠가 설립한 미드저니는 AI를 기반으로 태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하는 ‘AI 네이티브’ 기업의 시대를 알렸다.

데이비드 홀츠 미드저니 창업자가 디스코드 커뮤니티에 1000만명이 넘는 인원이 있어서 더 이상 이용자 수를 세기 어렵다는 내용의 화면을 갈무리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 /홀츠 X계정 갈무리


50명의 직원이 확보한 커뮤니티 이용자 2000만명


당시 10명의 엔지니어 팀과 함께 창업을 했을 때도 홀츠의 명성을 믿고 투자하려는 실리콘밸리 거물 벤처캐피털(VC)이 줄을 섰지만 모두 투자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VC가 추구하는 성장론이 회사의 진정한 성장에 있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독자적 행보를 걷던 홀츠는 다음해 2월 디스코드 서버를 대중에 공개하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커뮤니티의 충성도가 독보적이다. 지난해 9월 기준 디스코드 커뮤니티 이용자를 2090만명 확보했다. 하루 평균 미드저니 디스코드 채널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만 120만명에서 250만명 사이를 오간다. 131명이라는 소수의 팀은 개발자들을 비롯해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인력들로 상당수 구성돼 있을 정도다. 일부 파워 유저는 자발적으로 직원 이상의 애정을 갖고 활동하며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높다.

미드저니로 생성한 이미지들 /미드저니 홈페이지 갈무리


AI 네이티브가 만드는 린 스타트업 2.0 시대


AI 네이티브 기업의 등장은 이처럼 지난 수십년 간 확립된 스타트업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쓰고 있다. AI 네이티브 기업은 AI를 그저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태생부터 모든 조직 설계와 의사결정, 제품 개발의 근간을 AI 위에 구축한 기업을 말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이 이들 기업은 AI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성장한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플랫폼 상에서 로블록스 친화적인 문법으로 게임을 접한 이들이 ‘로블록스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것과 유사하다. 전통 기업이 AI를 ‘활용’한다면, AI 네이티브 기업은 AI와 ‘공생’한다.

이들의 창업 과정에서 기존 방법론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 중 하나가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다. 린 스타트업은 최소 기능 제품(MVP)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출시하고 이후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법론이다. 에릭 리스가 이 방법론을 대중화한 2010년대 초만 해도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린 스타트업은 일종의 바이블이 됐다. 핵심은 빠른 실행-학습-개선의 피드백 루프로 창업팀들의 ‘속도전’이 중시됐다. 하지만 AI 기술 속에서 태어난 ‘AI 네이티브’ 기업의 창업팀들에는 ‘속도전’을 실행할 또 다른 공동 창업자가 있다. 바로 잠들지 않는 공동창업자라고도 불리는 AI로, 피드백을 빠르게 수집하고 자동으로 제품 원형(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용자 데이터를 학습해 개선 방향을 제안한다. 이들이 발전시킨 린 스타트업 2.0은 제품 개발(Build)- 측정(Measure)- 학습(Learn) 대신 ‘요청(Prompt)-자동화(Automate)- 최적화(Optimize)’로 바뀌고 있다.

커서 서비스를 만든 애니스피어의 공동 창업자 /챗GPT 4o


코파일럿 네이티브가 만든 AI코더


‘깃허브 코파일럿’ 네이티브로 꼽히는 세대들이 창업한 회사 애니스피어(Anysphere)의 사례도 눈여겨 볼만 하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대학생 네 명은 2021년 깃허브 코파일럿을 접하고 신세계가 열린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후에 사용자 경험에 진전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직접 AI 기반 코드 에디터인 ‘커서(Cursor)’ 서비스 개발에 뛰어든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마이클 트루엘은 십대 때부터 코딩 신동으로 불렸다. 2022년에 창업을 위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둔 그는 코드 자동 완성 도구가 아닌 개발자의 사고 과정을 확장하는 AI 코더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들 역시 엑스(옛 트위터) 등에서 이용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용자 속에서 구축한다(Building in Public)’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2024년 말 연간 반복 매출(ARR)이 1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린 스타트업’을 극단적으로 실현했다. 이들은 제품이 만들어지고 이용자들이 모일 때까지 추가적인 직원 채용 없이 4명의 창업팀으로만 움직였는데 초창기 직원을 뽑은 과정도 흥미롭다. 공동 창업자인 아만 상어는 “사용자들이 만든 코드를 리뷰할 수 있다 보니 가장 훌륭한 코드를 작성한 이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들 중에서 두 번째 직원을 채용할 수 있었다”며 커서가 가장 훌륭한 엔지니어들과 일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존 기업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소수 정예’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커서의 조직은 흔히 ‘디지털 스파르타’라 불린다. 팀원 수는 적지만 각자가 창업자에 준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 팀 내부에는 전통적인 관리 계층이 거의 없다. 모두가 제품을 만들고 고객과 소통하며 전략을 짠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빨리 실험하고 빠르게 버리기’다. 이들은 코드나 기능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험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신속히 방향을 튼다.

/사진 제공=코펜하겐대학교


린 스타트업 2.0의 핵심 조건


AI 네이티브 기업의 공통점은 단순한 기술 사용을 넘어 AI를 기업 운영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기존의 린 스타트업 원칙을 계승하면서도 그 위에 AI 기반의 새로운 작동 방식을 덧입혀 전례 없는 속도와 생산성을 실현하고 있다. 그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AI는 '도구'가 아니라 '동료'다. 단순히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AI는 사용자와의 대화 속에서 맥락을 파악하고 창의적인 제안을 하며, 결정까지 돕는 협력자로 기능한다. 개발 현장에서는 AI가 코드의 문맥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수정을 제안하고 디자인 현장에서는 AI가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학습해 새로운 창작물을 공동 제작한다. 상어 애니스피어 공동 창업자는 한 대담에서 “AI에이전트는 최종적인 형태가 아닐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AI가 동료 이상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초경량 팀이 초고속으로 실행한다. 미드저니와 커서처럼 창업 초반 10명 안팎의 창업팀만으로 수백억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구조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AI를 조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삼으면서 '직원 수 증가율 = 성장률'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각 구성원은 AI 모델 수십 개의 도움을 받으며 '슈퍼휴먼'처럼 압도적인 속도와 효율을 낸다.

셋째, 피드백 루프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는 사용자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제품 개선 방향을 제안하며 반복 테스트를 자동화한다. 미드저니는 디스코드 채널에서 수집된 이미지 평가 데이터를 모델 개선에 활용하고, 커서는 사용자 로그 분석을 통해 기능 업데이트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를 통해 다른 빅테크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고유한 데이터와 경쟁 우위를 갖게 된다.

넷째, 모든 것을 하려 하지 않는다. AI 네이티브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고 파고들 수 있는 분야에 깊이 집중한다. 커서는 VS Code 사용자를 중심으로 개발자의 경험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고, 미드저니는 예술성과 이미지 생성의 창의적 인터페이스에만 몰입했다. 이처럼 명확한 사용자 정의와 특화 전략은 기술력 이상의 ‘집중의 힘’을 통해 시장 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모든 것을 하려 하지 않고, 특정 타깃에게 강력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이 성공을 견인한다. 이는 동시에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로도 이어져 ARR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챗GPT 4o


린 스타트업은 더 이상 창업팀이 스스로를 갈아 넣어 MVP 하나를 장인 정신으로 갈고 닦아 버텨내는 생존 전략이 아니다. AI를 막강한 전력으로 삼고, 속도와 효율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린 2.0’은 단순히 작은 조직이 아닌, ‘24시간 잠들지 않는 실험실’에 가깝다. 조직의 크기는 작아도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빅테크보다 큰 AI 시대, 회사의 크기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중요한 건 ‘얼마나 더 많이 뽑느냐’가 아니라 ‘AI와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다. 작지만 빠르고, 깊지만 유연한 조직이 기업의 생존 공식을 다시 쓰고 있다. 이것이 린 스타트업 2.0은 이미 시작됐다.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어도 조직은 복제할 수 없다.”

회사를 키웠지만 문화를 남기지 못해 아쉬워하는 창업자가 많습니다. 문화가 없는 조직은 구성원의 입장에서도 큰 아쉬움입니다.

진짜 조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오래가는 기업은 어떻게 다른가’를 다각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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