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금리 차가 다른 나라보다 벌어져 있지 않나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첫 회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경제부처 차관급과 실무자를 한데 모은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예대금리 문제를 불쑥 꺼냈다. 은행들이 예대금리 차를 과도하게 벌려 수익을 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취지였다. 이 대통령의 질의에 금융위는 “해외 금융사와 비교하면 예대금리가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비상경제점검 TF 첫 회의에서 예대금리 문제를 꺼내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 축소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내세웠던 상황에서 은행권을 향한 상생 압력이 더 커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대출금리에서 예금 금리를 뺀 예대금리는 은행의 수익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기준금리 인하기에는 대출금리가 예금 금리보다 빠르게 내려가 은행의 수익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하락에도 예대금리 차가 더 벌어지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예대금리 차는 1.48%포인트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조정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1.30%포인트)보다 더 벌어졌다. 이에 여당을 중심으로 은행들이 대출금리에 가산금리를 붙여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금융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질의를 두고 은행의 초과 수익과 금리 산정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은행이 대출 가산금리 산정 시 각종 출연금 등의 법적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은행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항목을 대출금리에 반영한 은행 임직원에 1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는 처벌 규정 도입까지 예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1일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경제대책 회의인 만큼 통상 현안이나 채무 조정처럼 당면한 현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봤는데 예대금리 문제를 거론해 놀랐다”면서 “대통령이 은행 대출금리 산정 문제를 그만큼 무게 있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이 국내은행의 예대금리가 해외와 비교해 높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만큼 대출금리를 일방적으로 조정하지는 않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7~2021년 평균 기준 싱가포르(5.11%), 홍콩(4.98%), 스위스(2.98%), 노르웨이(2.18%) 등 주요 국가의 예대금리는 한국(2.01%)보다 높다.
예대금리를 반영하는 순이자마진(NIM)을 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의 평균 NIM은 지난해 말 기준 1.57%다. JP모건체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BofA)·씨티·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의 평균 NIM(2.4%)보다 0.83%포인트 낮다.
시장에서는 은행권이 예대마진과 각종 비용을 낮추더라도 결국은 다른 경로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혜택이 축소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금리 산정 방식을 세밀하게 뜯어보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사회 공헌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채무 조정 재원 확보 방안도 함께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는 재정만으로 채무 조정 비용을 감당하기 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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