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사 하단에 있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핵심 의제가 담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이 입법 과정을 모두 마치고 법률로서 공식 효력을 갖게 됐습니다. 이 법은 감세와 국방. 복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가장 논란이 뜨거운 것은 전기차와 태양광∙풍력 대상 세제 지원 축소를 핵심으로 한 에너지 분야이죠.
아무래도 ‘크고 아름다운 법’이 국내 전기차와 태양광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관련 뉴스들도 국내 영향 위주로 전달된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 외에도 이 법은 에너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법을 둘러싼 논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중국 좋은 일?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 외신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비판은 ‘크고 아름다운 법’이 결국 중국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법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 첨단제조세액공제(AMPC)와 청정전기투자세액공제(ITC)의 경우 일단 기존과 동일하거나 큰 차이 없게 유지하고, 중국산 제품 사용을 견제하는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을 두는 등 완충 장치를 두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전기차와 태양광∙풍력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크게 축소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즉 청정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보조금 등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낮추는 자충수라고 우려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중국이 청정 산업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크고 아름다운 법’이 중국에 에너지 주도권을 내어준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비판마저 나옵니다.
그러나 중국의 청정 산업이 탄탄대로만 걷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중국 전기차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계속 높이고 있지만, ‘제 살 깎아먹기’식의 심각한 저가 경쟁에 처해있는 것 또한 사실이죠. 최근 중국 전기차 대표주자 비야디(BYD)가 재고가 쌓여 일부 감산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태양광∙풍력 산업 역시 과잉 공급 탓에 수익성 악화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에 상장된 태양광 제조사 121개 가운데 3분의 1이 현재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의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 브랜드 129개 가운데 불과 5년 뒤인 2030년까지 재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은 15개에 불과할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전망을 최근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중국의 청정 산업도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AI發 전력 수요 팽창’ 영향은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로 미국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 역시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를 비판하는 주요 근거입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들이 정부 지원이 깎이는 만큼 늘어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말이죠. 미국의 에너지 싱크탱크 에너지이노베이션은 ‘크고 아름다운 법’ 여파로 향후 10년 동안 미국이 신규로 공급할 수 있는 전기량이 총 344GW 규모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전기 용량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재생에너지 활용도가 높아지는 상황인 만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은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재생에너지 위축, 이로 인한 발전비용 전가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전기요금 인상은 애초부터 불가피하다는 지적은 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보편화 함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전기 수요가 그 배경입니다. 미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올 5월 기준으로 전기요금은 1년 전 대비 4.5% 증가했는데, 이는 상품∙서비스 인플레이션율의 2배 수준입니다.
수요 급증에 따른 발전소, 송전망 투자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요. 제프리스 투자은행에 따르면 미국 유틸리티(발전) 업계의 자본 지출은 올해 2121억 달러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22.3%, 10년 전보다는 129%나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리하면 ‘크고 아름다운 법’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수요가 이끄는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화석연료 ‘제패’ 노리는 美… 결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드릴, 베이비 드릴(원유∙가스 시추 확대)’을 기치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우위 전략을 추구하는 것에 ‘크고 아름다운 법’의 기본 인식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연재 기사: 석유 VS 전기… 美·中 ‘에너지 충돌’ (feat. 유가 전망)> 결국 ‘크고 아름다운 법'은 청정 에너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전략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후변화를 넘어 위기의 시대, 화석연료를 앞세운 에너지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모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 자원에 대한 전략 측면에서도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약 80%가 여전히 화석 연료로 충족되고 있습니다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이면 이 비중이 6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1위국일 정도로 화석연료가 풍부한 미국이 중국의 ‘재생에너지 굴기’ 전략을 답습하는 것이 과연 유리한 전략인가, 이런 측면에서도 ‘크고 아름다운 법'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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