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최고 체감온도는 31도 이상으로 어르신, 영유아와 같은 취약인에 대한 폭염 영향예보가 주의 단계로 예상돼요.” 둔탁하게 생긴 일반 스피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후 6시가 되자 알람 소리와 함께 “기상청의 폭염 영향 예보를 알려드릴게요”라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루에 두 번 기상청 폭염 정보를 어르신에게 전하는 노인돌봄 인공지능(AI) 스피커 얘기다.
7월 초부터 전국 곳곳에서 40도가 넘는 극심한 폭염이 찾아오며 노인 온열질환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가 AI를 이용한 노인 돌봄 체계 마련에 나섰다.
9일 기상청은 디지털 시니어 케어 서비스 업체인 마크노바와 협업해 노인돌봄 AI 스피커에 폭염 영향예보 음성전달 시스템 탑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된 폭염 영향예보 음성전달 시스템은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AI-사물인터넷(IoT)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사업 디바이스를 이용한다. 지난해 제주 북부에서 약 100가구에 시범 도입한 뒤 만족도 91%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자 전국 약 4000가구로 확대했다.
이 시스템은 어르신의 위치 정보를 파악한 뒤 해당 지역의 폭염 정보를 안내한다. 안내 시간은 하루에 두 번, 정오와 6시다. 더운 정도에 따라 어르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맞춤형 대응 요령도 전달한다. 특히 체감온도 37도 이상인 날이 하루 이상 지속돼 ‘위험’ 단계에 도달하면 대응 요령 안내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기상청은 마크노바와 올 3월부터 협업해 3개월 만에 시스템 개발을 마쳤다. 마크노바는 무상으로 기술 개발을 도왔다.
기상청의 이 같은 행보는 점점 빨라지고 심해지는 폭염과 얽혀 있다. 서울에서는 사상 최악의 더위를 기록했던 지난해보다도 18일이나 이른 7일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열대야도 열흘 연속 이어졌다. 8일 낮 최고기온은 37.8도까지 치솟으며 7월 상순 일일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온열질환을 앓는 사람도 늘어났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 15일부터 이달 7일까지 97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가 60대(19.2%)였다.
불볕더위에 서울시도 AI를 이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고독·고립 해소 컨트롤타워인 서울시 돌봄고독정책관 고독대응과는 IoT 기기로 비대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취약어르신 안전관리 솔루션 사업’에 AI를 접목시키는 실증 사업을 다음달까지 시행한다.
서울시는 기기가 설치된 약 1만 3070가구에서 모은 빅데이터를 활용, 어르신들의 생활 패턴을 4단계로 분류해 AI에 접목했다. 예산상 이유로 IoT가 설치되지 않은 노인 취약계층 가구에서도 스마트폰으로 AI를 실행시키기만 하면 AI가 자동적으로 어르신의 생활지수를 분석한다. 만일 생활 지수가 60점 이하로 떨어지면 AI는 어르신에게 자동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품질검사 결과 AI 정확도는 98.86%에 달했다고 한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이용자 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생활지원사나 돌봄기관 종사자가 쉬는 야간·주말에는 위급 상황에서도 공백이 발생하기 쉬운데, AI를 이용해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값비싼 IoT 설치도 AI로 대체할 수 있다. 관악·금천구 2개 자치구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 서울시는 장차 노인 취약계층의 약 40%까지 모니터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AI를 통해 어르신의 생활상을 긴밀히 파악해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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