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에서는 매년 초 1000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모이는 지역 최대 행사가 열린다. 바로 고령새마을금고의 정기총회다. 전체 인구 2만 9914명 중 약 40%(1만 1588명)가 65세 이상인 고령에서 금고 행사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오전부터 모든 자리가 들어찰 정도로 인기가 많아 지역 정치인들도 꼭 빼놓지 않고 찾는 행사가 됐다. 총회가 끝난 뒤에는 지역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권이 제공돼 활기가 없던 읍내도 들썩거린다. 금고 총회가 주민 교류의 장을 만들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소멸 위험지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주민이 고령금고를 찾는 배경에는 ‘회원제 총회’ 조항이 있다. 대부분 대의원제를 택하고 있는 다른 금고들과 달리 고령금고는 모든 회원들이 총회에 직접 참여하는 회원제 총회 조항을 1972년 12월부터 유지하고 있다. 50년 넘도록 금고 회원인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고령 내 그 어떤 곳보다 지역 주민과 유대 관계가 두터운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화 고령새마을금고 이사장은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새해가 밝으면 지역 어르신들이 ‘올해 총회는 언제 하느냐’고 먼저 물을 정도로 금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다”며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삶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회는 단순한 운영 보고를 넘어 지역 교육 기능도 수행한다. 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하거나 지역 상품권과 같은 지방자치단체 사업의 변경 내용 등을 안내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 알려주기 힘든 부분을 금고가 해결해주는 것이다.
고령금고가 이처럼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데는 누구보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김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고령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웃의 얼굴, 가족사, 집 구조까지 알고 있을 만큼 지역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며 “금고를 단지 예금과 대출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이사장은 고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어르신들이 쓰기 쉬운 금융’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교통이 불편한 회원을 위해 지점 축소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점별로 시니어금융지원단을 배치했다. 장날이면 시장으로 직접 나가 상인들의 잔돈 교환과 입금 처리를 돕는다.
MG고령파크골프아카데미도 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9기까지 총 137명을 배출했으며 대부분의 수료생들이 MG고령파크골프클럽에 가입해 전국 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끈끈한 유대 관계 덕분에 인구가 빠르게 줄어가는 와중에도 고령금고의 자산은 더욱 늘었다. 2020년 김 이사장 취임 이후 고령금고의 자산은 300억 원 넘게 증가해 농촌 금고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말 현재 고령금고의 자산은 1239억 원이며 연체율 3.88%, 순자본비율은 8.11%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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