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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에 美 로비스트 수요 폭증…다시 황금기 맞은 'K스트리트'

MAGA 인맥 연결 회사 문전성시

1분기 주요 로비업체 매출 급증

국내기업 지출액도 매년 눈덩이

9(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K스트리트에서 인근 사무실 종사자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워싱턴=이태규 특파원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세 블록 떨어진 거리. 일명 ‘K스트리트’라고 불리는 길이 6.4㎞의 거리에는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에도 오피스 종사자들이 거리를 오가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유명 로비 업체들과 로펌, 컨설팅 기업들이 밀집해 ‘세계 최대 로비 시장’으로 불리는 일명 ‘로비의 월스트리트’인 셈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와 인맥이 모인다는 K스트리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로비단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관세 등으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외국 정부 및 기업들의 로비스트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스트리트의 황금기 도래는 수치가 말해준다. 10일 비영리 정치자금 감시단체 오픈시크릿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로비 업체들은 관세 관련 업무가 급증했다. 올 1~3월 로비스트들은 관세 관련 215개 고객을 대리했다. 지난해 관세 관련 고객이 120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 폭이다.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는 올 1분기 로비 부문 수입(매출)이 164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75%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에이킨검프의 로비·공공정책 실무 공동 책임자인 브라이언 폼퍼는 “관세와 무역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기업들이 워싱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만들었다”며 “20년 로비 경력에서 이렇게 바쁜 적이 없다”고 전했다. 팸 본디 법무장관이 일했던 발라드파트너스도 1분기에 고수익을 달성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 로비 회사는 1분기 1400만 달러를 벌어 들여 2024년 1분기 대비 225% 신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로비의 힘’이 최근 미국 상하원을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한 감세법안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워싱턴 소재 로펌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감세법에는 반도체 세액공제가 기존의 25%에서 35%로 오히려 늘었고 배터리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일몰 시점도 당초 우려보다 크게 앞당겨지지 않았다”며 “유관 기업들이 로비를 통해 지역구에 해당 공장이 있는 의원들에게 접촉을 한 결과”라고 짚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뜨고 있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들은 로비 계약을 맺으려는 세계 기업 및 정부 기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10년 이상 근무했던 머큐리퍼블릭어페어스는 ‘그린란드 이슈’로 골머리를 앓는 덴마크와 4개월 26만 3000달러의 홍보 계약을 체결했다. 트럼프의 운하 회수 위협에 노출된 파나마도 트럼프 취임 3일 전 BGR그룹의 로비 팀에 월 20만 5000달러 이상을 지급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소재 로펌 관계자는 “트럼프 이너서클(핵심층)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유력한 인맥이 있는 회사의 계약 단가는 이전보다 2배 가량 올랐다”고 귀띔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외교를 ‘거래(Deal)’로 접근하는 성향을 보이면서 로비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정책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 로비를 안 하면 그런 측면에서 불리한 결과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간 공식 채널도 중요하지만 민간을 통한 우회적 접근 역시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미 로비 비용도 불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4대 그룹의 로비 지출액은 지난해 총 26억 달러(약 3조 5600억 원)에 달했다. 삼성이 7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SK 5억 6000만 달러, 한화 3억 9000만 달러, 현대차 2억 3000만 달러 순이었다. 최근에는 미 행정부 전관들을 잇따라 영입하며 로비망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로비 자체가 법으로 금지돼 있어 전문 인력이나 대응 사례가 충분히 축적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돈만 많이 쓸 뿐 전략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온 이유다. 자금력과 정보가 부족해 적절한 로비회사를 찾고 관련 부처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로비 회의론도 나온다. 워싱턴 소재의 한 단체 관계자는 “마가 세력 등 미국의 풀뿌리 유권자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이 로비 회사보다는 정통 지지층이나 일반 유권자의 목소리에 이전보다 더 목소리를 기울이고 있는 점이 로비 회의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로비] 年43억불 '거대 산업' 美로비…韓선 불법
1만3000명 로비스트 활약중
정책 논의 공무원→로비스트
'회전문' 시스템 문제 제기도
韓 몇차례 논의 불구 제도화X




미국 로비제도는 1792년 버지니아주 퇴역군인이 의회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교섭 담당자를 고용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230년간 발전해 현재 연간 43억 달러 규모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로비 활동은 수정헌법 1조의 '청원권'에 의해 보호받는다. 1938년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1995년 로비활동공개법(LDA) 등을 거쳐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 내역 공개가 의무화됐다. 현재 1만3000여 명의 로비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K스트리트'라는 명칭은 워싱턴 D.C. 백악관 북쪽 3블록에 위치한 6.4km 도로에서 유래했다. 1930년대부터 이 거리에 로비업체들이 집중되면서 '로비의 월스트리트'로 불리게 됐다.

미 로비제도를 관통하는 특징은 일명 '리볼빙 도어(회전문)' 시스템으로 정부 고위직과 로비업계 간 인재 이동을 의미하는 한다. 미국 정부감시프로젝트(POGO)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국방부 출신의 전직 고위 관료 36명이 주요 방산 민간 기업으로 이직했으며 일부 인사는 자신이 계약을 주도했던 무기 체계의 수주 기업으로 곧바로 이동했다. 이해충돌에 대한 지적이 확산하면서 공직자가 퇴직 후 일정 기간 관련 기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쿨링오프(cooling-off)’ 기간을 현행 1~2년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한국에서도 과거 로비스트 제도화 몇 차례 논의됐으나 합법화까지 성사되지는 못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시절 국회제도개선위원회가 “로비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며 정치개혁 과제로 제시했고, 2007년에는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와 법무부가 관련 법 개정작업에 착수해 국회의 관련법 발의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2015년 법무부의 용역 보고서에서도 “국민 청원권을 보장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로비스트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거대 기업 및 단체의 목소리만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는 지적과 관련 업계의 반발, 국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제도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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