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당국이 올봄 닷새에 한 번꼴로 국내 원자력발전소에 출력제어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봄이 되면 전력수요가 연중 최저치에 가까워지는데 일조량은 늘어 태양광발전량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태양광발전소 밀도가 높은 전남의 한빛원자력발전소가 주요 출력제어 타깃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봄철 원자력발전소 출력제어 현황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2025년 봄철 경부하기(3월 1일~6월 1일) 93일 중 19일간 원전에 ‘감발(발전량 감소)’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만 해도 단 한 차례의 감발이 없었지만 올 들어 강제 조치가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원전은 24시간 정격 용량으로 가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며 “제어 조치가 잦아지면 장비에도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출력을 제한하는 일이 전력 수요가 부족한 봄·가을철마다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전체 발전설비에서 분산형 전원인 태양광발전소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수요에 유연히 대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에 비해 송전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도 원전 감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태양광발전소의 발전량을 다른 시간대로 분배할 수 있도록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특정 지역에 쏠린 재생에너지발전량을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송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 당국은 2025년 봄철 경부하기 대책 기간(3월 1일~6월 1일)에 사실상 매 주말마다 원전 감발 조치를 시행했다. 원전은 가급적 24시간 최대출력으로 가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일 최대 전력 수요가 40GW를 밑도는 봄철 주말에는 견디지 못하고 원전 출력을 줄인 것이다.
전력거래소가 3~5월 각 원전에 지시한 총감발량은 6만 45㎿h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원자로당 한 번에 적으면 20~30㎿, 많으면 300㎿씩 총 346.22시간의 출력을 제한한 결과다. 설비용량 1.4GW 대형 원전 1기가 약 43시간 동안 생산할 전력을 강제로 줄인 셈이다. 감발 대상이 된 원자로 수는 본부별로 2~3개씩 총 12기였다.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26기)의 절반 가까이가 잦은 감발에 시달렸다는 의미다.
전력 수요가 예상한 수준보다 더 떨어진 까닭에 추가 감발을 염두에 두고 이틀 이상 연속으로 감발 대기 상태를 유지한 날 또한 8일에 달했다. 연휴가 아닌 평일에 감발 조치가 내려진 날도 △3월 28일 △4월 1일 △4월 3일 △4월 28일 등 네 차례로 확인됐다. 3월 말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린 산불이나 송전 장비 이상으로 인한 출력제어는 헤아리지 않은 것이어서 실제 전국 원전의 감발 실적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원전 감발은 연휴가 1주일 가까이 이어지는 설·추석 연휴에만 집중돼왔다”며 “경부하기라 해도 쉬지 않는 평일에 원전의 발전을 제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20~2024년 봄철(3~5월)에 원전을 감발한 횟수는 2020년 한 차례, 2023년 다섯 차례에 그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던 경부하기 원전 감발이 올해 들어 갑자기 상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체 생산 가능한 전력 대비 감발량을 뜻하는 제어율은 2023년 0.0388%에서 올해 0.1201%로 2년 만에 3.1배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의 감발이 태양광발전소 비중이 높은 전남 일대에서 현저하게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태양광발전량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를 다른 지역으로 보낼 송전망은 부족해 결국 원전 출력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 전력거래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봄철 경부하기 동안 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한빛원자력발전소의 출력제어량은 2만 2098㎿h로 전체 제어량의 36.8%를 차지했다. 한빛1·6호기에는 봄철 경부하기 대책 기간이 시작하기 전인 2월 22~23일에도 감발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남 지역에서는 봄·가을철 한빛원전이 출력을 줄이지 못하면 태양광발전소가 가동을 못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 지 오래”라며 “사실상 더 이상 낮추면 안 되는 수준까지 감발하며 전력망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감발 조치를 자주 실시하면 원전 설비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원전은 설계 단계에서 대규모 감발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지속적인 원전 감발이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재생에너지를 꾸준히 늘려도 무탄소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 또한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정부 방침대로 태양광·풍력발전소를 확대해도 2042년 재생에너지발전소는 철강·석유화학·반도체·데이터센터 등 4대 에너지 다소비 산업 전력 수요의 93%만 충족시킬 수 있다. 완전 충족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무탄소 전력은 약 21.4TWh로 지난해 서울시 전력 소비량의 절반에 달한다. 한경협은 “글로벌 기업들은 무탄소 전원 사용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며 “전력구매계약(PPA)으로 조달할 수 있는 전력원에 원전을 추가하면 초과 수요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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