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의 칼날이 명품업계를 향하면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미국 텍사스에 미국 내 두번째 루이비통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유럽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로 미국과의 무역 협상 타결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아르노 회장은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2027년 초까지 텍사스 댈러스 인근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그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재임 당시 같은 지역에 첫 공장을 열었다. 이번에도 ‘현지 생산 확대’라는 카드로 관세 회피에 나선 모양새다.
공장 신설은 단순한 투자 확대가 아니라, 관세를 무기로 삼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당시에도 LVMH는 가죽제품과 샴페인 등 고율 관세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다만 첫 공장은 운영 상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노 회장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정상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미국과 일본 간 무역합의에 준하는 타결을 지지해달라고 설득해왔다.
실제로 미국-EU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유럽 정상들의 입장이 협상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르노 회장은 또 프랑스의 포도밭에서 이탈리아의 가죽제품 공방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수만 명을 고용한 대형 고용주로서, 유럽의 지도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도 직접 접촉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부동산 업계에서 인연을 맺은 이후 30년 넘게 개인적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다. 2016년 대선 직후 아르노 회장은 트럼프타워를 가장 먼저 방문한 해외 기업인 중 한 명이었다. 루이비통 매장들 일부는 트럼프 소유 부동산에 입점해 있기도 하다.
아르노 회장은 인터뷰에서 “무역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쓰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해법 마련에 열린 자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내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30% 고율 관세를 앞두고, 미국과 EU가 막판 합의에 이를 가능성에 대해선 “적당히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아들 앙투안 아르노는 지난달 파리 비바테크 박람회에서 수년간 빠지지 않던 부친이 불참한 이유를 설명하며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최근 외교관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의 모든 외교적 노력의 배경엔 실적 위기론이 자리하고 있다. LVMH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4% 감소한 195억 유로를 기록했다. 특히 이익의 핵심인 패션·가죽 부문 매출은 9% 줄어 시장 기대치도 밑돌았다. 올 초 프랑스 시총 1위 자리를 에르메스에 내준 뒤로, 아르노의 리더십 역시 시험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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