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은폐 혹은 신고하지 않고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다가 적발된 사례가 최근 5년여간 23만여 건에 달했다.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치료비를 국민이 납부한 건보료로 부담해 건보 재정이 328억 원 누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공단이 적발한 산재 은폐·미신고 건수는 23만 6512건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4만 3000건 꼴로, 이 기간 건보 재정에서 부당하게 지급된 액수는 약 328억 원에 달했다. 2020년 2만 9734건에서 지난해 4만 8020건으로 4년 동안 61.5%나 늘었다. 같은 기간 적발된 액수도 45억 원에서 61억 원으로 34.8% 증가했다. 실제 상차작업 중 추락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27일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산재 사실을 숨긴 탓에 산재보험이 아닌 건보에서 치료비 3008만 원을 부담하기도 했다.
건보공단은 의료기관의 건보 청구 건 중 산재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을 경우 개별적으로 재확인해 산재 은폐·미신고를 적발한다. 공단은 적발한 뒤 산재 처리를 하게 하고, 이미 건보에서 지급된 진료비는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환수한다. 적발된 사례 중엔 노동자가 산재로 판단하지 않고 일반 진료를 받은 일도 있지만, 사업주가 이에 따른 행정·사법적 조치나 보험료 할증 등 불이익을 피하려고 산재 처리를 하지 말 것을 종용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주들은 산재 신고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이같은 방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업무상 사고로 산재가 발생하면 빈도에 따라 사업장의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갈 수 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특별 근로감독을 받을 수도 있다. 건설사의 경우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제도(PQ) 점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산재 처리를 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치료비 전액이나 휴업급여 등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건보에서는 지급하지 않아도 될 치료비가 지급된다. 건보공단이 2018년 서울대에 의뢰한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에 따르면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금액이 연간 최소 277억 원에서 최대 3218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적발 금액보다 최대 52.7배나 많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에 엄벌을 지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이를 감추기 급급한 실정”이라며 “정부는 자료 연계에 따른 사후 적발 외 대안을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의료기관 진료 시 산재와 건강보험을 즉각 구분하는 등 시스템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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