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정년 퇴직한 영업직 근로자의 재고용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 인력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숙련된 인력을 판매 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려는 취지다.
12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는 내년부터 정년을 맞은 영업직 근로자에 대한 재고용 기준을 완화한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숙련재고용제’ 기간을 최대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데 합의하고 영업직 숙련 재고용의 세부 운영 방안에 대한 후속 논의를 진행해왔다. 숙련재고용제는 만 60세인 정년 퇴직자를 최대 2년간 촉탁 계약직 신분으로 재고용하는 것으로 영업직·기술직(생산직)·정비직에 한해 시행하고 있다.
핵심은 분기 단위인 재계약 기간을 늘리고 재계약 조건인 판매 실적의 이월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분기별로 6대 이상(월 평균 2대 이상) 판매한 영업직 근로자에 대해서만 재계약해 다음 분기에도 계속 근무하도록 했는데 내년부터는 반기 단위로 재계약을 진행한다. 즉 퇴직자는 한번 재계약으로 6개월간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 받게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영업직 근로자의 직무 특수성을 고려해 별도 노사 협의를 거쳤고 최근 이같은 구체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재계약을 원하는 영업직 정년 퇴직자는 반기 동안 최소 12대의 차량을 판매해야 한다. 기준을 넘어 13대 이상 판매한 퇴직자는 재계약한 이후로 초과 판매분(최대 5대)을 이월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반기에 14대를 판 정년 퇴직자는 최소 기준(12대)을 초과한 2대 판매 실적을 하반기에 인정받아 10대만 판매해도 재계약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름 휴가철 등 비수기를 피해 판매 실적을 최대한 채우는 방식으로 정년 퇴직자의 재계약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숙련재고용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국내 노동 시장에서 노사 모두 ‘윈윈’하는 대안으로 주목 받아 왔다. 정년 퇴직자는 본인 희망에 따라 최대 2년을 더 일하며 생계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회사도 적은 비용으로 숙련 인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재고용된 인력에게 신입사원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노조는 재고용을 넘어 근로자 정년 자체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사측에 제시한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에는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해 만 64세까지로 연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년 연장을 공약한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협상 테이블에서 노조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주 4.5일제 도입과 임금피크제 폐지도 함께 요구하면서 노사 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계는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급격히 오르는 임금 체계에서 정년 연장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 정부의 고관세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정년 연장으로 늘어난 비용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결국 신입 채용 축소와 차량 판매가격 인상 등으로 청년층과 일반 소비자들이 피해를 떠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임금 체계 개편 없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최대 30조 2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청년층 90만 20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부터 임금 체계를 개편해 연공성을 대폭 낮추면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65세까지 재고용 등 고용 확보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했다”며 “임금체계 개편 없는 일률적인 정년 연장은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을 줄이고 세대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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