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미 통상 현안에 힘을 보태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3월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첫 외부 일정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15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출장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내년 사업 준비하고 왔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구체적인 성과나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낀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지난달 29일 미국으로 떠난 이 회장은 현지에 머물며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특히 실리콘밸리를 찾아 미국 내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언급한 "내년 사업 준비"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경제계에서는 이번에도 '이재용 세일즈'가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이 회장이 중국 비야디(BYD) 본사를 찾은 이후 삼성전기가 대규모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공급 계약을 따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 출장 기간 삼성과 글로벌 기업 간의 굵직한 계약 소식이 잇따랐다. 출국 직전에는 테슬라와 23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인 'AI6'를 생산하게 된다. 이 회장은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소통하며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머스크 CEO는 계약금에 대해 "최소액일 뿐"이라며 실제 생산량은 몇 배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혀 추가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는 또한 삼성의 생산 효율성 극대화를 돕겠다며 직접 생산 라인을 둘러보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애플과의 협력 소식도 들려왔다. 삼성전자가 텍사스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에서 애플의 차세대 아이폰에 들어갈 이미지 센서(CIS)를 생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계약 시점을 고려할 때 이 회장이 직접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의 방미는 한미 통상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미국에 머무르던 지난달 31일, 양국은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 회장이 폭넓은 현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내세워 협상 타결에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귀국한 이 회장은 쉴 틈 없이 국내 일정을 소화한다. 이날 열리는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동행한다. 9일 만에 다시 미국을 찾는 셈이다. 이번 방미 기간 구체화한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과 현지 투자 확대 계획 등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