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에도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여천NCC는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이 부도 위기를 겪을 수 있다며 자금 지원을 주장한 것처럼 2분기에 영업손실이 전 분기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LG화학(051910)과 롯데케미칼(011170) 등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 역시 가동률을 낮추는 등 임시방편으로 불황을 버텨내고 있어 정부의 석화 구조 재편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3위 에틸렌 생산 업체인 여천NCC는 올 상반기 1566억 원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분기에 497억 원의 영업적자를 낸 여천NCC는 2분기 손실액이 1069억 원으로 늘었다는 사실을 연휴 직전인 14일 공시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누적 적자는 8200억 원에 달한다. 잇따른 실적 부진에 여천NCC는 이달 8일부터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핵심 설비인 3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여천NCC는 대주주인 한화솔루션(009830)과 DL케미칼이 공방전 끝에 각각 15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당장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천NCC가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차입금은 약 3700억 원이며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역시 5175억 원에 달한다. 2027년 이후 갚아야 하는 차입금까지 더하면 1조 원 넘는 부채가 쌓여 있어 여천NCC의 자금 사정은 갈수록 불안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여천NCC의 위기에 이어 주요 업체들의 경영난이 도미노 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은 올 들어 적자 폭이 깊어졌다. 롯데케미칼은 상반기 1681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399억 원)보다 악화한 것이다. LG화학도 상반기 684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212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적자 전환했다. 국내 석화업계 빅4로 꼽히는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011780) 중 상반기 흑자를 낸 곳은 금호석유화학이 유일하다. 나머지 3사의 영업적자 합계는 6600억 원에 이른다.
석유화학 업체의 가동률 역시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각 사는 반기 보고서에서 평균 가동률은 일제히 하락했다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의 나프타 분해(NC) 공장 평균 가동률은 64.4%로 지난해(81%)에 비해 15%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범용 플라스틱 제품인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의 평균 가동률도 각각 72.8%, 71.7%로 지난해(88.5%, 88.8%)와 비교해 하락했다.
LG화학의 상반기 평균 가동률 역시 71.8%로 지난해(78%) 대비 떨어졌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부문의 평균 가동률이 같은 기간 70%에서 66%로, 합성수지 부문은 60%에서 57%로 낮아졌다. 여천NCC의 경우 여수 2공장의 벤젠·톨루엔·자일렌(BTX) 평균가동률이 지난해 76.6%에서 올 상반기 59.0%까지 급락했다. 업계에서는 통상 수익성 확보를 위한 가동률 마지노선을 70~80% 선으로 잡고 있다.
업황 불황에 주요 업체들의 직원 수 감소세도 이어졌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올 2분기 말 직원 수 감소 폭은 롯데케미칼이 209명(4764명→4555명), LG화학은 183명(1만 3857명→1만 3674명), 한화솔루션이 120명(5910명→5790명) 등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직원 수가 1597명으로 같은 기간 4대 석화업체 중 유일하게 소폭 늘었다.
중국발 저가 공세와 글로벌 수요 침체 등 구조적 생존 위기에 시달리는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대규모 구조 재편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 들어서만 여천NCC를 비롯해 LG화학·효성화학 등이 일부 생산 설비의 가동을 추가로 중단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 업체별, 업체 간 사업 재편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금융·자금·세제 등 제도적 지원을 집중하는 ‘석유화학산업 구조 재편안’을 마련해 관계 부처 및 업계와 최종 조율에 나섰으며 이달 중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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