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자금이 민간과 경쟁하며 투자 중·후기(시리즈B 이후) 단계 바이오 기업의 과실을 따먹는 동안 유망한 초기 기업들은 말라 죽고 있습니다. 정책 자금이 높은 리스크를 안고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역할을 맡지 않으면 5년 뒤 우리 바이오 산업은 붕괴될 것입니다.”
김명기(사진)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처럼 초기 투자가 어려울 때는 정부가 정책 자금 80% 이상을 투입해 유망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국내 1세대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VC) 투자자다.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박사를 마친 뒤 LG화학기술연구원을 거친 연구자 출신으로 바이오 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20여년 전부터 바이오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후 2016년 바이오 특화 VC인 LS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올해 일라이릴리와 1조 9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알지노믹스, 지난해 상장한 셀비온 등에 투자했다.
김 대표는 정부의 바이오 산업 투자 전략에 대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2021년 하반기부터 바이오 투자 시장이 악화하는 동안 보건복지부는 초기 투자를 민간에 맡기고, 후기 투자 펀드만 조성했다”며 “초기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씨가 마르면서 올 들어 창업한 바이오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20년 515개였던 바이오 벤처 창업은 2021년 257개, 2022년 29개로 급감했다. 이는 1992년 통계를 집계한 이후 1993년(19개)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수치다.
김 대표는 민간 자금이 높은 리스크를 지고 초기 기업에 투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기업공개(IPO) 문턱이 높아지면서 투자금 회수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정부가 초기 기업 투자 펀드를 조성할 때 민간 자금 50%를 매칭하라고 하면 낮은 예상 수익률 탓에 펀드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요즘처럼 초기 투자가 어려울 때는 정부가 정책 자금 80% 이상을 투입해 유망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한국형 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 프로젝트’처럼 혁신적·모험적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면서 “정부가 자금을 투입할 때는 어디에 투입해야 가치가 높아질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장기적으로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국내 제약 산업 구조가 재편되고 전통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역량이 강화돼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봤다. 지금처럼 바이오 벤처가 IPO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산업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M&A가 활성화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매수 주체가 될 기업이 없어서”라며 “국내 제약사 수는 일본보다 많지만 전체 제약 산업 규모는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니 개별 제약사가 M&A를 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약가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해외 대비 현저하게 비싼 제네릭 약가를 내리고, 같은 약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들 간 M&A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며 “그러면 고정비가 줄고 경영 효율화가 이뤄져 일본에서처럼 자금력을 갖춘 제약사들이 등장하고, 로슈의 제넨텍 인수와 같은 대규모 M&A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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