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정책 기능을 떼내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되 금융감독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겸임을 제한해 금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정은 또 금감위 직속 사무처 인력을 대폭 확대해 금감위가 실질적으로 감독 업무 전반을 다룰 수 있게 할 방침이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당정은 이 같은 내용의 금융 당국 조직 개편안을 막바지 조율 중이다.
개편안은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남은 조직은 금융감독위원회로 명칭을 바꿔 감독 정책을 총괄하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금감위 산하에는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둔다.
핵심은 당정이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임을 막고 수장을 각각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 초안 격인 국정기획위원회 안에는 금감원장이 금감위원장을 겸임하는 안이 담겼는데 방향을 튼 것이다. 당정은 산하 기관을 감독해야 할 금감위원장을 금감원장이 함께 맡으면 금감원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민간 조직인 금감원이 정부로부터 행정권을 위탁 받아 행사하는 것인 만큼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확실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금감위원장을 겸임하면 ‘셀프 감독’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그렇지 않아도 지난 정부 내내 금감원의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견제 장치를 분명하게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위 내 사무처 인원을 대폭 확대해 역할을 키우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정계에서는 사무처에 50명 안팎으로 최소한의 인원만을 두고 금감위 회의 운영을 보조하는 수준의 역할만 맡기는 방안이 거론돼왔다. 하지만 이 경우 금감위가 금감원에서 올린 안건을 제대로 심사하기 어렵고 금감원의 권한이 비대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금감위 사무처를 단순 회의 보조기구가 아닌 감독정책을 실질적으로 관리 설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조직 개편이 마무리 되는 대로 후속 인사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관가에서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신임 금감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설되는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으면 이 후보자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직 개편이 국회 입법을 거쳐 최종적으로 실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2일 국회에서 열린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직 개편과 관련한 논의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여당이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더라도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상임위원회에 최대 180일 묶여 있게 된다.
문제는 조직 개편이 지연될수록 미국 관세 대응이나 석유화학 구조조정처럼 시급한 과제 해결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 전권을 쥔 금감위가 금융사의 건전성 관리에 매몰되면 취약 업종에 대한 자금 지원 시기를 놓쳐 경제 충격을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소원까지 독립시키면 금융사들이 많게는 4개 부처를 찾아다녀야 하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지금은 금융위와 금감원과만 의사소통을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금감위·금감원·금소원과 협의를 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조직 개편이 마무리되더라도 신설 조직 간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금감위와 재경부 인력이 정례적으로 오갈 수 있는 트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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