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국내총생산(GDP), 금리, 환율 같은 전통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미시 데이터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는 카드결제, 온라인 쇼핑, 배달앱 주문, 심지어 인터넷 검색어 같은 고빈도·비정형 자료까지 긁어모아 경기 흐름을 읽어내겠다는 것이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이수형 금통위원은 전날 발표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양극화 심화로 경제주체 간 이질성이 커진 만큼 정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거시·미시 분석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뉴욕 연방준비은행 관계자들은 최근 한은을 찾아 미시 데이터 활용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한은 통화정책국은 이 위원의 요구를 반영해 금리 인하 파급 효과를 소득, 연령, 기업별로 분석했다. 금리 민감도가 높은 계층에서 소비와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저소득층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3.1%에서 2분기 1.7%로 되레 둔화했고 올해 1분기에는 0%대에 머물렀다. 반면 고소득층은 1%대 증가율을 유지했다. 투자 측면에서도 대기업은 지난해 4분기 16.8%, 올해 1분기 9% 증가했지만,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36.4%, -24.4%로 크게 감소했다.
흥미로운 시도도 이어진다. 한은 조사국은 글로벌 링크드인 데이터를 활용해 ‘AI 관련 직함’을 가진 한국 인재의 취업 현황과 해외 이동을 추적 중이다. 이 결과는 연말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 컨퍼런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디지털혁신팀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온라인 여론에서 ‘인플레이션’ 언급의 어조와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물가 선행 지표를 만들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만큼 금통위원들 역시 AI 기반 지표에 관심을 높이며 실시간 지표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한은의 미시 분석은 한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비롯해 전자공시시스템 다트를 활용한 ‘밸류 서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이때 한은은 가계부채DB 고도화를 진행중인데 기존 개인 단위로만 파악하던 소득·자산·부채 현황을 가구 단위로 통계를 전환할 계획이다. 이창용 총재 지시로 전담 반이 신설됐으며 아티프 미안 미 프린스턴대 교수과 박기영 전 금통위원 등 국내외 저명 연구진은 한은 가계부채DB를 활용해 가계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 분석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실물 경기에 후행하는 거시 지표만으로는 경기 상황을 제때 진단하거나 경제 구조 변화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며 “미시 데이터 연구는 정책 대응의 적시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금융통화위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지표 개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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