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된 후 청소·경비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원청과 교섭 불성립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원청과 하청 노조 교섭이 가능해졌지만, 원청이 청소·경비 업무를 비핵심 업무로 판단하고 이 하청 노조와 교섭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만일 청소·경비처럼 열악한 근로환경에 놓인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을 못한다면, 원·하청 교섭으로 양측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노란봉투법이 무력화되는 셈이라고 노동계는 우려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7일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기존의 조건(판례)을 그대로 적용하면, 필수적인 업무 여부와 사업의 편입성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 원청인지를 가리는) 사용자성 판단 기준도 될 수 있다”며 “이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청소, 경비 용역은 (노란봉투법을 통한 원·하청 교섭)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이 기준을 (정부의 지침과 매뉴얼, 법원 판례 등에서) 그대로 적용하면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노동 정책 자문 역할을 하는 노동정책연구회에서 노동조합법 분과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견해가 고용노동부가 마련 중인 노란봉투법 지침과 매뉴얼에 반영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가 청소·경비 노조의 원청과 교섭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우려한 이유는 최근 그의 강연 자료가 노동계로부터 오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5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연 세미나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노란봉투법 쟁점이 담겼다. 이 교수는 교섭 의제별로 사용자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점, 하청 근로자의 노무가 원청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지에 따라 청소와 경비 용역이 제외될 가능성, 1차 하청 외 N차 하청이 원청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을 자료에 열거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16일 이 자료 중 청소와 경비 용역이 제외될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이 교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소, 경비 노조를 둔 서울지역본부 입장에서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 교수 판단을 수용할 수 없다. 이 교수는 “강연에서는 이 쟁점을 언급하면서 기준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부연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했던 한국노총 관계자도 “이 교수가 여러 차례 밝힌 발언 취지는 하청 노조 교섭 어려움이 없도록 여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 청소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온다. 노란봉투법 시행 전인 현행 체계에서 청소 노동자는 용역업체(하청)와 고용 관계를 맺어 대학을 상대로 임금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용역업체는 원청인 대학이 지불 비용을 늘려야 청소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가능한 구조라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청소 노동자가 용역업체가 아니라 대학을 상대로 임금인상 요구 시위를 하는 게 반복됐다. 청소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는 임금 인상 요구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2021년 6월에는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한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노동부는 조사를 통해 유족의 주장대로 관리자들의 갑질이 있었고 업무가 과중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대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이애경씨는 전일 공공운수노조 기자회견에서 “이대에서 일하지만, 우리는 의붓자식같은 존재”라며 “청소노동자를 하루를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월급이 같다, 집단교섭에서 용역업체는 ‘우리가 결정할 게 없다, 대학에 물어보겠다’고 한다”고 답답해했다.
노사가 노란봉투법에 대한 찬반이 명확히 갈리면서 내년 3월 이 법 시행 이후 현장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조와 교섭 가능한 원청을 가리는 기준으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제시했다. 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란 표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경영계와 학계에서 나온다. 이 사용자성 해석에 따라 원청과 하청노조의 교섭 여부가 결정된다. 공공운수노조가 이 교수의 강연 자료를 비판한 배경에도 정부 지침과 매뉴얼에 따라 현장 교섭 여건이 달라진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일자리연대가 연 노란봉투법 토론회에서 “실질적 지배력은 객관적인 판단 지표가 없어 해석하는 사람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정부가 지침을 만들어도 법원에서 사건마다 다툼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단 헌법재판소는 노란봉투법처럼 사용자 정의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 법률이 갖춰야 할 명확성 원칙에 반드시 어긋나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동부 측도 “법원들은 (노란봉투법 제정 전에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한다는 사용자 해석을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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