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시에 참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APEC 의장국으로 손님맞이와 다중 외교전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17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한미동맹재단·주한미군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지난달 한미 양국 대통령이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경주 APEC에서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미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참석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은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윤 대사대리의 이번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윤 대사대리는 “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한미 관계를 요청했다. 동시에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요청했다”며 “한미 동맹은 톱 리더십부터 아래까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안보를 증진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이제 새로운 위협, 새 현실에 맞춰 적응해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미가 협의하고 있는 ‘동맹 현대화’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방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시 주석 방한 관련 구체적인 협의를 이어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외교수장 간 만남이다. 조 장관은 출국에 앞서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방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측은 이와 함께 한중 간 협력 관계 발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중 이후의 동북아 긴장 완화 등 의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중국이 서해에 무단으로 설치하는 구조물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의 중국 방문에 이어 왕 부장도 이달 중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시 주석 방한에 앞선 사전 답사 성격이 짙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경주 APEC을 계기로 동시에 한국을 찾으면서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도 커졌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APEC 회의 전 중국을 먼저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방한하는 만큼 양국 정상이 만나는 무대가 경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두 사람이 19일 통화를 나누는 만큼 이 자리에서 세부적인 일정이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이 동시에 한국을 찾는 만큼 이 대통령으로서는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미 정상회담의 경우 지난 달 미국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의 후속 논의의 진척에 따라 의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한미 간에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관련 세부 협상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 주석과의 만남에서는 윤석열 정부 3년간 냉랭했던 한중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중국은 이달 초 열린 80주년 전승절 기념행사에 이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 참석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중 정상 간 만남인 만큼 외교 정상화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를 고리로 한 양국의 역할론에 대한 얘기도 오갈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