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점 임대료 조정을 놓고 갈등을 빚던 신라면세점이 공항공사측에 사업권을 반납한다. 임대료 부담이 높아지면서 면세점을 운영할수록 영업손실이 커지자 면세점 철수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것이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008770)는 18일 개최한 이사회에서 인천국제공항 제1·2여객터미널의 화장품·향수·주류·담배 구역(DF1)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 권역의 지난해 매출은 4292억 원으로 지난해 호텔신라 연결 매출(3조 9500억 원)의 10.9%에 해당한다.
호텔신라 측은 “인천공항에서 영업을 지속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라면서 “회사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부득이하게 인천공항 면세점 DF1권역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호텔신라는 이날 임대보증금에 상당하는 약 1900억 원의 위약금을 공항공사 측에 입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업정지일은 내년 3월 17일이다.
계약상 호텔신라는 사업권 반납일로부터 6개월간 영업을 유지해야 한다. 이 기간 공항공사는 입찰을 통해 새로운 사업자를 찾게 된다.
면세 업계에서는 최근 방한 외국인 관광객 및 해외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 수가 증가하면서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여객 수는 늘고 있지만, 실제 면세점 객단가는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면세점 대신 올리브영·다이소를 찾는 등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모양새다. 이달 말부터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정책도 시행될 예정이지만 예년만큼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한국을 많이 방문하지 않는 점도 면세점 업계로서는 부담이다.
실제로 신라면세점은 매달 60억~80억 원, 연간 720억~960억 원가량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신라 측은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사업권 계약 이후 면세 시장은 주 고객군의 소비 패턴 변화 및 구매력 감소 등으로 급격한 환경 변화가 있었다”면서 “이에 따라 인천공항공사에 임대료 조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1·2여객터미널 내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DF1·DF2)의 임대료를 40% 인하해달라는 내용의 조정신청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했지만 인천공항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서왔다. 인천공항은 면세점과의 임대계약을 통해 얻어야 할 정당한 수익을 포기하고 임대료를 낮춰주는 것은 인천공항에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며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후 법원에서 두 면세점의 임대료를 25% 인하하는 내용의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인천공항은 즉시 이의신청했다.
그간 업계에서는 신라·신세계면세점의 철수 가능성을 점쳐왔다. 2018년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에서 철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롯데면세점은 1820억 원의 위약금을 냈다. 신라면세점과 함께 법원에 임대료 인하 조정 신청을 한 신세계면세점도 철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신세계면세점 역시 철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면세점이 DF1의 사업권을 반납하면서 인천공항은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신규 사업자 모집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롯데면세점과 현대면세점은 인천공항의 모집 공고에 따라 입찰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1위 면세 기업인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의 도전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CDFG는 지난 입찰에서 신라·신세계면세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입찰가(여객당 7388원)를 제시했었다. CDFG가 인천공항에 입성하기 위해 다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인천공항 측은 “해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사업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신규 입찰을 신속히 준비해 6개월 의무 영업 기간 내 후속 사업자를 선정해 여객 면세 쇼핑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체관광객 무비자 조치가 시행되는 10월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객 수에 연동하는 임대료 산출 방식상 면세점 업계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며 “면세점 객단가가 이전만큼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신세계면세점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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