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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의 거울' 야구장에서 배우는 공정의 힘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는 유례없는 관중 증가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23일 단 587경기 만에 누적 관중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 7000명을 넘어서면서 팬들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가볍게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스포츠 인기가 회복된 차원이 아니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제도의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우선 발전된 기술이 경기의 공정성을 회복시키고 신뢰를 확장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은 심판의 자의적 판단을 줄였다. 여기에 비디오 판독 제도가 결합하면서 판정의 일관성이 높아지고 불신과 갈등은 줄어들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술이 심판을 대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여전히 인간 심판이 존재하고, ABS 장비를 운영하는 새로운 기술직 인력이 투입됐다. 기계의 냉정한 판단과 인간의 감성적 판단이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흔히 "기술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가 있지만 야구장은 그 반대의 사례를 보여준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보완하며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의 확대는 성과 기반 경쟁의 원칙을 분명히 보여주기도 했다. KBO는 외국인 선수를 늘리고 있으며, 이는 리그의 질을 높이고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여기서는 학연, 지연 등이 전혀 기준이 되지 않는다. 동일 노동·동일 임금 원칙조차 적용되지 않고, 오직 성과와 기여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이처럼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우리 사회의 고용·교육·이민 정책에도 시사점을 준다. 성과와 공정성의 균형이야말로 사회적 신뢰를 확장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야구장은 자발적 공동체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모든 KBO 경기는 애국가로 시작되고 외국인 선수들까지 국기에 경례한다. 이는 강요된 형식이 아니라 스포츠라는 비정치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의 상징이다.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도구로 소비하기보다는, 공동체의 기본적 예의와 존중으로 이해하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이러한 장면은 익숙하다. 한국 사회 역시 이를 공동체 결속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야구장은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건전한 여가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가족 단위 관람객과 여성 팬의 비중이 꾸준히 늘면서 야구장은 도심 속 열린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이는 폐쇄적 유흥 시설 이용 감소와 맞물려 새로운 문화 지형의 변화를 예고한다. 야구장은 세대를 아우르는 공적 여가 공간으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프로야구가 철저히 성과 중심의 시스템 위에서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선수의 연봉은 기록과 기여도로만 평가되고, 관객은 좌석 위치와 선택한 경험에 따라 비용을 지불한다. 출신 학교나 나이, 배경은 고려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비정상적 특권도,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제된 공정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결국 야구의 고객은 ‘관객’이고, 국가의 고객은 ‘시민’이다. 관객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룰이 공정하고, 결과가 납득 가능하며, 자신의 경험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시민을 대할 때도 같은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관객의 증가는 곧 시민의 머무름이고, 이는 신뢰의 증거다.

KBO 리그가 보여주는 관중 증가 현상은 단순히 스포츠의 인기를 넘어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정과 기술, 개방과 존중이 결합한 공동체는 이제 이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질서다. 그 출발점은 지금, 바로 야구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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