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더이상 한약사를 방치하지 말아주십시오. 한약사는 정부가 만든 제도의 희생양입니다. "
2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30년 넘게 한약사제도를 방치해 온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현직 한약사와 전국 한약학과 학생 400여 명이 참석했다.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가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공동 시위를 벌인지 11일 만이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회장은 "한약사가 갖는 지위는 한약사가 탄생하기도 전에 정부와 약사회, 한의사협회가 합의해서 만든 법 아니냐"며 "한약사 제도가 만들어진 지 33년, 한약사가 사회에 배출된 지 26년째지만 한의약분업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을 믿고 한약학과에 진학한 3500여 명이 애꿎은 피해자로 양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전혀 책임질 의지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한약사는 정부가 만든 제도의 희생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약품 판매를 둘러싼 한약사와 약사 단체간 갈등은 해묵은 문제다. 발단은 1993년 한약 분업을 전제로 도입됐던 한약사 제도다. 현행 약사법은 약사와 한약사 모두를 약국 개설자로 명시하고 있다.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 없이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문제는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 범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건 당국의 유권 해석에 따라 허용 여부가 달라지다 보니 두 단체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번번이 "신중 검토" 의견을 내면서 사실상 직역갈등을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케묵은 직역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경기도 고양시에 한약사가 창고형 약국을 개설하면서다. ‘저가 대량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는 창고형 약국이 속속 등장하며 약사사회에 물의를 빚은 가운데 개설자가 한약사로 드러나자 파장이 커졌다. 험난해진 분위기에 몇몇 제약사들이 의약품 공급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하자 해당 약국을 운영하는 한약사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며 맞불을 놓으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다.
한약사회에 따르면 첩약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이 시행된지 3년동안 전국에서 한의사가 처방전을 발급한 사례는 단 1건에 그쳤다. 일부 약사단체의 압력에 일반의약품 공급조차 막혀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정부가 만든 원외탕전실로 인해 한약사는 더 이상 한약을 업으로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약학과는 1996년 경희대, 원광대, 1998년 우석대 등 3개 대학에 설치돼 있다. 각각 40명 정원으로, 매년 120명의 졸업생이 꾸준히 배출돼 누적 3500명에 달한다.
임 회장은 "한약사제도는 약사회와 한약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한약사제도를 만들고 30년간 방치해온 정부가 나서서 결자해지해야 할 문제"라며 "정부가 한약사제도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현장에서 '정부 정책의 사생아 한약사 제도', '한의약 산업 발전 저해하고 국민 의약품 접근성 방해하는 양한방 갈등', '한의약분업 가로막는 원외탕전실', '한약사를 실질배제한 첩약건강 보험적용 시범사업', '한약조제 주체인 한약사를 억압하는 30년 불변 한약조제 지침서', '28년째 한명도 안 늘어난 한약학과 정원 120명' 등 불합리한 현실이 적힌 피켓을 격파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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