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단기 상용 비자(B-1)와 전자여행허가(ESTA)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활동 범위를 명확히 했다. 9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 이후 우리 측이 요구한 단기 개선 사항이 합의된 것이다.
외교부는 9월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상용 방문 및 비자 워킹그룹’이 공식 출범해 첫 회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양국은 B-1 비자로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점검·보수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ESTA에도 동일한 규정이 적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조만간 관련 대외 창구를 통해 공지하기로 했다.
B-1 비자 관련 규정에는 애초부터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점검·보수 활동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고 ESTA 규정에도 ‘B-1에 준하는 업무가 허용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9월 4일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체포·구금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들 중 146명은 B-1, B-2(단기 상용과 관광을 합친 비자)로, 170명은 ESTA로 미국에 체류 중이었으나 ICE는 이들의 업무 범위 등을 훨씬 엄격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주한미국대사관 내 전담 데스크(Korean Investor Desk·가칭)도 10월 중 가동하기로 했다. 대미 투자 기업들의 비자 관련 전담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우리 측 요구에 따른 것이다. 양측은 또 우리 공관과 미국 ICE, 관세국경보호청(CBP) 지부 간 접촉 채널을 구축하고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조지아주 사태 당시 서로 소통이 어려웠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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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부는 대미 투자 강화 및 실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ICE·CBP는 불법체류자 단속 실적 등에 집중하다 보니 불협화음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워킹그룹에 직접적인 관련 부처인 우리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 외에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한국), 국토안보부·상무부·노동부(미국) 등이 참여하는 이유도 비슷한 문제의식의 결과다.
이날 합의 내용은 조지아주 사태 이후 우리 정부가 요구해온 단기적 개선 방안이다.
첫 회의부터 단기 과제는 풀었지만 장기 과제인 비자 신설은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개월 체류하면서 현지 공장의 장비를 세팅하고 현지 근로자들을 교육해야 할 한국 인력을 위해 별도 비자 또는 기존 비자의 쿼터를 신설하자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지난 십수 년간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비자) 쿼터 신설을 위한 미국 의회의 입법 활동을 지원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 측 수석대표단은 ‘현실적인 입법의 제약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과제지만 향후 가능한 방안을 지속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도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날 회의 초반에는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도 참석해 “한국은 미국의 주요 투자국 중 하나”라며 대미 투자 과정에서 숙련된 인력의 핵심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9월 14일 방한해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면담하는 자리에서도 배석자들에게 곧바로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이날 워킹그룹 관련 보도 자료에서도 “한미 양국은 자격을 갖춘 한국인들이 적절한 비자를 갖고 대미 투자 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포함해 상호 교역 및 투자 증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소식에 국내 산업계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협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공장 정상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특히 업계는 B-1, ESTA로 미국에 입국한 우리 근로자의 규정 내 활동에 대한 적법성을 인정받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반겼다. 이에 따라 조지아주 사태로 위축됐던 국내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도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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