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이 지방자치단체 간 현금 살포 경쟁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된 배경에는 사업의 구조적 딜레마와 지방선거라는 정치 이벤트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시범 사업 공모에는 전국 49개 지자체가 신청할 만큼 인기가 높았지만 최종 선정된 곳은 10곳에 그쳤다. 내년 6월 선거철을 앞두고 주민들의 박탈감을 명분 삼아 곳간을 헐어서라도 자체 지원금 카드를 꺼내들 유인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하지만 지자체 간 무리한 현금 살포 경쟁은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재정 운용 효율성도 떨어뜨리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관계 부처와 지자체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충북이다. 구체적인 액수를 뜯어보면 ‘출혈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 공모에서 고배를 마신 보은군(1인당 60만 원), 괴산군(50만 원), 영동군(50만 원), 단양군(20만 원) 등 4개 지자체는 탈락 직후 약속이나 한 듯 자체적인 현금성 지원책을 검토하거나 확정했다. 인구 3만 5000여 명인 괴산군의 경우 이 지원금 예산만 180억 원에 달하며 단양군 역시 54억 원의 군비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보은군이 편성한 민생회복지원금 188억 원은 보은군의 연간 지방세 수입(약 260억 원)의 70%에 육박하는 규모다.
문제는 이들의 주머니 사정이다. 지난해 기준 보은군의 재정자립도는 9.6%, 괴산군 10.7%, 영동군 10.3%, 단양군 11.2% 등으로 전국 군 단위 평균(17.3%)에도 한참 못 미친다. 자체 수입으로는 공무원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 탈락을 이유로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을 태세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으로 1인당 15만 원(2년간)이 ‘복지 하한선’으로 인식되면서 이를 맞추지 못하는 지자체장은 ‘무능한 단체장’으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이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올해 7곳이던 시범 사업 지역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10곳으로 늘었고 사업 규모도 2340억 원으로 확대됐다. 확장재정 흐름 속에 중앙정부의 예산 투입이 늘어나고 사업에 탈락한 지자체가 다시 곳간을 헐어 지역 주민들에게 현금을 뿌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태가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를 심화시켜 결국 국가 재정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근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은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지방교부세율을 현행 19.24%에서 22%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의 방만함이 뼈아픈 것은 최후의 보루여야 할 중앙정부의 곳간 사정마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2025~2029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내년에 처음으로 1400조 원을 돌파한다. 문제는 증가 속도다. 국가채무는 2026년 1413조 8000억 원, 2027년 1532조 5000억 원으로 매년 100조 원 이상 불어나고 2029년에는 무려 1788조 9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4년 만에 나랏빚이 약 500조 원 가까이 폭증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역시 2025년 49.1%에서 2029년 58.0%로 수직 상승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53.4%)을 경고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소멸 지역을 모두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외딴 산골 한 집을 위해 도로와 수도·소방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용은 서울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무차별적인 현금 살포 대신 특정 거점 지역에 필수 기반시설을 집중해 인구를 모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모든 지역을 다 살리겠다며 재정을 흩뿌리는 방식은 결국 재정적 파산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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