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합작법인(JV)에 2조 85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고려아연이 올 들어 현지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전방위적 로비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로비 활동이 합법이지만 고려아연은 한·미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나 최대 50%의 관세율 부과 현안이 있었던 국내 주요 기업보다 최대 20배 많은 로비 금액을 지출했다. 이 과정에서 본사 이사 추천권을 미국 정부 지배 JV에 부여했고 8조 원 이상의 채무 보증을 섰다. 이 JV는 유상증자 후 고려아연 지분 10%를 보유해 장기간 이어지는 경영권 분쟁의 성패를 가를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22일 미국 상원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올 들어 미국 전쟁(국방)·상무·국무·에너지·국토안보부와 상·하원, 백악관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을 펼쳤다. 고려아연이 1~3분기 현지 로비를 위해 지출한 금액은 160만 달러(약 24억 원)로 자산 총액 기준 재계 4위인 LG그룹 전체의 지난해 미국 로비 지출액(134만 달러) 보다 많다. 올해 한·미 조선업 협력 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3분기 8만 달러를 로비에 투입했다. 최대 50%의 철강 관세 현안이 있는 포스코그룹은 같은 기간 52만 달러를 썼다.
미국 내 로비는 여러 해외 기업·정부가 실시하는 합법적 활동이다. 기업들은 자사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거나 불리한 규제를 막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회·정부와의 접점을 만든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미국 로비 끝에 현지 정부·기업과 합의한 투자는 되레 불리한 구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국방부는 현지 제련법인 지분 14.5%를 1주당 1센트(14원)에 인수할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얻었는데, 고려아연 본사는 제련법인의 현지 차입·보조금 전액에 대해 8조 3909억 원의 채무 보증을 서기로 했다.
이례적인 출자 구조로 경영권 분쟁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에 투자하는 기업은 통상 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거나 현지 파트너와 지분을 나눈다. 고려아연은 대신 별도의 JV(크루시블 JV)를 만들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본사에 들어온 유상증자 자금을 다시 미국 제련법인(크루시블 메탈즈)에 보내기로 했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본사 기존 주주의 지분은 희석되는 반면 JV는 지분 10.59%를 새로 보유하게 된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와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율 차이는 10% 안팎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고려아연 유상증자 공시의 위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인 미국 JV에 2명의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고 선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었다. 현행 자본시장법과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등에 따르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할 때 별도의 약정이 있으면 그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공시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정정공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사 추천권은 미확정 사안이거나 비밀유지계약(NDA)에 따라 공시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 투자를 추진하는 기업이 현지에서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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