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내려간 연구자들도 틈만 나면 서울로 올라오려 하는데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정부 정책 하나 때문에 인재가 오지 않는 곳에 연구소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비수도권 반도체 연구 종사자에 한해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밝힌 뒤 한 반도체 장비 기업 대표가 내뱉은 탄식이다. 연구직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산업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정부가 여야 정쟁으로 반도체특별법에서도 제외됐던 이 카드를 전격 수용한 것은 산업 현장의 절박함을 정치적 논리보다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일단 고무적이다.
하지만 실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꿈의 직장’ 연구자들조차 비수도권 근무를 꺼려 이직을 감수하는 것이 반도체 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실제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하기 위해 사활을 건 첨단 패키징 연구 시설은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충남 천안과 온양에 집중돼 있다. 이 핵심 전략 거점마저 인력 확보에 고전하며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연구자의 70%가 수도권에 쏠려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의 정책은 연구자들에게 ‘지방으로 가서 더 고강도 노동을 하라’는 요구밖에 되지 않는다. 업무 강도는 치솟는데 이를 상쇄할 도시 인프라도, 명확한 인센티브도 없는 지방에서의 삶은 일상에서 가치를 찾는 젊은 세대에게 ‘도전의 장’이 아닌 ‘노동의 유배지’로 비칠 뿐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 중요한 당면 과제다. 정부의 전향적 결단에 기업도 사회적 역할로 화답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채 균형 발전과 반도체 생존을 헐겁게 엮은 제도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패착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전쟁은 ‘지리적 경계’가 아닌 ‘나노미터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속도전이다. 지금 정부가 집중해야 할 것은 연구자의 마음을 움직일 파격적인 보상과 연구 환경의 질적 혁신이다. 연구자들이 기꺼이 밤을 지새울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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