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무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최근 만난 경제 부처 고위 관계자의 일성은 무거웠다. 평생을 경제 관료로서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그였지만 국가 경제의 키를 쥐고 있다는 사명감이 사라졌다는 고백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내년 1월 2일이 되면 거대 경제 부처였던 기획재정부가 분리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각각 현판을 내건다. 조직의 외형을 바꾸는 현판식도 중요하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꺾인 사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1%대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현실에서 정책적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데다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소신 있는 행정은 옛말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견고한 민주주의와 제조업 경쟁력, K팝으로 대표되는 소프트 파워, 안정된 치안을 모두 갖춘 육각형 국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3050 클럽’ 7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육각형의 한 축인 경제성장 엔진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과 내후년에도 1%대 성장에 머무르리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전망이다. 반면 주요국은 경이로운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 3분기 시장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어 4.3%의 깜짝 성장을 기록했고 대만은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7.31%까지 끌어올렸다.
성장률은 단순히 통계표상의 숫자가 아니다. 국가의 총체적 역량이 집약된 국력의 지표다. 기업의 투자, 직장인 임금, 재정 건전성 모두가 성장률 수치에 달려 있다. 성장의 엔진이 식어버린 상태에서 확장재정과 복지 확대는 고환율을 부추기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앞당길 뿐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경제는 10년 뒤 인도네시아에도 추월당해 2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새롭게 출범하는 재경부와 기획처 앞에는 성장률 반등이라는 난제가 놓여 있다. 관료들이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성장의 청사진을 소신 있게 그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식어버린 성장 엔진을 재점화하고 한국 경제의 연착륙을 이끌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무원의 시대가 끝났다는 탄식이 다시 관료의 저력을 보여줄 때라는 확신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prize_yun@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