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투자 전문가들은 올해 유망한 분야로 유전자 치료제와 표적단백질분해제(TPD) 등 차세대 모달리티(치료법)를 꼽았다. 지난해 총 공모액이 1조 원에 육박했을 정도로 열풍이 불었던 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은 올해 인기를 이어가겠지만 주가 수익률에서는 ‘옥석 가리기’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로 조성한 11조 6000억 원을 바이오·백신에 투자하겠다는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신약 개발 생태계 기반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경제신문이 1일 병오년 새해를 맞아 4인의 바이오 투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올해 바이오 산업 시장 전망을 인터뷰한 결과 이같은 전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빅파마들이 2030년까지 특허가 만료되는 주요 블록버스터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에는 제형변경·약물전달 플랫폼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올해는 유전자와 단백질 치료제 후보 물질·다중타깃항체·의료기기 등 다양한 모달리티로 빅파마의 ‘기술 쇼핑’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명기 LSK(034730)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중국 기업의 대안으로 한국 기업의 기술이 주목받는 시장이 형성됐다”며 “빅파마들은 그동안 인력 감축 등으로 축적한 현금을 바탕으로 올해도 활발한 기술이전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작년에 제형 변경 등 업사이드가 작은 부분에 기술수출이 집중된 점은 아쉽지만, 올해도 국내 기업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것”이라며 “유전자 치료제와 단백질 의약품,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의료 서비스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전무는 “올해는 자체적으로 전임상·1·2상 등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신약 물질 기술이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에이비엘바이오(298380), 리가켐바이오(141080), 큐리언트 등을 후보 기업으로 꼽았다. 이어 “국내 코스닥 육성 정책 등에 힘입어 바이오·제약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 실제 매출을 내는 의료기기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유망하다”고 말했다.
강지수 BNH인베스트먼트 전무는 “빅파마들이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를 앞두고 매출 구멍을 메우기 위해 유망한 신약 물질을 계속 찾고 있다”며 “표적단백질분해제와 다중타깃 항체, 저분자 화합물 등 모달리티에 관심이 크다”고 짚었다. 이어 “지난해 바이오 기업들이 사업 성과나 주가 측면에서 모두 탁월한 성과를 보여줘 올해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면서도 “기술수출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보라 스틱벤처스 전무는 “과거 기술이전을 한 신약 후보물질이 개발이 진척되면서 마일스톤·로열티를 수령하는 기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중추신경계(CNS) 질환 관련 플랫폼, 대사질환 등은 미충족 의료 수요가 커 빅파마의 기술 도입 필요성이 높은 분야”라고 분석했다. 특히 정 전무는 “AI 신약 개발, AI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등 AI 기술을 접목한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바이오 기업들이 1조 원 가량을 조달했던 IPO 시장에서는 실력이 검증된 기업들 중심으로 자금이 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보수적인 평가 방식의 영향으로 상장 기업 수가 줄어들면서 새내기 상장 기업들이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면서 “올해는 이러한 평가 방식이 완화돼 IPO 기업 수가 늘어나는 대신 주가 상승률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바이오 기업 가치의 양극화로 상장을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나오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 전무는 “최근 발표된 상장 심사 가이드라인에서 드러나듯 매출·기술이전 실적 등을 검증받은 기업들이 상장하는 만큼 시장의 관심도는 여전히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본격화할 국민성장펀드는 바이오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기업 규모·사업단계별 맞춤형 지원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전무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셀트리온(068270) 등 대기업이 미국 생물보안법 탓에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해야 할 경우 정부가 초저리 대출 등을 지원하고, 바이오 벤처에는 간접 투자를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며 “임상 3상을 지원하는 펀드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국내 바이오 업계 상황상 임상 1상 지원 펀드를 다수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소속이지만 해당 위원 입장으로 답변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바이오 산업 발전의 속도에 맞는 정부의 신속한 규제혁신 필요성도 제기됐다. 강 전무는 “중국 신약 개발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빅파마와의 계약이 급증한 것은 자금 지원 외에도 임상 개발 속도를 높이는 규제 혁신이 크게 작용했다”며 “한국은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이 느리고 예측하기 어려워 속도가 생명인 신약 개발 경쟁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IND 승인 기간을 단축하거나, 명확하고 공개적인 가이드라인 또는 피드백을 제공하면 한국의 신약 개발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무는 “인수합병(M&A) 또는 세컨더리 매각 등 투자 회수 방안이 다양화돼야 바이오 벤처에 자금이 잘 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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