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수요 정체(캐즘)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대기업과 함께 해외로 진출했던 협력사들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이 위기를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저렴하게 확보해 미래를 준비하는 역발상 투자의 적기로 보고 있다.
삼일PwC의 대기업·사모펀드(PEF) 전담 자문 조직 GSP(그룹서비스프로그램)를 이끄는 곽윤구 그룹장과 최창윤 파트너는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차전지 협력사 중 1000억 원 미만의 알짜 기업 경영권 매물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이들을 지금 인수한다면 업황이 리바운드(반등)하는 시기에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곽 그룹장은 “배터리 시장 진입을 계획하거나 이 분야에서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투자를 고려할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생태계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수정으로 매출 증발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푸르덴베르크(FBPS)와 맺었던 총 13조 500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 엘앤에프도 테슬라와 맺었던 3조 8300억 원 규모의 양극재 계약이 사실상 무산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자금력이 탄탄한 대기업들은 견딜 체력이 있지만 이들과 함께 해외에서 막대한 설비 투자를 단행했던 협력사 상당수는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게 삼일PwC의 진단이다. 곽 그룹장은 “갑작스러운 캐파(생산 능력) 축소로 공장이 서 버린 협력사들이 꽤 많다”며 “이들은 경영권 매각을 진지하게 고려할만큼 망연자실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자동차 부품사 HL만도(204320)나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두산(000150)을 이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후보군으로 보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협력사 입장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곳에 피인수됨으로써 생존을 도모하는 한편, 인수 측은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배터리 산업에 진출하는 ‘윈-윈’ 구도가 가능하다.
국내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 속 대기업의 시선이 갈수록 글로벌 시장을 향하고 있는 점도 해외에서 M&A 기회를 찾아야 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최 파트너는 “대기업들이 비핵심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을 저평가된 기술 기업 인수에 투입하는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딜이 향후에도 계속 활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외로 쏠리는 기업들의 투자를 국내로 되돌리기 위한 규제 개혁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 파트너는 “기업 활동에 제약을 주는 규제들을 적극 개선하고 제조·유통분야에 오랜 기간 쌓인 차별을 해소해 국내에 투자할 실질적 유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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