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 스토리의 핵심은 인공지능(AI)입니다. AI를 빼고 HBM을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정의한 HBM의 본질이다. 그는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기업이 AI 생태계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모든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 반도체의 파급력은 서곡에 불과하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을 비롯해 SK하이닉스(000660)의 HBM 성공 신화를 담은 책 ‘슈퍼 모멘텀’이 26일 출간된다. 컨설팅그룹 ‘플랫폼9와3/4’이 최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과 엔지니어를 인터뷰해 20년에 걸친 치열한 기술 개발 과정을 기록했다.
책은 만년 2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1위로 도약한 SK하이닉스의 저력을 집중 조명한다. 최 회장은 마지막 챕터 ‘최태원 노트’를 통해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HBM 스토리는 AI 산업이 성장하고 전개되는 방향 앞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던 자가 성공한 이야기”라며 “곧 지금 하이닉스의 이야기이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인수 직후 최 회장이 보여준 ‘현장 경영’ 일화도 상세히 담겼다. 2012년 최 회장은 임원 100명과 별도 배석자 없이 1대1 면담을 벌였다. 한 사람당 한두 시간씩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최 회장은 “임원 100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하이닉스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해법도 이미 그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은 그는 이후 엔지니어 출신 CEO를 선임하고 수조 원 규모의 투자를 믿고 맡겼다.
글로벌 빅테크와 ‘AI 동맹’ 구축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최 회장은 2021년 5월 미국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CEO를 처음 만나 비전을 공유했다. 이후 황 CEO와 웨이저자 TSMC 회장을 잇달아 만나 “3사가 협력해 AI 병목현상을 해결하자”고 제안하며 연합을 주도했다. SK하이닉스의 HBM을 TSMC가 패키징해 엔비디아 가속기를 생산하는 전략은 이렇게 완성됐다.
기술 개발의 험난했던 여정도 공개된다. 2006년 맨땅에서 시작한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 연구와 2008년 AMD와의 첫 동맹은 HBM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HBM2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망했다”는 자조가 나올 때도 연구원들은 ‘아오지 탄광’ 정신으로 버텼다. 최 회장은 실패의 책임을 묻기보다 문제 해결을 독려했고 이는 HBM2E(4세대)와 HBM3(5세대)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언더독’이던 SK하이닉스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와 과감한 리더십을 통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판을 바꾼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 회장은 AI 시대의 도래에 대해 “지금까지 AI 반도체가 만든 임팩트는 서곡에 불과하다”며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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