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화지만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바꿨고, 사람이 동물과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조지와 마르타는 들쥐들이다. 이들은 결혼도 안 하고 정조(貞操) 같은 것엔 관심도 없다. 들쥐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고 해봤자 기껏해야 60일도 채 안 되는 기간동안 교미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다가 결국은 뱀이나 다른 들짐승들에게 잡아먹히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와 바람기 사이에서 사람이 느끼는 갈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해하려면 이 작은 들쥐의 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5년이 넘게 들쥐를 연구해 온 과학자들은 무리를 지어 사는 이 동물들의 교미 행위가 일부일처제를 비롯해 사람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컷과 수컷이 같은 집에서 살며 함께 새끼를 기르지만 가끔씩 다른 쥐와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쥐들이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이유가 바로 뇌의 화학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소위 사랑이라는 것과 관계된 행동들을 지배하는 화학작용에 있어 들쥐의 뇌는 사람의 뇌와 상당히 흡사하다. 과학자들은 들쥐들의 이러한 행동을 ‘사회적 일부일처제’라고 부른다. 들쥐들은 대개 한 배우자와 교미를 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지만 다른 들쥐가 나타나 유혹하면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영원한 반려자를 만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수컷 쥐의 비율도 50%나 된다. 물론 이런 들쥐들의 행동은 동물들의 천성일 뿐이다.
하지만 이를 사람에 견주어 보면 흥미롭다. “인간은 여기저기 빈둥거리고 돌아다니는 데만 관심이 있는 동물이 아니다”고 위싱턴대학의 사회학자 페퍼 슈와츠는 말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혼자 중 최소 3분의 1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혼자들은 사랑과 성욕이 늘 일치하지 않는 데다 때론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해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들쥐들의 생리와 행태를 보면 사랑과 성욕은 화학적으로 별개의 시스템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감정 사이에서 정신적 갈등을 일으키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즉, 수백만 년간의 진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 뇌에 박제되어 버린 별개의 생물학적 충동이라는 것이다.
들쥐가 일부일처제로 생활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알게 된 것은 일리노이대학의 생태학, 곤충학 및 진화학 교수였던 로웰 게츠가 1972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게츠는 들쥐의 수가 몇 년간 대량으로 증가했다가 그 이후 천천히 줄어드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는 일리노이 초원 곳곳에 덫을 설치하고 하루에 몇 차례씩 확인을 하며 잡힌 들쥐들에 꼬리표를 달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덫 안에 같은 암컷과 수컷 들쥐가 앉아 있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다.
들쥐들은 땅밑 20cm 정도에 자신들만의 둥지를 튼다. 30일쯤 지나면 다 자란 암컷이 짝이 없는 수컷을 만나 바로 암컷과 교미를 하게 된다. 24시간 정도가 지나면 암컷은 방금 전 만난 수컷이나 그 수컷이 가버리고 없으면 짝이 없는 다른 수컷과 새끼를 낳을 준비를 한다. 그렇게 엮인 한 쌍은 함께 살면서 교미를 하고 새끼를 기르며 산다.
게츠는 들쥐의 교미 행위가 너무나 신기해서 이 동물들을 실험실로 데려가 좀 더 자세히 연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험실보다 들에서 주로 연구를 하는 그는 동료이자 신경내분비학자인 수 카터에게 부탁했다. 카터는 성 호르몬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들쥐들간의 일부일처제를 나름대로 조사중이었다. 이 동물들은 몸집이 작아서 실험실 쥐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에 관한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이 호르몬은 포유류의 뇌에서 생성되는데 몇몇 동물들의 경우에는 암컷과 수컷간, 어미와 자식간의 결속력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작은 들쥐의 뇌에서 생성되는 옥시토신이 이들이 평생동안 짝을 짓고 살게 하는 촉매제가 아닐까?
실제로 그랬다. 카터가 암컷 들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보다 수월하게 짝을 고르고 교미를 한 수컷 쥐와 함께 붙어 다녔다. 옥시토신을 맞은 동물들은 그렇지 않은 동물들보다 더 자주 핥고 끌어안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카터가 암컷들에게 옥시토신 억제 약물을 주사하자 이 암컷들은 교미를 했던 수컷에게서 떠나버렸다. 사람의 경우 여자가 젖을 먹일 때는 물론이고 성적으로 자극될 때에도 옥시토신 수치가 높아지고 오르가즘에 도달할 때 최고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들쥐들의 교미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싸움도 수반된다. 수컷 들쥐들이 자기 구역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일단 수컷이 암컷과 교미를 한 후에는 자기 암컷을 다른 수컷들로부터 보호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동굴 입구에서 이를 드러내 놓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앉아 있곤 한다. 카터는 들쥐들이 짝짓기를 한 후 어떤 생화학 반응이 발생해 전에는 느긋했던 수컷이 갑자기 자기 지역에 다른 수컷들이 얼씬도 못하게 행동하는 거라 추측했다.
연구 결과 옥시토신은 부분적인 역할을 할 뿐이었다. 이와 비슷한 바소프레신(Vasopressin)도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서 분비되지만 수컷의 분비량이 훨씬 많다. 카터가 짝짓기를 끝낸 수컷에게 바소프레신 억제 약물을 주사했더니 수컷의 적극성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 차례 바소프레신을 투여하자 수컷의 영역 방어 행동과 암컷 보호 성향이 강해졌다. 바소프레신은 사람에게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 호르몬이 사람의 경우,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들쥐에게서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남녀가 성적으로 자극되면 이 호르몬은 둘의 결합을 촉진한다. 카터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성적 자극과 오르가즘을 느낄 때 발현되기 때문에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 이 호르몬들이 중요한 생화학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일처제 동물들의 뇌에서만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건 아니다. 바람을 피는 동물들에게서도 이 호르몬들이 분비된다. 그렇다면 짝에게 충실한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은 무엇이 다를까? 과학자들은 대체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들쥐들에 비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산쥐들의 연구가 한층 수월하다고 한다. 이 두 종류 쥐들의 바소프레신 수용체(세포에 달린 부속물로 특정한 생화학물을 포착한다)를 연구하던 에모리대학 신경학자인 토마스 인셀은 두 종류 쥐들의 수용체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들쥐의 경우 뇌에서 쾌락을 관장하는 부위에 호르몬 수용체가 있는 반면, 산쥐들은 뇌의 다른 부위에 수용체가 있었다. 다시 말해 수컷 들쥐는 교미를 한 암컷 쥐와 함께 사는 게 기분 좋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반면, 산쥐의 경우에는 교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식으로 할뿐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다.
인간의 생물학적 사랑 표현에 관한 연구
물론 인간의 사랑은 훨씬 더 복잡하다. 사랑의 생화학적 과정은 아직 더 연구를 해 봐야 하지만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인간은 경험하는 사랑의 종류가 서로 다르다. ‘온정적 사랑’은 평온함과 안정감, 사회적 안정, 감정상의 일체감과 관계된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아마 들쥐들이 배우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고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나눌 때 느끼는 격정적인 황홀감 같은 낭만적 사랑은 따듯한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연구 결과 밝혀졌다.
런던대학의 안드레아 바텔과 그의 팀 과학자들은 최근 사랑에 빠진 대학생들의 머리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이들은 사랑에 빠졌다고 밝힌 17명의 젊은이들을 선발해 MRI 촬영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뇌 내부에는 쾌락을 느끼는 특정 부위에서 혈류량이 증가했는데, 이 부위들 중에는 사람들이 중독성 행위에 탐닉할 때 자극이 되는 부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성적 자극은 분명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 부위들 중 일부는 성적 자극이 주어져도 활성화되었다. 섹스는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호르몬과 관련이 있는데, 이 호르몬을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투입하면 성욕과 성적 쾌감이 증가한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반드시 상대방과 사랑에 빠지게 하거나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이 놀란 것은 연인들의 뇌에서 활성화된 부위 때문이 아니라 활동이 억제된 다른 두 부위, 즉 편도선과 우측 전두엽 전부 피질 때문이었다. 편도선은 공포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과 연관이 있다 . 우측 전부 피질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서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랑이라는 긍정적 감정이 부정적 감정들을 억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 상대의 부정적 성향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이런 과학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바텔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입증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낭만적 사랑이 뇌 내부의 중독과 관련된 부위를 활성화시킨다는 의견을 접한 투스카니 피사대학의 도나텔라 마라지티는 이것이 강박성 장애(OCD)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이 얼마나 소모적인지 잘 안다. 깨어있는 동안은 온통 애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강박성 장애인들 중에는 뇌 내의 혈관 수축성 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 수치가 낮은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중독성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세로토닌 수치도 낮지 않을까? 실제로 그랬다. 마라지티와 동료 과학자들이 사랑에 푹 빠져 있는 20명의 학생과 강박성 장애인 20명의 혈액을 각각 분석해 본 결과, 두 그룹 모두 뇌세포들간에 세로토닌을 실어나르는 단백질 수치가 낮았다.
그렇다면 ‘미칠듯한 사랑’의 황홀감이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 마라지티가 테스트에 응했던 연인들 중 몇 명의 혈액을 12~18개월 후에 다시 조사해 보자, 이들의 세로토닌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연인들이 갈라서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남녀 관계가 어떻게 진척되는지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낭만적인 사랑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연인들의 뇌 안에서 돌아다니는 덕분에 온정적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애정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함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애정과 낭만적 사랑은 서로 다른 화학적 과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욕망이 억제되지는 않는다. 사랑과 섹스, 결혼에 관해 여러 권의 저서를 내놓은 헬렌 피셔는 “문제는 사랑과 섹스가 항상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문제
야생의 세계에서는 절반 가량의 들쥐들이 들판을 배회하며 한 배우자와 정착하는 법이 없다. 로웰 게츠의 표현대로 이 ‘떠돌이 쥐’들은 늘 다른 암컷들과 새끼를 낳으려고 한다. 대부분의 암컷들은 자기 짝하고만 교미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다른 수컷들과도 교미를 한다. 더구나 멤피스 대학의 생물학자인 제리 울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암컷 들쥐들은 같이 살던 수컷들과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는 실험실에서 한 번에 세 마리의 들쥐를 서로 분리해 가두어 놓고 각 방을 서로 연결해 암컷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했다. 이 암컷 쥐는 이미 세 수컷 쥐들 중 한 마리와 교미를 해 새끼를 밴 상태였다. 암컷 들쥐의 3분의 1은 다른 수컷과 살림을 차렸고, 또다른 3분의 1은 다른 수컷들 한두 마리를 유혹해 성공적으로 교미를 했으며 마지막 3분의 1은 같은 수컷하고만 살았다.
왜 어떤 들쥐는 바람기가 있고, 다른 들쥐는 성실할까? 들쥐들의 뇌는 제각기 모두 다르다. 에모리대학의 신경학자인 래리 영은 일부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더 많음을 발견했다. 최근의 한 실험에서 그는 뇌 내의 바소프레신 수용체 수를 영구적으로 증가시키는 유전자를 들쥐에게 주입했다. 그러자 이 들쥐들은 교미도 하지 않은 암컷들과 짝을 지어 살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들은 최소한 24시간 동안 교미를 해야 결속력이 생겨난다”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수용체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교미 후에 같이 살 지 떨어져 나갈 지의 차이가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상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이 혼란스러운 사랑과 욕망의 경험들을 진화론은 어떻게 설명할까? 피셔는 “낭만적 사랑과 애정의 신경계가 서로 다른 이유로 진화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낭만적 사랑은 사람들이 짝을 지을 예비 후보들을 구별하고 ‘임신을 할 때까지 이들을 따라다닐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고 피셔는 말한다. 그녀는 ‘애정’이 짝지은 상대와 아이를 기를 수 있을 때까지 참고 살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이라고 한다. 페퍼 슈왈츠도 “인간은 생물학상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지만 성관계까지 일부일처제가 된 건 별로 바람직한 진화적 방법이 아니다. 짝이 죽어도 번식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이에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사랑이나 애착과 관련된 감정의 생화학적 과정은 물론, 그 이상의 것을 밝혀내려고 한다. 인셀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자폐증은 물론 스토킹이나 극단적 질투와 같은 질병의 치료법을 연구중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애착성 약이나 일부일처제유지 알약 같은 것을 사고 파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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