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가 어느 날 갑자기 명차가 된 것은 아니다. 80년 전인 1922년, 22세의 영국 엔지니어인 빌 라이온즈와 10년 선배인 윌리엄 웜슬 리가 함께 세운 스왈로사이드카(Swallow Side Car)제작소가 사이드카를 개발한 것이 재규어의 탄생 시초가 됐다. 사이드카는 모터사이클 옆에 한 사람이 앉아서 갈 수 있도록 만든 차마. 재규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된 차인 사이드카 SS100은 아직도 1년에 16대만이 생산된다. 엔지니어 4명이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1인당 소화하는 공정도 4천 개가 넘는다. 재규어가 다르다는 점은 바로 이렇게 ‘수공(手工)’제작의 역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첨단기술 적용한 디자인
카마니아들에게 재규어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첨단기술과 접목시킨 최고의 차로 손꼽힌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던 엔지니어 빌 라이온즈는 자동차 제작에서 스포티하면서도 기품이 살아있는 독특한 디자인을 먼저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은 기술이라는 길목과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감각을 가진 엔지니어 출신답게 빌 라이온즈는 가능한 자동차의 높이를 낮추어 스포츠카와 같이 공기저항을 덜 받는 방법을 연구했다. 재규어 사장 닉 쉴은 “당시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엔진을 운전석 쪽으로 옮기는 FM(Front Midship)방식을 채택, 차량의 충격흡수를 최소화하는 테크닉을 구사하고 로드스프링을 측면에 놓게 해 차체가 길고 낮으면서도 스포티하게 보이는데 성공했다”며 “오늘날의 재규어도 바로 이러한 엔진 디자인을 기초로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루미늄차 생산, 유럽 시장 본격 공략
96년 스포츠카 XK8과 99년 마크Ⅱ, 99년 세단 S-타입, 2001년 스포츠 세단인 X-타입으로 재규어는 발빠른 변신과 도약을 내다보고 있다. 특히 작년 발표한 X-타입은 섬세하고 민첩한 핸들링과 재규어 차로는 처음으로 4륜 구동방식을 표준으로 장착, 안전성과 노면 접지력이 높고 구동력의 60%가 뒷바퀴에 맞춰져 있어 스피드 감각을 크게 살린 것이 특징이다. 최근 재규어는 향후 2년에 걸쳐 생산하는 모델의 3분의 2를 알루미늄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알루미늄은 가벼워 연료소모가 적고 배출가스의 오염도가 적은 장점이 있다. 유럽시장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다. 전통을 살리고 현대적인 감각과 첨단기술을 접목시킨 재규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지 사뭇 기대된다.
재규어는 언제 만들어졌나
재규어의 시초는 1922년 영국 블랙풀 북부의 작은 해안에서 모터사이클을 ‘사랑’했던 21세의 빌 라이온즈가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모터사이클 사이드카를 제조하던 윌리엄 웜슬리와 함께 세운 스왈로사이드카(SS : Swallow Side Car)제작소다.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사업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빌 라이온즈는 탁월한 기술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사이드카는 가벼운 알루미늄과 독특한 디자인을 가져 인기를 끌었던 차로 모터사이클 옆에 1명이 탑승할 수 있는 차였다. 사이드카는 2차대전 때 나치의 장교들은 모터사이클 운전자를 대동하고 타고 다니기도 했다.
빌 라이온즈는 허버트 오스틴이 개발해 출시한 가볍고 운전이 쉬운 오스틴 세븐(Austin Seven)이 인기를 끌던 1927년, 예쁜 디자인의 2시터 섀시를 오스틴 세븐에 얹어 오스틴 스왈로(Austin Swallow)를 만들어 내면서 앞날이 불투명한 사이드카 제조가 아닌 자동차제작에 힘을 쏟았다. 이들은 1945년 회사명을 ‘재규어자동차회사’로 개명했다. 후에 영국 왕실의 자동차로 지정되기도 한 재규어는 1950년대부터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등에서 우승을 휩쓸면서 그 명성을 높여나갔다. 지난 99년에는 S-타입 생산과 더불어 연간 생산 10만대 규모로 도약하면서 2001년에는 X-타입의 발표와 함께 20만대 규모로의 재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규어는 앞으로 3∼4년 이내에 새로운 차종인 F-타입 로드스터 라인을 발표해 연간 20만대 이상을 생산할 계획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