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 같은 소식인가.
지난 91년 봄,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실종된 대구시 달서구 성서초등교 다섯 명의 어린이들, 소위 개구리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동리의 바로 코앞인 와룡산 자락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생존에 한 가닥의 희망을 걸었던 소년들의 부모들은 그야말로 낙심천만이 아닌가? 우선, 그들에게 위로와 명복을 빈다.
뉴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라면 이들의 사인을 밝히는데 곤충학자까지 동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곤충학자까지 동원된 경우는 처음인 것 같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곤충학자가 끼어 든 이유를 모를 것 같아 오늘은 법의곤충학(法醫昆蟲學, Medicolegal Entomology)이라는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방영된 사극에서 등창이 난 왕에게 칼질(수술)을 할 수는 없기에 거머리로 고름을 빨아내는 장면이 연출되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것 같다. 현대의 외과병원에서도 수술로 고름을 빼내기 어려운 경우나 수술에 의한 외상을 줄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거머리보다는 파리의 애벌레(구더기)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농작물 해충의 천적으로, 비단실을 얻는데, 병원에서 곤충의 유충인 구더기를 이용하는 것 모두가 응용곤충학(應用昆蟲學)의 일부이며 이번에는 살인사건을 규명하는데도 곤충학이 동원된다. 즉, 형사들이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 흔히 법의학자(法醫學者)들의 도움을 받지만 오래된 시체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데는 법곤충학자(法昆蟲學者)의 도움을 받는다. 곤충학자는 그 시체에 모인 곤충의 종류를 조사하여 과거의 시간을 추정하는 것인데 이 분야의 학문을 법의곤충학 또는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700여년(서기 1235년) 전에 법의학적 지식을 살인사건에 활용한 기록이 있다. 농촌에서 살인도구로 쓰였던 낫에 파리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그 낫의 주인이 범인임을 알아냈다는 기록이다. 서양에서는 훨씬 뒤인 1850년 프랑스에서, 오래된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던 사람의 누명을 벗겨 준 벨그레(Bergeret) 박사의 판결이 법의곤충학의 효시(嚆矢)이다. 집안의 벽장 속에 묻혀있던 시체에 모여든 곤충으로 보아 사건은 이미 오래 전에 일어난 것이므로 현재 집주인이 아니라 먼저 살던 주인이 범인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 법의학자는 오래된 시체의 사망시간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
현재 많이 연구중인 방법의 하나가 시체에 모여든, 또는 이미 지나간 곤충의 종류를 조사하는 것이다. 시체가 유기되면 가장 먼저 검정파리 무리(본지 10월호 36쪽 참고)가 모여드는데 이 무리 중에도 먼저 오는 종과 다음에 오는 종의 순서가 있다. 거의 뼈만 남았을 때는 암검은수시렁이, 순전한 뼈나 털에는 송장풍뎅이, 등과 같은 딱정벌레 무리가 모인다.
한편, 지금 시체를 먹고있는 곤충은 어느 단계까지 자랐는가, 혹은 성충이 되어 이미 날아갔는가 등을 참고한다. 파리들은 시체에 흐르는 유기물은 직접 핥아먹기도 하지만 주목적은 거기에다 알이나 새끼를 낳아 자기의 자손을 융성 시키는데 있을 것이다. 송장풍뎅이는 자기가 먹는 것보다 전적으로 새끼를 위한 것이다. 어느 곤충이든 자라는 동안 애벌레와 번데기의 시기를 거치며 각각의 기간은 종별로, 환경조건별로 어느 정도 일정하기 때문에 시간을 역산할 수 있는 것이다.
시체가 사람처럼 큰 동물이 아니라 개구리나 쥐처럼 작은 동물일 경우는 방문객의 계보가 짧고 순서도 다르다. 물론 이들에게도 검정파리가 제일 먼저 온다. 그렇지만 곧바로 딱정벌레의 일종인 송장벌레 무리가 모여들어 시체 바로 밑의 땅을 판다. 시체가 등에 업혀있는 상태로 땅을 파기 때문에 시체의 둘레와 같은 모양의 구덩이가 생기고, 시체는 지구의 중력 때문에 구덩이 속으로 묻히게 된다. 묻힌 시체는 송장벌레 새끼들의 먹이가 되지만 파리의 새끼들은 흙 속에서 살수가 없다. 비록 파리가 먼저 찾아왔지만 소득은 없는 셈이다. 자연에서 죽은 동물들은 이렇게 송장벌레가 땅에 묻어주고, 그 새끼들이 분해시켜주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송장벌레 무리를 “자연의 청소부” 또는 “청소부곤충”이라고 한다. 사실상 이들은 자연계의 순환, 특히 물질계의 순환에 절대적인 공로자들이다. 소나 코끼리와 같은 대형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처치하는 소똥구리 무리도, 산림 속에서 죽은 통나무를 파먹어 분해시키는 흰개미 무리도 우리의 생태계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어쨌든 사람은 고사하고 들짐승의 시체만 보아도 혐오감에 빠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이는 곤충을, 그리고 그들의 종별 성장과정까지 조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그래도 프랑스의 므닌(P. Megnin)이나 미국의 모터(M.G. Motter) 같은 학자들은 시신의 경과시간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한편, 제 2차 세계대전 때 약 한달 동안 많은 시체들이 괌 섬의 바닷가에 방치되었었는데 보어트(G. E. Bohart)와 그레싯(J. L. Gressit)이라는 학자들은 본의든 아니든 이들을 계속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자료가 얻어지기도 했다.
인간은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同族捕食性, cannibalism)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우월감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구를 죽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인 자를 찾고자 죽은 자의 사체를, 심지어 그곳에 모인 벌레까지 검사한다.
과연 무엇을 위한 주검이었는지, 이것 역시 인간세상의 아이러니 중 또 하나가 아닌가!?
대구의 개구리소년들은 타살 여부만 불확실한 것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치아도 없으니 실질적인 사망장소도 미확인 상태다. 한 토막의 곤충이라도 함께 발견되었다면 사망장소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곤충학자의 참여 가능성조차 미지수이다. 어쨌든 이들의 사인은 꼭 밝혀져야만 하고, 타살의 경우라면 살인자에 대한 처벌이 지극히 엄해야 한다. 이 경우까지 범죄의 법적 시효를 적용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성신여대 생물학과 김진일교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