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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과 기생충의 무위도식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산에는 소나무가 많다. 그런데 옛날에는 소나무에 송충이가 많아 여름에 산에 갈 일이 생기면 참으로 고역이었다. 어른 가운데 손가락만큼이나 크고, 보기에도 흉한 송충이가 머리위로 떨어지는 수도 있고, 키 작은 소나무가지를 스쳤다가는 송충이 털이 피부에 박힌다. 박힌 자리는 벌겋게 부어 오르고 매우 가렵다. 이렇게 보기도 흉하고 자칫하면 괴로움을 당하는데 어린 중학생들까지 동원하여 송충이를 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어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 때 깡통과 나무 젓가락을 들고 산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송충이를 볼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에 한국곤충연구소(고려대 부설)에서 이들의 천적을 연구했고, 이때 개발된 천적에 의해 퇴치되었기 때문이다.

송충이 천적의 연구가 끝날 무렵, 원래 북미지방에 살던 미국흰불나방이 국내로 침입하여 우리 국토의 생태계를 크게 교란시켰다. 이 나방의 애벌레는 국내의 어느 활엽수든 잎새를 모두 갉아먹었다. 한참 번성하던 1970년경에는 한 여름인데도 중부지방의 들과 야산의 풍경이 마치 겨울 같았다. 이들의 피해로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나방 역시 퇴치할 필요가 생겼고, 역시 천적의 개발 연구에 착수했다. 천적을 이용하면 사람까지 위험한 살충농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기존의 다른 동물생태계에도 피해가 없으며, 송충이의 퇴치연구 때도 좋은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위해서는 원산지(캐나다)에서 천적으로 활동하던 동물을 수입해서 증식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수입 전에 그 천적이 우리 나라 환경에 잘 적응하고 정착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원래 우리 나라에 살고 있던 다른 생물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인지 등의 연구도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니 천적생물의 수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전 연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국내에서 자생하고 있는 생물 중에서 천적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몇 몇 종의 천적을 수입하여 생태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재래의 천적을 찾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약 2년에 걸쳐 맵시벌이나 좀벌, 기생파리 등과 같은 기생성 곤충 27종, 사마귀, 침노린재 등과 같은 포식성 곤충 27 종, 균류(菌類: 버섯과 곰팡이류) 6 종 등의 총 60 종이 알과 애벌레의 천적으로 조사되었고, 성충인 나방만 잡아먹는 거미도 7 종이 발견되었다.

다음은 이들 중 어떤 종이 가장 효율적이며, 인공적으로 증식시키기 쉬운지를 알아야 한다. 일차적인 연구대상은 나방의 번데기에 기생하는 벌 종류였고, 벌 중에서도 맵시벌의 자연기생율을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연구가 결코 만만치 않았었다. 조사대상으로 삼았던 맵시벌은 크기가 비교적 작은 종이어서 한 개의 나방 번데기에 보통 4∼5 마리가 기생한다. 어떤 번데기에서 이 맵시벌이 한 마리만 나오기에 더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러 날을 기다렸는데도 더 나오지를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그 번데기를 갈라 보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는 2개의 기생파리 고치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파리 역시 나오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고치에서 수상한 기미가 보였다. 이 고치들도 갈라보니 한 개는 거의 다 자란 벼룩좀벌들이 들어있었고, 다른 한 개는 같은 좀벌이 절반 정도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죽어서 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흰불나방은 일차적으로 각종 활엽수의 잎에 기생한 것이고, 한 마리의 맵시벌이 한 마리의 나방 애벌레에게 산란했는데(2차 기생), 애벌레가 번데기로 될 때까지 그 속에서 자란 맵시벌 중 한 마리는 생존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벌들은 기생파리에게 기생 당했다(3중 기생). 이 파리 번데기에 좀벌이 다시 산란했고(4중 기생), 좀벌 중 일부는 박테리아의 공격(5중 기생)을 받은 것이다. 곤충의 세계는 이렇게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그 수단방법은 너무나도 극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세계는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



앞쪽의 글에서는 맵시벌을 천적이라 불렀고, 방금 전의 문장에서는 기생충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같은 곤충을 천적이라고 표현했을 때는 마치 이들과 우리가 전부터 친숙했었고 득도 많은 곤충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기생충이라고 했을 때는 다른 감정이 든다. 천적은 무엇인가 일을 한 공로가 있고, 그래서 그 대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기생충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이 한평생 죽을힘을 다해 성숙시켜 놓은 몸뚱아리를 부분적으로 또는 통째로 빼앗아간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선(大選)이 멀지 않았으니 국내의 모든 매스컴들이 차기 대통령 후보에 관한 기사로 가득 채우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직접 후보인 인사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남의 눈치를 보다가 철새처럼 돌아다니는 인사에 관한 내용도 많다.

아마도 머지않아 부적당한 방법으로 공금을 빼내 특정후보의 선거자금으로 넘겨준 고급 공무원에 관한 기사도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런 예상은 해서도 안되고, 현실이 되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천적과 기생충을 생각하다 보면 인간 중에서도 특히 정치라는 탈을 쓴 사회에는 무위도식만을 하는 기생충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부정적인 인간인가, 아니면 이런 의심을 갖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자들이 반성해야 할 것인가 ?

열대지방에 사는 노린재의 일종인데 흔히 자객벌레라고 불리는 곤충이 있다. 이 노린재는 흰개미를 잡아먹는데 먼저 잡은 개미들의 체액을 몽땅 빨아먹은 후 그 시체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덮는다. 덮어서 위장을 하면 다른 개미들이 속아서 아주 쉽게 많이 잡혀 먹힌다. 개미도 사기를 당한 것이고, 곤충의 세계에도 사기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사기꾼처럼 그 수단과 방법이 다양하고 교묘한 동물의 경우는 아직 발견된 예가 없다. 우매한 다른 동물들도 앞으로 더 진화해서 사기꾼 인간처럼 발전할 것인가 ?, 아니면 사기꾼이나 기생성 인간들은 이제 너무 지나치게 진화했으니 앞으로는 자멸할 것인가 ? 필자로서는 아직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능력이 없다. 오직 내가 국가에 바친 세금을 훔치거나 공짜로 먹어치우는 인사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바램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민초들, 정말로 힘든 노력의 대가로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의 바램이다.
성신여대 생물학과 김 진 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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