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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증거

아침 안개가 산자락에 걸려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온 15명의 범죄 현장 조사관들이 테네시주 녹스빌 외곽에서 곳곳에 파편 구멍이 난 폰티악에 다가선다. 몇 분 전 이 자동차의 객석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해 측면 창들이 폭파되고 앞유리 바람막이가 허공으로 15m나 날아갔다.

현장 책임자인 앨라바마 하트셀 경찰서의 탐 스파크스 반장은 현장 스케치 요원과 사진사에게 자동차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도록 하고 다른 5명의 범죄현장 수사관들에게는 폭발 원인 관련 증거 확보를 위해 자동차 해체를 지시했다. 다른 7명의 대원들은 스파크스와 함께 현장 주변 한쪽으로 늘어섰다. “앞으로”라고 그가 고함을 치자 모두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등을 구부린 채 단서들에 표시를 했다. 몇 분이 지나자 축축한 땅 곳곳에 주황색 단서 표시 깃발이 꽂혔다.

보네빌에서는 캘리포니아 모데슬로에서 온 키 큰 금발의 증거수집 전문가 조이 스미스가 객석과 바닥판이 있었던 붉은 점토 구멍을 들여다 본다. 그녀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전선과 금속, 플라스틱 파편들로부터 폭발물과 유사한 것을 찾아내려 뒤지고 있다. “이제 전자제품점에서 시간 보내는 방법을 알 것 같아요. 제겐 제품들이 모두 자동차 부품 같아 보이거든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조사 시작 후 30분이 지나자 중요한 단서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한 대원이 객석 좌석 밑에서 한쪽 면에는 가는 선들이 붙어있고 반대편에는 ‘1 ’이라고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 아연 철판 덩어리를 끄집어 낸다. “이거 1 인치짜리 파이프 같은데요”라고 그가 말한다. 다른 대원들도 구멍이 뚫린 모형 인형에서 쇠파이프 조각들을 빼낸다. 파이프 조각들의 잘린 면에는 고성능 폭약이 사용됐음을 알려 주는 군청색 윤기가 돈다.

산산조각이 난 운전자석에서 오하이오 범죄 전문가 맷 듈라니는 납작하게 구부러진 금속을 파내어 코에 갖다 댔다. “화약냄새군요“라고 그가 말한다. “태엽식 시계에 둥근 스프링이 있지 않나요?” 주변 수색대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파이프 폭탄과 뇌관을 함께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 조각들을 찾아냈다. 과학수사대원들은 머리가 희끗한 해병대 출신 폭발물 전문가를 마주보고 섰다. “잘 했어”라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내가 파이프에 C4 1파운드를 넣고 시계를 묶어 손님용 좌석 밑에 넣어뒀지.”

다음 얘기를 해보자. 녹스빌의 폭발물 해체반 지휘관인 반 제이 부벨은 오늘 아침 또다른 깜짝 놀랄 일을 준비했다. 그는 대원들에게 훈련장 건너편에 있는 의상용 마네킹의 우아한 발에 묶여진 구두 폭탄을 주시하도록 했다.
“단순한 비행기 승객처럼 보이지.” 뇌관 폭파용 도전선을 손에 쥔 채 부벨이 말한다. “하지만 더 똑똑하지.”
콰광.

이런 식으로 방화와 폭탄, 부비트랩에 관한 국립 과학수사 학교에서의 7주차 교육과정 중 하루 일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은 사법연구소와 테네시 대학, 오크 리지 국립연구소와 여러 주 및 지역 치안 기관들의 공동 후원하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학생들은 현재 10주 과정을 절반 이상 마친 상태인데, 이 과정에는 사후 지문 채취와 혈흔 분석, 유골 분포 분석, 무덤 탐지, 사이버 범죄와 대량 살상 무기 과정, 그리고 FBI 증거 복구팀이 까다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모의 범죄 현장들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실습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설립 2년차인 국립 과학수사 학교에서는 취약한 과학수사 분야에 높은 국가적 조사 기준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TV시리즈물인 CSI에 나오는 고도로 전문화된 실험실 과학자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미 범죄 현장 조사관들은 지역 경찰서 출신의 일반 요원들이다. 이들의 훈련 과정은 시당국의 에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결과 전문지식 부족으로 인한 단서 유실이나 증거물 훼손으로 수많은 사건들이 중단되고 만다. O.J. 심슨 사건처럼 변호인측이 철저하지 못한 범죄 현장 처리 절차를 공격하는 식으로 끝장이 나버리고 마는 사건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 학교의 학생들이 초보자라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이 학교에서 5주차 수업중인 남녀 학생들 모두 이미 여섯 개 이상의 증거 수집 과정을 이수했고 수년간 CSI식 현장 경험도 있다. 모데스토 출신 증거 수집 전문가인 스미스만 해도 450시간이 넘는 훈련과 8년간의 현장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서 누군가가 책의 내용을 가지고 하는 강의를 듣는 것과 이곳에 와서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부터 실질적인 훈련을 받는 걸 비교할 수는 없죠”라고 말한다.

사실 이 학교는 실질적인 훈련 과정과 보기 드문 최정예 교수진 덕분에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학교의 무시무시한 실습 도구 목록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각 학급마다 여섯 구의 시체와 유골 두 세트, 6~7핀트의 신선한 피를 가지고 실습한다. 이 학교 조정관인 자렛 핼콕스와 나땅 레퍼브르도 차 두 대와 몰수 대상 저택 두 채를 훔쳐 각 학급이 혈흔, 화재, 폭탄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학교 고유의 특징인 극단적 사실주의는 대부분 테네시 대학의 유명한 법의인류학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 대학의 야외 법의인류학 연구소인 시체 농장은 무덤 발굴과 사체 복구에 기증된 실제 사체를 이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실제 시체’로 실습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핼콕스는 말한다. “이곳의 학생들은 시체 발굴 작업 기회가 거의 없는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후에는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고 핼콕스가 인정한다. “구두 폭탄 실습에는 실제 시체를 사용하지 않았죠”라며 폭탄 학습 주간에 그가 사과하듯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탄과 제가 뒷청소를 해야할 참이었거든요.” 학생들은 내쉬빌에 있는 주 의학 검시관의 사무실에서 3일간 실습을 하는데, 이곳에서 이들은 사체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때 실리 퍼티 조각이 부패중인 손가락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장딴지나 둔부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좀 더 까다로운 기법도 배운다. 이 기법은 강간이나 몸싸움을 동반한 살인사건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학급의 학생들 중 아무도 이 기법을 마스터하지 못하던 차에 4주차가 되자 CSI에 등장했던 휴대용 ‘수퍼 글루’ 가열 기술의 발명자 아트 보하난이 학생들에게 사체를 약 21℃ 정도로 덥혀 가열된 수퍼 글루인 시안화아크릴산염을 쏘인 후 자성 분말을 뿌리고 선명하게 드러난 지문을 밀착지로 떠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세계적 수준의 이 학교 교수진에는 법의인류학자이자 시체 농장 설립자인 윌리엄 바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5주차에 학생들에게 부패된 시체 옆에서 가끔 발견되는 ‘장갑’ 피부에서 떨어진 살점으로부터 지문을 채취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 티슈를 밤새 물양동이에 넣어뒀다가 스타킹처럼 생긴 이 장갑에 손을 넣는 것이다. 북미 혈흔 분석의 대가인 허버트 맥도널의 제자로 널리 알려진 폴렛 서튼이 혈흔 실습 주간을 담당한다. 법의생화학자이자 사망시간 추정 전문가인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소속 아패드 바스는 1주차의 혈액내 발생 병원체 수업과 5주차의 사체 부패 수업, 그리고 9주차의 대량살상 무기 수업을 맡는다.

방화 및 폭탄 실습 주 2일차엔 국립 과학수사 학교 법의인류학자인 조앤 데블린이 시보레 사이테이션 자동차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다음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연소된 유골 전문가인 데블린은 화재 사고와 방화 조사법을 가르치면서 숯이 된 뼈 잔해의 식별과 복구를 강조한다. 그녀는 총상과 다른 외상이 연소되어 변형된 모양을 해석하는 데 전문가이다. 그녀는 이 학교에서 지명한 방화전문가이기도 해서 그 전 주말에 방 4개짜리 농가를 수요일의 실습을 위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오늘 데블린과 그녀의 공동 강사들은 세 명의 CSI 요원들에게 모의시험을 내면서 방화가 보험금 관련 사기극인지 복수나 살인을 위장하기 위한 것인지 현장에서 바로 결정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빠른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분석실에서 결과가 나오려면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처음에 놓친 단서들은 중간에 사라지거나 파손되어 버린다. 이미 이 학급 학생들은 데블린과 화재 조사 전문가인 마이크 달튼, 그리고 알콜, 담배, 무기 및 폭발물 단속반의 특수요원인 데니스 커네머가 촉진성 연료에 의한 방화의 결과와 의도적으로 방 구석에 놓고 불붙인 쓰레기통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안이 보이도록 한쪽 벽을 터서 만든 실습용 ‘화재 방’ 두 개를 태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범행의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단서들 중에는 가솔린을 뿌리며 지나간 흔적이나 카페트와 가구, 벽에 ‘서둘러 뿌려대’ 탄 흔적이 있다. 창유리에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창문틀 바로 안쪽에 잇는 긴 파편자국들은 사전 침입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반면 무질서하게 놓인 작은 유리 조각들은 열을 받아 창문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 화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전구는 강한 열이 나는 곳으로 부풀어 오르며 팽창하는 경향이 있어 좋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마치 ‘이 바보야, 여기를 봐’ 하고 말하는 것 같죠”라고 달톤이 설명한다.

같은 날 아침 일찍 학생들은 조금도 겁먹지 않은 채 데블린의 끔찍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보았다. 근접 촬영한 사진들은 차례로 화재 사건들을 보여주었는데, 각 사진마다 불이 나는 동안 타 죽는 희생자와 화재 발생시 이미 사망해 있는 사람들 간의 두드러진 특징들이 그래픽으로 표시돼 있다. 화재시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붉은 깃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코와 입 주변에 검정 그을음이 덮인 경우는 화염에 휩싸였을 당시 호흡을 하고 있던 화재 희생자의 사진이다. 얼굴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안전한 곳으로 기어가려 했거나 머리 위의 연기를 피하려 수그렸음을 나타낸다. 한편 데블린은 학생들에게 권투 선수 포즈를 한 채 심하게 타버린 사체를 격투나 자기방어를 한 것으로 오인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사실 이런 자세는 근육이 타면서 오그라들어 생긴 것이다.

불붙은 시보레 자동차가 식기를 기다린 후 데블린은 학생들을 연기가 나는 차로 데려가 불타버린 유골들이 얼마나 잘 부서지는지 손을 뻗어 재를 만져보도록 했다. 학생들은 이전 몇 주 동안 주의 시체 안치소와 시체 농장에서 다룬 여섯 구의 시체보다도 이번 데블린의 실습에서 사용된 희생자 다루기를 더 어려워했다. 하지만 이 실험 차량에서 불태운 것은 세 구의 짐승 시체였다. 학생들이 선뜻 나서려 하지 않자 데블린은 차 트렁크를 열고 시커멓게 탄 너구리 잔해에서 어금니를 한 개 빼 들었다. “이게 만약 여러분이 희생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거라면 어떻게 하지?”라고 그녀가 물으면서 너구리 이빨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먼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학생들이 숯이 된 뼈를 만지기 시작하자 데블린은 손과 발, 얼굴의 특징들은 타서 없어져도 그 밑부분은 남는다고 지적한다. 시체가 트렁크 바닥에 기대어져 있던 곳에서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지 않는다. 데블린은 학생들이 숯이 된 뼈들과 다른 화재 잔해들을 식별하는 어려움을 겪어보도록 하려고 한다. 그녀의 수업 중에는 다소 칙칙한 ‘숨은 왈도 찾기’가 진행된다. 통에 숯이 된 뼈 부스러기들과 이와 똑같아 보이는 타서 부스러진 천장 타일 등을 뒤섞어 놓고 구분해내는 것이다.



이전 몇주간의 현장 실습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도 가능하리라 상상치 못했던 정도로 이들의 관찰력은 날카로워졌다. 5주차에 하루 동안 진행되는 표면 분산 실습 동안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은 시체 농장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30개의 뼈 조각들을 복구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강사들은 야생동물들이 살인 사건 희생자의 유골을 분산시켜 놓는 것처럼 오래된 뼈들을 나무들로 둘러싸여 빽빽한 덤불 밑에 묻어 둔다. “뼈들이 막대기나 나뭇가지와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배튼 루지 범죄 기술단의 패미 앤더슨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더슨네 팀이 뼈 한 개만 빼고는 모두 찾은 반면 다른 팀은 뼈 30개를 모두 찾은 데다 이전 수업 시간 학생들이 남겨둔 앞이마 뼈 한 개를 추가로 찾아냈다. 아주 자랑스러운 결과였다.

이 두 팀의 합계 점수는 이전 어느 수업의 결과치보다도 높았다. 목요일 밤이면 이 학교의 다섯 번째 수업이 다소 머리를 덜 써도 되는 오락으로 바뀌면서 수업용 유니폼(검정 장화, 전투복 바지, 해골과 총, 지문이 새겨진 폴로 셔츠)을 벗고 진과 스웨터를 입게 된다. 오후 9시쯤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피자와 맥주를 손에 들고 쾌적한 기숙사로 사용되는 회사 아파트들 중 한 채에 모여 TV 앞에 앉는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황금시간대 드라마를 할 시간인데, 학생들 중에는 이 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 ‘각자가 꿈꾸는’ 내용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바로 CSI이기 때문이다. 이 쇼를 통해 일반인들은 CSI가 하는 일과 신속한 처리에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학 출신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CSI의 인물들은 실제로는 주와 지역 범죄 연구실의 울타리 안에서 일하는 ‘샌님’에 속하기 때문. 사실 이 실험실들 중 일부에서는 이따금씩 지역 경찰의 현장 조사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 이동 실험실을 운영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직접 합니다”라고 노스 캐롤라이나 오렌지 카운티 경찰서 소속 수사관인 팀 혼이 말한다. “증거 수집도 우리가 하고 처리도 90%는 우리가 직접 합니다.” 혼이 소속된 경찰서와 같은 전형적인 중간 규모의 치안 기관에서는 지역 수사관들이 간이 증거실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학생들은 CSI에서 사용된 기술들이 대체로 고가이고 다소 과장됐으며 너무 겉치레이긴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속의 라스베가스 과학수사 연구소의 한 시청각 전문가가 압수된 스너프 필름에 잡힌 초점이 흐린 한 인물 목의 사마귀를 자세히 보려고 확대하자 야유가 시작된다. 수사관이라면 누구나 보안용 카메라에 찍힌 비디오를 다루면서 배웠듯 이미 초점이 안 맞은 사진의 초점을 다시 맞출 수는 없다. 디지털 조작으로 초점이 더 잘 맞게 보정할 수는 있지만 미세한 부분이나 정확도는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잠시 광고가 나온 후 드라마상의 인물 워릭이 하듯 환한 대낮에 피를 형광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드라마상의 CSI 요원들이 분석 결과를 너무 빨리 얻어낸다고 불평한다. “저 친구들 지문을 스캔하자마자 죄수 이름이 바로 뜨네요”라며 휴스톤의 범죄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던컨이 비웃는다. “제발 그래 봤으면!”

실제로 지문 대조 작업은 특정 주나 지역에서 체포된 사람들의 지문과 채취된 지문을 대조하는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인 자동지문식별 시스템을 이용해도 수 일에서 수 주가 걸린다. 그런 다음에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는 지문 한 개가 아니라 수많은 유사 지문들을 쏟아내어 수사관이 힘들게 하나씩 일일이 대조해 보아야 한다.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DNA 샘플 대조 작업은 대조 대상이 되는 통합 DNA 인덱스 시스템(CODIS)과 같은 데이터 베이스의 크기에 따라 여러 달에서 일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증거를 제출하고 그냥 숫자나 세며 기다릴 수 밖에 없어요”라고 혼이 말한다. “우리 사건이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주의 다른 기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쇼 때문에 범죄 희생자들이 수사관들의 능력에 대해 잘못된 기대감을 갖게 됐다고 학생들 모두가 입을 모은다. “한 여성이 제가 창문틀을 면봉으로 훑어 DNA를 채취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따지더군요”라며 미시시피 수사관인 크레이그 버뎃이 설명한다. “설사 DNA 샘플을 채취했다 해도 50달러짜리 TV 도난 사건 때문에 500달러짜리 DNA 테스트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방의 작은 보안관 사무실 출신이든 대도시 경찰서 출신이든 상관없이 이 범죄 현장 수사관들은 DNA 지문 감식 의뢰 같은 외주 비용과 증거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약품과 장비 구입 자금을 타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해서 그 물품들을 받게 된다는 얘긴 아닙니다”라고 혼이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워 온 첨단 장비들 모두 고맙긴 했지만 월마트 제품을 주었을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생들은 3주차에 배운 현장 지문 채취 기술을 가장 선호한다. 이 작업에 필요한 거라고는 강력접착제와 스티로폼 컵으로 대강 만든 지문 그슬림 상자 안에 든 담뱃재 뿐이기 때문. 이들은 간이상점에서 파는 아교 막대와 유리 닦개, 열 가지가 넘는 온갖 접착 테이프들을 이용해 만든 지문 채취용 젤과 띠들도 좋아한다. “우리 경찰서에서도 보나마나 25달러짜리 약품 봉지보다는 3달러짜리 엘머 파란 아교 막대를 사라고 할 겁니다”라고 혼은 말한다.

새로 배운 기술들을 사용해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이제 마약 딜러들이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채워 넣은 싸구려 샌드위치백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지문을 채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앨라바마 몽고메리의 범죄 전문가 스티브 스미스가 말한다. 분명히 품질이 나은 집록 백일수록 지문 채취가 용이하다. 하지만 이제 스미스는 저렴한 비용으로 얇은 플라스틱 필름에 지문을 채취하는 새로운 기술을 알고 있다. 일반 수조를 그을림 상자로 이용해 그는 고강력 접착제 몇 방울을 가열해 흰 연무를 발생시켜 지문의 아미노산에 점착되도록 한다.

그런 다음 그는 증거물을 부드럽게 잡아 늘려 고강력 접착제에 의해 옅은 흰색으로 보이는 지문에 형광성 염료를 뿌려 밝은 주황색을 띠도록 해 APIS 데이터 베이스 검색에 필요한 선명한 사진 촬영이 가능하도록 한다. 다른 학생들은 현재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술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감옥에 보냈을 살인범들 생각을 하고 있다. 켄터키 벌링톤에서 온 팀 카나한은 한 젊은 여성이 현관에서부터 쫓기기 시작해 집안을 돌아다니며 상처를 입고 결국 차고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은 사건을 설명한다. “우린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었어요”라고 카나한이 말한다. “하지만 혈흔을 읽지 못해 어떤 무기가 사용됐는지 알아내지 못했고 몇 명이 공격했는지도 몰랐어요. 다음 번에는 애기가 달라지겠죠”라고 그가 장담한다. 용의자가 나타나서 카나한은 혈흔 증거를 다시 조사해 볼 계획이다.

이 학교 설립년도인 2001년도 동문들은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테네시주 코크 카운티에서 수사관 데릭 우즈는 살인 유죄판결을 확신하며 대법원 증언을 준비중이다. “전 그 친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사건이 그런 식으로 일어났을 리가 없다고 했죠”라며 2002년 이 학교를 졸업한 지 1주 후에 자신이 맡았던 총격 사건에 관해 얘기한다. 우즈가 범죄 현장인 난잡하게 흐트러진 모바일 주택에 도착했을 때 소파 앞에 늘어져 있는 시체 한 구와 용의자를 발견했다. “그 용의자는 단순히 겁을 주려고 총을 겨눴을 뿐이라고 말했었죠”라고 우즈는 회상한다. “그는 희생자가 덤벼들어 총을 움켜잡았다고 주장했는데” 그 후 벌어진 격투 끝에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되었다.

총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되었다고 우즈는 말한다. “하지만 소파 위에는 피가 없었습니다. 옆쪽 벽에 묻어 있었죠.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혈흔의 방향과 깊이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훈련받은 바에 의하면 총이 위에서 아래쪽으로 발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용의자와 만나 내가 본 대로 얘기했더니 내 말이 맞다고 했어요.”

4기 졸업생인 버지니아 린치버그의 보비 무어 수사관의 경우 그가 녹스빌을 떠나기도 전에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무어는 자신이 이 학교로 출발하기 6개월 전에 발생했던 한 총격 사건을 설명한다. 경찰이 희생자인 중년 여인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머리에 총을 맞고 장작불 난로로 난방도 거의 안된 방바닥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그녀가 끼고 있던 장갑을 과학수사 연구실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화약 잔류물 양성 반응이 나와 그녀가 총을 다루고 있었음이 밝혀졌는데 현장에서는 총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당혹스런 것은 그녀의 머리에 난 큰 상처로부터 나온 피가 이상한 모양의 혈흔을 남겼다는 점이다. 피가 흠뻑 밴 천과 피가 하나도 묻지 않은 천이 번갈아가며 띠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들 중 하나였죠”라고 무어는 말한다. “이 학교에 왔을 때 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살해될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무어가 되돌아 왔을 때 “제 눈 앞에서 사건의 전모가 그려지기 시작했죠”라고 그는 말한다.

무어는 총격후 잔류물과 혈흔 분석 지식을 적용해 가까운 정면에서 총을 맞은 희생자가 어떻게 나무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바닥에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장갑 낀 손을 들어 얼굴에 댄 다음 피부에 묻은 화약 가루를 손에 묻히게 됐는지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그녀의 옷은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녀가 쓰러질 때 주름잡혀 접혀져 있던 부분에는 피가 묻지 않았던 것인데, 무어가 희생자의 머리카락에서 찾아낸 나무조각들은 이 가설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녀는 어느 순간엔가 청소가 안된 바닥에 눕혀져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건 누군가가 그녀를 보려고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었다는 점입니다”라고 무어가 말한다. 그러는 와중에 그때까지는 깨끗했던 옷의 주름을 폈던 것이다. “그녀를 걱정한 누군가가 그랬을 겁니다.”

학교에서 돌아간 후 무어는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를 기소할 계획이던 검사를 찾아갔다. “저는 그 사건에 관해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고 모든 증거들을 정연하게 제시할 수 있었죠”라고 그가 말한다. 사건이 자신에게 아주 불리해지자 이 남자 친구는 2급 살인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이 학교가 효과적인 훈련을 통해 미국내에서 범죄 현장 수사의 수준을 확실히 올려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미 66명의 졸업생들이 본인의 담당 지역으로 복귀해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전파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훈련을 최대화하기 위해 학급을 최소 규모로 운영하기 때문에 미국내 1만8천여 지역 치안 기관들에서 최소한 한 명씩 대표로 뽑아 가르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의 모델로 범죄 현장 수사의 여러 분야에서 전국적인 훈련 표준을 정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셈입니다”라고 핼콕스는 말한다. 법무성도 이와 같은 생각인 듯 하다. 연방정부로부터 어렵게 승인받은 100만 달러의 추가 자금이 이를 대변한다. 이 자금으로는 6,500달러의 수업료를 못 내는 경찰서와 군 보안관 사무실을 보조하고 이 학교의 모기관인 테네시 대학의 국립 과학수사 연구소에 허가된 최초의 기초 연구비로 제공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수사는 혈흔 분석을 황금시간대의 오락거리로 만든 매력적인 마법과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하다. “실제 수사에서는 발로 뛰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앤더슨은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 중 90%는 지루한 작업들이지만 나머지 10% 때문에 할 만한 거죠”라고 그녀가 덧붙인다.

<시체(Corpse)>의 저자인 제시카 스나이더 삭스는 파퓰러 사이언스 범죄 섹션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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