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하나지만 응용분야는 무한대
삼성경제연구원은 최근 전자종이와 서비스 로봇, 인공장기 등과 함께 탄소나노튜브를 ‘산업판도를 바꿀 10대 미래 신기술’로 선정한 바 있다. 탄소나노튜브가 미래 신기술중 하나로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소재는 하나면서도 그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약에 있어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과학분야에 있어 ‘만병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탄소나노튜브라고 입을 모은다. 다양한 분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신제품을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구조는 흑연 덩어리를 둘둘 만 모양. 현재까지의 기술은 길이를 30cm까지만 늘일 수 있지만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늘이는 것이 가능하다. 단순히 흑연덩어리로만 구성된 탄소나노튜브가 현재로서 가장 먼저 이용될 수 있는 분야는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평판 디스플레이장치. 탄소나노튜브는 한 방향에서 전자를 투입하게 되면 반대 방향으로 일반 소재와는 달리 엄청나게 강한 빛을 발산한다. 이때의 탄소나노튜브를 ‘전계방출소자(Emitter)’라고 부르는데 일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화면의 화소사이즈가 작으면 작을수록 화면 밝기가 밝은 반면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하면 화면 밝기는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가 있다.
일반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에는 전자를 방사하는 전자총(CRT)이 있다. 여기서 나온 전자들은 브라운관 안쪽의 형광물질에 부딪쳐 빛을 발하게 되는데 탄소나노튜브가 텔레비전에 이용되면 바로 이 전자총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전기가 더 적게 들어감은 물론, 브라운관 두께도 1mm이하로 얇아져 오히려 쉽게 구부러지는 것이 걱정될 정도다. 따라서 지금의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모양은 손목시계나 벽걸이 그림보다도 더 얇아지게 된다.
초박막 TV 브라운관에 가장 먼저 상용화 될 듯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이 이미 탄소나노튜브를 전자총으로 사용해 3원색(RGB: 적색, 녹색, 청색)을 발생시키며 차세대 초박막 TV브라운관(FED : Field Emission Display)의 가능성을 보인 시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직까지 타국가보다는 기술력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극복해야할 문제가 많아 실험실에서만 존재하는 상황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형광등에서 수은사용이 5년후 사용이 제한되면 탄소나노튜브는 가장 강력한 대체소재로도 이용되게 된다. 현재 GE나 필립스, 오스람 등 세계적인 램프 생산업체들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 일반 형광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미 탄소나노튜브에 전자를 쏘아 형광물질에 충돌시켜 나오는 엄청난 밝기의 강력한 조명기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정전기를 없애는데도 쓰인다. 현재 미국에서 달리고 있는 차량의 60%가 금속성을 띈 탄소나노튜브가 들어간 연료통 및 연료관을 달고 있다. 보통 차량의 연료관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약간의 정전기가 흐른다. 유조차의 경우에는 정전기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때 연료관에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면 정전기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속보다 더 강해져 내구성을 가지게 된다.
이외에도 탄소나노튜브는 우주복과 같은 초강력 섬유와 반도체 응용 트랜지스터, 휴대폰 충전기(충전기의 경우 몇 분만 충전해도 수 천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스텔스기와 같은 군사용, 수소연료전지, 단백질과 탄산가스 등을 탐침하는 센서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신제품에 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분야에서도 탄소나노튜브는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가령, 두통이 있을 경우 현재의 진통제를 복용하면 온몸으로 퍼져 필요치 않은 부분까지 약이 도달해 불필요한 세포를 파괴시키지만 나노튜브의 탄소 링(ring)에 약물을 묻혀 나노로봇을 이용하면 약물을 통증의 원인이 되는 곳으로 쉽게 운반해 원하는 세포의 파괴가 가능하다. 산적한 많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의료분야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정도로 기대되는 신소재다.
학계 연구 세계적 수준
학계도 탄소나노튜브 연구활동에 활발하다. 한양대 나노공학과 나노튜브연구실의 이철진 교수는 최근 물리, 화학, 기계적 특성으로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와 극소형 나노크기 반도체소자, 나노화학 및 바이오센서, 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한 탄소나노튜브를 대량으로 합성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이중벽 탄소나노튜브는 합성방법이 매우 간단하고 대량합성이 가능할 뿐 아니라 품질과 수율도 아주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현재 FED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SDI를 비롯, 효율성과 안정성이 높은 탄소나노튜브 소재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외국의 디스플레이 업체들과 상용화를 추진중이다.
2001년 8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유룡 교수도 탄소나노튜브 신물질 합성과 특성연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 교수는 ‘메조다공성 실리카(SiO)’라고 불리는 다공성 물질을 이용, 카본메조다공성구조결정(CMK)을 만들어냈다. 유 교수는 직경이 수 나노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촘촘히 뚫려있는 작은 터널에 탄소를 채운 후 실리카를 제거하는 음각, 양각적 방법으로 역구조를 만드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탄소나노파이프 신물질을 합성, 고효율 연료전지물질로 응용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연료전지는 미래 탄소나노튜브가 유용하게 이용될 분야중 하나. 유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 고효율 연료처리를 위한 응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백금 촉매를 탄소나노튜브에 넣은 물질의 기능을 측정하는 연구결과도 나올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탄소로 이루어진 터널은 원하는 대로 어떤 물질이든 잘 달라붙게 만들 수 있어 연구결과가 나오면 나노터널 크기와 구조에 알맞은 화학물질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단백질과 효소, DNA, 의약품을 포함한 정밀화학물질을 분리하거나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나 흡착제, 분리제 등으로 쓰일 수 있어 개발치가 상당히 큰 분야다.
산업화 가능한 분야에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필요
탄소나노튜브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는 구조가 간단하면서도 독특한 전기적 성질을 갖고 있어 순수하게 과학을 탐구하는 대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일반인들은 잘 몰랐던 탄소나노튜브가 우리 생활에 점점 더 가까워질”이라고 전망했다. 임 교수는 “현재 나노기술이 화장품, 에어콘 등 많은 분야에서 이용되기 시작하고 있다”며 “새로운 분야를 포함해 산업화할 수 있는 한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소나노튜브 기술이 기존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등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다른 소재물질과의 경쟁이 심하고 g당 수백만원이 나가는 높은 생산비용, 양산기술의 난제 등 해결해야 될 숙제도 안고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원천기술이 모두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소유라는 점이다. 일진나노텍의 유재은 연구소장은 “현재의 우리나라 기술력은 좋은 편이지만 소재에 대한 핵심기술이 모두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사용하려면 비싼 로열티를 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소재에 대한 기술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술개발에 있어 후발 국가로서 응용분야에 더 중점을 두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으로서는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개발비용도 문제. 어떤 큰 성과 없이 계속 투자만을 하다가는 기업들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식으로 체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소장은 이에 대해 “‘우리만의 나노’를 찾고 관련 기술을 집중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관련업체들은 탄소나노튜브 관련 제품이 가정에 침투하기까지는 약 2년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먼저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으로는 초박막 TV 브라운관(FED). 다음으로는 연료전지와 휴대폰 배터리 등의 순이다. 전문가들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 가장 빨리 응용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경우 시장규모를 2010년경에는 15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 강철에 비해 10만배 더 강해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육각형들이 서로 연결돼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원통형(튜브) 형태의 신소재다. 탄소원자가 3개씩 결합해 벌집형태의 구조를 갖게 된 탄소평면이 돌돌 말려 ‘튜브’라고 불리는데 가장 가는 것의 지름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더 굵어도 1천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잡아당기는 힘에 버티는 힘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하다. 과학자들은 탄소나노튜브가 직경이 1.4나노미터(nm)인데다 길이도 마이크로미터(㎛)대에 불과해 수학적으로는 입체라기보다 1차원으로 계산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물질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은 지난 91년. 일본 NEC 연구소의 이지마 박사가 전자현미경을 들여다보다 우연히 이 튜브형태의 탄소분자를 발견했다.
탄소나노튜브는 튜브의 지름이 얼마인간에 따라 도체가 되기도 하고 반도체가 되는 성질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차세대 반도체로서의 가능성에 관심이 주목됐다. 겉으로는 흑연덩어리에 불과한 이 물질이 반도체 등에 이용되면 기존 실리콘의 1만배인 테라바이트급의 엄청난 집적도의 메모리 칩 제작이 가능하다.
서울대 임지순 교수 반도체 사용 가능 이론적 근거제시
하지만 나노튜브는 2억개를 한 다발로 묶어야 겨우 머리카락 굵기가 될 정도로 너무 작은 물질. 따라서 실리콘 위에 회로를 그려 넣는 현재의 반도체 기술은 적용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나노튜브 밧줄을 원하는 대로 자 맞추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나노튜브의 반도체 사용 기술의 개발에는 서울대 물리학과의 임지순 교수가 세계 최초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나노튜브를 반도체소자로 쓰기 위해서는 도핑(doping:소량의 불순물을 섞어 전기가 통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임지순 교수는 여러 가닥의 나노튜브를 붙여 일종의 밧줄로 만들면 나노튜브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기적 성질이 바뀌면서 저절로 도핑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현상을 임교수는 ‘겨울대칭성의 붕괴’라고 설명한다. 좌우가 똑같은 나노튜브가 서로 포개지면서 튜브 형태가 일그러지면 대칭성이 깨어져 불순물을 섞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 전기적 성질을 띄어 메모리칩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메모리를 가진 인간의 두뇌도 이처럼 꼬인 형태다.
임 교수가 지난 97년 1월 <네이처>지에 이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은 나노튜브를 꼬아 만든 밧줄을 반도체 소자에 이용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탄소나노튜브가 서로 엉켜있는 모양은 마치 인간의 두뇌 세포와 비슷하다. 임 교수는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신경세포를 어떠한 슈퍼컴퓨터도 흉내 못내는 것처럼 메모리가 뛰어난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는 탄소나노튜브가 엉켜있도록 놔두고 이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탄소나노튜브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IBM이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반도체 기술 개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IBM은 탄소나노튜브 및 전하를 띤 단일 분자를 이용한 발광체 개발에 성공해 초소형 컴퓨터 및 초고속 통신 기술의 상용화를 한 층 앞당겼다고 밝혔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발광나노(LEN)튜브’라 불리는 이들 반도체 발광체는 직경 1.4㎚로 직경 1.5㎛의 초미세 환경에서 활동한다. 특히 전기를 빛으로 바꿔줄 뿐 아니라 트랜지스터적 특성을 갖고 있어 데이터를 전송해주는 역할을 해 반도체 부품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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