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사스 바이러스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첫 번째 병증이 중국 순더(順德)시의 새와 뱀을 파는 장사꾼에게서 나타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사스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유력한 용의자를 중국 남부에서 발견된 동물로 좁힌다. 이 곳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울려 사는 경우가 많다.
USC대 바이러스학자인 마이클 라이는 사스바이러스의 게놈이 쥐와 조류 바이러스와 비슷한데 이는 사스바이러스가 이 두 바이러스의 혼합체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제가 분석해 본 결과 사스바이러스는 야생동물, 그 중에서도 새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최근 인간과 접촉하게 되면서 종(鍾)으로 진전한 거죠”.
이론상, 사스는 인간세포로 입장할 수 있는 분자 ‘열쇠’를 얻게 되면서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이했다고 라이는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 이 바이러스는 또 다른 종(種)내에서 잠복해 있다가 먼저 인간바이러스와 뒤섞였을 것이다. 예컨대, 돼지가 두 개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되면서 유전자 인터체인지 역할을 하여 두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교환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얼마나 쉽게 변종되고 신종(新種)으로 유해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최근 실험에서 네덜란드 유트레흐트대의 페테르 로티에르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를 추출해 쥐 바이러스에서 떼어낸 유전자 한 조각을 덧붙여 유전자 교환을 모의실험 했다. 이 재조합 바이러스는 두 동물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와 혼합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라이는 말한다.
반면, 프랑스 리용과 캐나다 위니펙의 과학자들은 원숭이, 개, 고양이, 쥐 그리고 토끼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주입했다. 다음 차례는 염소와 양이다. “우리는 이 동물들이 많은 양의 바이러스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얼마나 쉽게 감염이 되는지, 어느 동물이 바이러스를 배출해 내는지, 또 어느 동물이 항체를 형성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라고 WHO 동물 인플루엔자 분야의 사스 전문가인 클라우스 스퇴르는 밝힌다.
이 실험에서 좀더 구체적인 단서가 잡히면 스퇴르같은 전문가들은 중국 남부를 샅샅이 뒤져 사스의 동물 숙주를 찾아낼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동물 바이러스의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 개발이 한층 쉬워진다. WHO는 이미 이 지역에서 동물독감바이러스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곳은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57년 아시아 독감과 1968년 홍콩독감이 발생한 지역이다. 1997년 조류바이러스와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독감 또한 마찬가지. 모두가 동물바이러스와 연관돼 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동일한 감시시스템이 발동되고 있다. 결국, “사스를 정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디에선가 이와 유사하거나 관련된 무언가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을 날을 기다리며 동물숙주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을 테니까요” 라고 스퇴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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