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출신의 개인 트레이너인 데레고는 최근 전세계 스카이다이빙의 본산지인 플로리다 디랜드로 이주했다. 그녀는 593차례의 점프 경력이 있는 베테랑 스카이다이버지만 버드맨 복장을 한 채 비행하는 이번 경우는 전혀 새롭다. 비행기 문을 나서는 순간 3,200m 상공에서 날고 있는 듯 느껴진다. 비행기나 글라이더의 도움없이 몸만으로 날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구름 위에서 위로 날아다닌다. 각 팔 밑의 천과 다리 사이의 천이 날개 역할을 하면서 그녀의 체표면적이 두 배로 넓어져 자유낙하하는 종단속도가 3분의2로 줄어들기 때문에 상공에서 앞쪽으로 휙 날아갈 수 있다. 쿠오스마는 자기 나름대로 색다른 체험을 즐기고 있었다.
그와 크로아티아인 파트너인 로버트 페크닉이 이 날개 복장을 발명했다. 이 옷을 입은 쿠오스마의 종단속도는 닌자복장 스카이다이버들의 시속 193km에 비해 56km에 불과하다. 더구나 수평 방향의 최고 속도가 시속 82km에 달해 트윈 오터기를 앞지를 수 있다. 쿠오스마와 디레고는 고도를 높이거나 유지할 수 없으므로 엄밀히 말해 비행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초보자라도 이 복장을 하면 하강 거리의 두 배 만큼 수평으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에 분명 비행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점프 후 디레고의 눈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와우!” 하고 말한 뒤 그녀는 분명 당황한 듯 계속해 “와우! 와우!”를 연발한다. 드디어 그녀는 함박웃음을 머금고는 다이달로스가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든 이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었던 얘기를 했다. “나 날았어요!”
1998년 8월 첫 모임을 가진 뒤 며칠 후 자리 쿠오스마와 로버트 페크닉은 900m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슬로베니아로부터 이탈리아 마르코로 차를 몰고 왔다. 쿠오스마에게 이번 점프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지상의 높은 구조물들로부터 뛰어내리기 시작해 10회 이상의 점프 기록을 갖고 있는데, 베이스(BASE) 점프라는 이 방식은 Building, Antenna, Span, Earth의 앞 글자를 따 만든 것이다. 그는 페크닉에게서 늘 형제애 같은 감정을 느껴왔다. 어렸을 때 페크닉은 집에서 만든 낙하산을 햄스터에게 매달고 6층의 침실 창밖으로 던졌는데 햄스터는 무사했다. 크로아티아 국가 대표팀에 들어갔을 즈음 그는 이미 직접 점프복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는 아직 베이스 점프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쿠오스마는 바로 이 부분을 강화해주기로 결심했다.
보통 점퍼들은 아르코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 낙하산을 펼치기 전까지 11초간 자유낙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프스 돌로미테 꼭대기에 선 쿠오스마와 페크닉은 보다 야심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두 사람은 1997년 자신이 직접 만든 날개달린 점프복을 입고 아크로에서 뛰어내려 27초간의 비행기록을 세운 패트릭 가야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베이스 점프도 멋지지만 이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건 정말 환상적이죠!”라고 쿠오스마가 말한다.
그런데 바로 1년 전에 최초로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던 조지아 “타이니” 브로드윅이 1914년 역사상 최초의 자유낙하 점프를 해 낙하산을 펴기 전 수초 동안 수직낙하를 했다. 드디어 인간의 몸이 지구 상공 높은 곳에서 자유롭게 낙하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비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음 단계로 날개가 필요했다. 스카이다이빙 현장에 처음 등장한 날개는 사실 날기 위한 용도였다기 보다는 안전하게 떨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브로드윅이 점프를 하기 전에는 자유낙하를 하면 죽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시속 190km로 움직이는데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겠는가? 이런 엄청난 여건하에서 몸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여서 어느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냥 비행기에서 뛰어 내려 정신없이 돌며 몇 초를 세다가 낙하산을 폈다. 만약 이들이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도록 거꾸로 움추린 자세를 취하면 원통형 불꽃처럼 지구로 떨어진다. 초기 버드맨 날개의 주목적은 수직하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940년대에 프랑스인 레오 발렌틴은 이 자유낙하 문제를 날개없이 해결했다. 몇 년후 그는 스카이다이버들이 요즘에도 사용하고 있는 발전된 자유낙하 기법들을 발명했다. 개구리처럼 배를 아래로 한 안정된 자세나 앞으로 날아가는 화살 자세, 나선강하와 연속 수평돌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수직하강후 원래 자세를 찾는 위기탈출 동작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발렌틴의 발견은 날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려는 게 아니었다. 사실 발렌틴 자신이 최고의 버드맨으로 어른이 된 후 수십 가지의 날개를 직접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에 관해 버드맨이라는 책도 집필했다. 쿠오스마와 페크닉은 후에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자신들이 만든 복장과 회사 이름을 버드맨으로 지었다. 발렌틴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두 개의 견고한 날개였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그를 높은 곳까지 운반하는데 화물기가 필요했다. 1956년 영국 상공에서 점프를 하려고 뛰어내리는 순간 이 큰 날개 때문에 그는 비행기 램프로 빨려들어가 머리를 부딪친 후 빠르게 돌며 떨어졌다. 그는 숙련된 솜씨로 안정된 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커다란 날개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가까스로 그가 안정된 자세를 잡고 낙하산을 폈을 때 이 날개의 견고한 구조물이 주낙하산과 보조 낙하산 줄들과 엉켜버렸다. 그는 날개와 낙하산 줄들에 함께 뒤엉킨채 추락해 사망했다.
하지만 발렌틴만의 운명은 아니다. 1930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버드맨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본 75명 중 72명이 그의 뒤를 이어 사망했다. 문제는 그 당시의 기술이 다이달로스의 깃털과 밀랍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는 점. 강한 합성재료가 발명되기 전에는 천으로 된 날개를 나무나 금속 지지물로 보강해야만 했는데 이것 때문에 두 가지 극단적인 사고가 나곤 했다. 즉, 날개가 너무 잘 날아서 버드맨이 통제력을 상실해 급격히 나선강하하며 추락하거나 낙하산 줄이 지지대와 엉켜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진정한 현대식 날개복이 등장했는데, 패트릭 가야돈이 입은 복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야돈의 날개는 낙하산 재료를 두 겹으로 겹쳐 만들었기 때문에 나무나 금속 지지물이 필요없었다. 대신 그가 나는 동안 공기가 이 날개를 부풀려 팽팽하게 해주었다. 수년간 스카이다이버들은 탄성을 지르며 서 있곤 했다. “정말 대단한 친구에요”라고 스카이다이빙 전문 사진작가이자 가야돈의 오랜 친구인 노만 켄트가 말한다. 켄트는 가야돈이 그랜드캐년으로 날아들어가거나 프랑스 샤모니의 빙하들을 가로지를 때 구경하던 사람들이 지르던 탄성을 떠올린다. “이 별난 친구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죠”라고 켄트가 회상한다. 스카이다이빙계에서 가야돈은 신이 날기를 허락한 유일한 인간인 버드맨이 되었다. 그런데 1998년 4월 하와이 상공에서 점프를 해 개선된 점프복을 테스트하던 중 가야돈은 낙하산 줄이 엉키면서 시속 190km로 추락해 사망했다.
이로부터 4개월 후 아르코 절벽 위에 선 쿠오스마와 페크닉은 가야돈의 최근 사망 소식이나 이 스포츠의 96%에 이르는 사망률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직접 날개복을 만들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대담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즉, 이 복장들을 다른 스카이다이버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데레고가 친구들에게 비행 결과에 대해 얘기하러 간 사이 쿠오스마는 플라밍고 복장을 벗어서 다음에 쓸 수 있도록 낙하산을 챙겨 넣은 다음 낙하지점에 있는 술집에 오스트레일리아산 라거 맥주를 마시러 간다. 그는 형광 주황색 바지와 파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이 셔츠에 찍힌 수퍼맨 마크에는 S자 대신 버드맨 스카이다이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쿠오스마는 자신이 페크닉과 함께 만든 날개가 기능이 뛰어나고 무겁지만 안전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가야든의 저택에서 기술 자료들을 얻어내려고 했지만 제지당했다.
기본적인 사항은 쉬웠다. 각 팔과 몸통 사이, 그리고 두 발 사이에 낙하산 천을 두 겹으로 부착한다. 그런 다음 겨드랑이와 장딴지 사이 날개에 통풍구를 공기가 차도록 한다. 그리고 이 날개들이 공기에 의해 팽팽해지면 보통 날개들처럼 날개 위로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아래로 향하도록 해 양력을 발생시키도록 디자인한다.
결정적인 요인은 팔과 몸통 사이에서 날개가 형성하는 각의 크기이다. 이 각이 커질수록 팔을 더 높이 뻗을 수 있어 버드맨의 표면적이 늘어나 양력이 커진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날개가 커질수록 이를 조절하는 데 더 많은 힘이 든다. 일정 시점에서 날개가 너무 커지면서 버드맨의 비행 조절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수차례에 걸친 개선을 거듭한 끝에 쿠오스마와 페크닉은 결국 팔 날개의 각도를 78도, 다리 사이 날개의 각도를 35도로 정했다.
이 옷에는 단단한 지지물이 없기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이 날개를 착용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고 쿠오스마는 말한다. 점퍼는 등에 달린 주낙하산 고리나 가슴에 달린 보조 낙하산 고리 어디에도 손이 닿는다. 하지만 과거 사고들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유사시 신속하게 이 날개를 벗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두 가지 날개 절단 장치를 고안해냈다. 첫 번째는 각 팔 길이만한 날개 분리용 지퍼이다. 일반 상황에서 낙하산을 편 후 이 지퍼들을 열면 머리 위로 손을 뻗어 토글을 움직여 낙하산을 조종할 수 있다.
보완 장치로 페크닉은 지퍼보다 더 신속하게 작동하는 독특한 날개 제거 장치를 고안해냈다. 서로 맞물린 강한 나일론 고리들이 몸통과 날개를 교대로 얽어매어 날개를 몸통에 부착시켜 준다. 이 고리들을 통과하는 노란 줄이 허벅지 측면의 노란 주머니에서 끝이 나는데 이 주머니를 잡아당기면 줄이 풀려 나오면서 날개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 혁신적인 장치 덕분에 이 날개복을 팔 수 있었죠”라고 쿠오스마가 말한다. “어떤 경우든 날개를 떼어버리고 보통 점퍼처럼 다이빙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확신을 얻는 데 1,300번의 날개복 비행이 필요했다. 1999년 1월 첫 비행 때만 해도 쿠오스마는 그다지 자신감에 차 있지 못했다. 5개월간 기획과 설계, 바느질을 한 후 페크닉은 디랜드로 자기 것과 쿠오스마 것, 그리고 당시 노르웨이 국가 대표 스카이다이빙팀 선수였던 쿠오스마의 여자 친구용 날개복을 가져왔다. 이들의 임무는 지상 4,050m에서 직접 이 날개복을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트윈 오터기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수많은 선임자들이 시험하다 대부분 사망한 날개옷을 입고 비행기에서 곧 뛰어내려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다소 안전한 곳에서 테스트하고 싶어질 것이다. 수직형 풍동이 있기는 하지만 폭이 좁기 때문에 버드맨이 벽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비행기에서 직접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는데 고도는 높을수록 좋다. 뭔가 잘못 되어도 대응할 시간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 과거를 돌이켜 봤어요”라고 쿠오스마가 말한다. “1만4천번의 점프로 스카이다이빙의 신화적 존재였던 패트릭이 어떻게 해서 사망했는지를 말이죠. 전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어서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지요. 전 확률이 50:50이라고 봤습니다.”
세 사람은 동시에 뛰어 내렸다. 이들의 두려움은 곧 사라져 버렸다. “문을 떠난 순간부터 우린 날았어요”라고 쿠오스마가 말한다.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두 구름 사이의 한 협곡을 보고는 그리로 날아가는 겁니다. 구름에 자기 그림자를 드리우며 놀 수도 있습니다. 착지했을 때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았어요. 바로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스카이다이버들이 저와 같은 체험을 해 봤으면 싶었습니다.” 그해 늦은 봄까지 페크닉은 크로아티아의 한 공장에서 85벌의 날개옷을 만들었다. 지난 8월 둘이 아르코에서 처음으로 함께 점프한지 1주년이 되기 바로 전날 두 사람은 이 절벽에서 버드맨 복장을 완벽하게 갖춘채 재회했다. 둘은 27초간 날아 가야돈과 같은 기록을 세웠다.
2000년 봄 이들은 네덜란드에서의 시범 비행을 통해 비행 거리 기록을 깨뜨렸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텍셀 섬 상공 5천 m에서 뛰어내린 페크닉, 쿠오스마와 다른 네 명은 버드맨 복장을 한 채 마스딥 해협을 따라 약 5km를 비행한 뒤 낙하산을 펴고 본토에 착지했다.
이 스턴트가 사람들 눈에 띄면서 버드맨 복장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3년 뒤 이들은 천 벌을 넘게 판매했다. 디자인을 변경해 각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날개 길이를 늘려 버드맨들의 자세가 기존 날개 모양과 더욱 비슷해지도록 할 수 있었다. 최근 네 번째 개량된 비행복을 착용한 채 페크닉은 아르코 절벽에서 1분이 넘게 비행한 뒤 낙하산을 폈다. 매년 수만 건의 스카이다이빙이 이루어진다. 현재까지 버드맨 복장을 착용하고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 뿐인데 이것도 쿠오스마의 훈련후 착용 원칙을 무시하고 빌려입어 발생한 것이었다.
쿠오스마는 점프 회수가 200번이 안 되는 사람에게는 날개옷을 팔지 않는다. 숙련된 스카이다이버들어야 비상시에 보다 침착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점프 회수가 500번 미만인 사람들은 안전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쿠오스마는 데레고에게 팔을 대칭으로 유지하는 법을 가르친다. 균형을 잃으면 빙빙 돌기 때문이다. 날개의 힘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면 팔과 다리를 안으로 끌어당겨 표면적을 줄이라고 그는 말한다. 상황이 상당히 나쁘면 그냥 날개를 잘라버리고 겁이 나면 낙하산을 펴야 한다.
쿠오스마는 2000년 페크닉의 최신 디자인을 테스트하던 중 이 교훈을 얻게 되었다. “로버트는 이제 저를 자기 햄스터로 생각해요”라고 그가 웃으며 말한다. “이 날개들은 우리가 이전에 착용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길고 컸습니다.” 이 날개옷은 성능이 너무 좋아서 그의 어깨 힘으로 조절할 수 없었다. “너무 빨라서 더 이상 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라고 그가 말한다. “저는 곧 초기 버드맨들이 왜 사망했는지 떠올리고는 기회를 놓치기 전에 낙하산을 폈죠.”
하지만 대체로 스카이다이버들이 위험한 수직하강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다이버들이 너무 재미에만 치우치고 적절한 착지에는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더 크게 우려된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낙하산을 펴기엔 너무 낮은 지점까지 비행을 합니다. 내려오는 동안 언제든 낙하산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놀랍죠.”
정말 불가능할까? 석양이 지고 마지막 낙하산이 디랜드에 내려앉는 가운데 쿠오스마는 맥주를 두 잔째 마시며 테이블 둘레의 스카이다이버들을 보며 씩 웃는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등에 작은 엔진을 달아야 할지도 모르죠. 그리고 다이버의 전반적인 자세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땅까지 날아서 낙하산 없이 착륙하는 겁니다.”
쿠오스마의 계획에 몇몇 스카이다이버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 친구들 착각하고 있어요”라고 MIT항공학 교수인 존 한스만은 말한다. 문제는 날개 면적에 대한 비행기 하중의 비율인 날개 하중이라는 수라고 그는 말한다. 가벼운 글라이더는 날개 1㎡당 약 33kg의 하중을 받기 때문에 아주 느린 속도로 착륙할 수 있지만 전투기는 1㎡당 550kg의 하중을 받으므로 시속 190~240km의 착륙 속도가 필요하다. 인간 힘의 세기에 따라 날개 크기가 제한되고 뼈와 근육이 촘촘하고 무겁기 때문에 인간은 전투기와 비슷한 착륙 속도가 필요하다. “착륙장치가 문제지요. 사람의 다리는 그렇게 빨리 달리 수 없거든요.”라고 존은 지적한다.
하지만 쿠오스마는 회의주의적인 사람들의 주장을 외면하지 않는다. 예산문제 때문이다. 그와 페크닉은 기업체의 스폰서쉽을 기대하고 있다. “몇 백만 달러와 이 점프복의 어느 부분을 개선할지 알아볼 적합한 정밀측정 기술만 있으면 됩니다.” 착륙 문제라면 쿠오스마도 이미 그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 “그 정도 속도를 흡수하려면 거품속에 착륙해야 할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아니면 스키 점퍼들처럼 스키 슬로우프에 착륙하던지요.” 맹목적인 오만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쿠오스마가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자기 햄스터의 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을 마친 후 안전하게 착륙하는 오랜 꿈을 그가 최초로 시도해보겠다고 해서 그를 나무랄 수 있을까?
윌리엄 스피드 위드는 이 이야기를 취재하는 중에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보았다.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어드벤처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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