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우울한 공상을 깨트리는 발자국 소리가 동체 밖에서 들려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리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깊은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최초의 구조 대원이다. 거대한 덩치의 헬멧이 달린 잠수복을 입은 모습이 마치 우주인을 연상시킨다.
미 해군은 내년초부터 신형 잠수복 ‘하드수트 2000’을 사용할 예정인데, 문제가 발생한 잠수함의 승무원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미 해군이 샌디에이고 연안에서 마무리 테스트 중에 있다. 이 잠수복은 610m까지 잠수가 가능한데 이는 전 모델보다 240m 더 내려간 깊이다. ‘하드수트 2000’은 시험 잠수에서 더 깊게 잠수하여 해저 910m까지 내려갔었다. 미 해군의 신형 잠수복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 마이크 홈즈는 “인간의 잠수 역사에 획을 그을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자평한다.
‘하드수트 2000’은 단단한 동체 내부에서 잠수부가 호흡하는 공기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가 동일한 대기압 일체형 잠수복이다. 따라서 치명적인 감압 증상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770㎏의 육중한 무게지만 일단 물속으로 잠수하면 측면에 달린 추진기를 사용해 민첩하게 움직인다. 홈즈는 “동전 위에서도 회전이 가능하고 물살을 타고 둥둥 떠다니기도 하며 심지어 누울 수도 있다”며, “능숙한 잠수부라면 구르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추진기는 잠수복 내부의 발판을 사용해 조종한다. 다른 주요 장비로 공구를 붙일 수 있는 핸드 포드와 윤활유가 들어 있는 조인트(관절)를 들 수 있다. 이 조인트들은 매우 유연해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또한 헬멧에 부착된 음향 탐지기와 비디오 카메라로 수면 위의 모선에 있는 통제 대장이 잠수부의 움직임을 모니터할 수 있다. 잠수복의 팔과 다리, 허리에 달려 있는 스페이서 링들은 크기 조절이 가능해 체중과 키가 다른 잠수부들도 자기 체형에 맞추어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구조 작전시 신형 잠수복을 착용한 잠수부들이 구조물에 매달려 목표물의 9m 안팎까지 접근한다. 그후 잠수부들은 구조물에서 빠져 나와 침몰된 잠수함에 접근한 다음, 구조선이 도킹하여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해치 주변의 파편과 방해물을 제거한다. 꼭 잠수함이 아닌 다른 물체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홈즈는 귀뜸한다. TWA 항공기 800편과 같이 바다에 불시착한 비행기도 해당되는 것이다. 하드수트 2000은 8~10시간 가량 지속되는 구조 작업에 필요한 충분한 산소를 지니고 있다.
미 해군은 프레임 일체를 포함, 세트 가격이 2백7십만달러에 달하는 하드수트 2000을 4세트 구매할 계획이다. 밴쿠버에 본사를 둔 하드수트사는 다른 국가의 해군에도 비슷한 장비를 납품할 예정이며, 심해 오일 시추작업에 필요한 민수용 잠수복도 개발할 계획이다. 하드수트 2000은 해군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잠수복중 가장 정교한 잠수복이다. 민수용 잠수복이 개발되면 해군측은 필요할 때마다 부품을 좀더 저렴하게 구매하는 부수적인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심해 잠수: 한 여류 과학자의 솔로 다이빙 탐험기
대기압 일체형 잠수복을 입고 처음 시도해 본 솔로 다이빙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이었다. 하와이의 마카푸 포인트 연안에서 9.6㎞ 떨어진 알리하하 해협에서 잠수복 ‘짐’ 속으로 들어가 400m 바다 밑으로 잠수하자 해치 위로 물거품이 일었다. 이 잠수복은 하와이 주립대학의 2인승 잠수정 ‘스타 2호’의 앞머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단 해저 바닥에 도착하자 필자는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탐사할 수 있었다. 1979년 10월 실시한 탐사는 바다 위의 모선과 연결하지 않고 실시한 최초의 심해 탐사였다.
필자는 커다란 발광 산호초의 꼭대기를 만지고, 투명한 해초 사이를 기어다니는 적색 조개를 관찰하고, 녹색 눈을 지닌 작은 상어를 쳐다보면서 해저를 돌아다녔다. 그전까지 그물에 걸려 어두운 자신만의 세계에서 끌려나와 숨을 헐떡이거나 이미 죽어버린 상태로만 보아온 터라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바다속 생물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즐거웠었다.
필자는 심해 탐사에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다. 잠수복 짐을 사용한 해저 탐사가 있은 이후 다시 워스프라는 동력 잠수복을 입고 해저를 탐사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연구하는 해저탐사의 과학적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눈과 손이 잠수함 조종사와 같은 제3자를 통해 중계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1984년 6월 발명가 그래햄 호크스와 캐나다 기업가 필 누이튼과 공동으로 작업한 끝에 딥 로버에 탑승하여 조종할 기회를 얻었다.
딥 로버는 기계팔이 장착된 아크릴제 투명 잠수정이다. 딥로버를 타고 필자는 샌디에이고의 코로나도 에스카프먼트에서 1,000m의 솔로다이빙 기록에 도전했다.
당시 차세대 잠수복으로 개발된 딥 워커는 누이튼과 그의 동료 마이크 험프리가 설계한 잠수복이었다. 딥 워커는 1998년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측에서 임대하여 미국과 멕시코, 벨리즈와 캐나다를 둘러싼 대륙판에 대한 5개년 탐사 및 연구 프로젝트, ‘서스테인해 탐사’에 사용되었다.
필자는 딥 워커를 타고 국립 해양대기위원회의 모선 ‘고든 건터’에서 진수해 해저 548m 속으로 빠르게 잠수했다. 그곳은 미시시피강 어귀로부터 160㎞ 떨어진 곳이었다. 얼기설기 꼬인 서관충 덩어리 옆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이는 은색 방울들이 보였다. 이 방울은 빛이 닿지 않아 광합성이 불가능한 곳에서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박테리아가 분해 소화하는 메탄 가스였다.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돌무덤 위에는 가지마다 적색 별무늬가 수놓인 커다란 흑산호초가 자라고 있었다. 비록 혼자였지만 수많은 해양 생물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해저 탐사 경험은 다른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대기압 일체형 잠수복 기술 덕택에 심해 다이빙 이후 수 시간에 걸친 감압 과정이 필요없어졌으며,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여행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실비아 얼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소속의 탐험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 생물학자이며 다이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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