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상류층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의 강남은 주민들이 올 여름 한동안 소음공해에 시달렸다. 수많은 자동차 소리나 불규칙하게 고막을 때리는 공사판 소리가 이곳 사람들의 귀를, 그리고 심성까지 괴롭혀 왔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하찮은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에 괴롭다고 한다. 필자처럼 강북에 사는 사람들은 얼른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웠던 여치나 매미는 분명히 즐거운 음악가 곤충이었고, 야외에서 직접 들어 본 매미소리 역시 즐거웠었다. 곤충치고는 제법 큰 덩치에 커다란 소리까지 내니 발견도 쉬웠고, 호기심도 많았었다. 한 여름에 매미가 우는 나무 그늘에서 낮잠이라도 자 본 사람이라면 그때의 매미소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장가였었다. 땅속에서 몇 년씩이나 오래 살다가 겨우 밖으로 나와 여름 한철 울어대는 이들을 보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도 일깨울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생애를 풍요롭게 해주던 매미가 강남에서는 졸지에 악마 같은 존재가 되었단다. 작년도, 금년도 매우 시끄러웠다는데 과연 내년에도 그럴까?
곤충세계, 밝혀진 것 거의 없어 연구필요
지난 달, 한 TV뉴스는 강남에서 매미소리를 측정해 본 결과 사람들이 싫어하는 65데시빌(dB)을 훨씬 넘어 73∼73.7 데시빌이었다고 하니 시끄럽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화면상으로는 어떤 방법으로 측정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느 거리에서 몇 마리가 우는 것을 측정했는지, 매미소리에 자동차소리가 보태진 것은 아닌지, 측정기술상의 또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알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방송국에서는 왜 요즈음 참매미가 없어졌는지, 주변이 시끄러워지니까 매미가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냐 등등을 필자에게 물어왔다. 질문들이 하나같이 만만하게 답변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서,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간사해서 그렇다며 대충 얼버무려 대답해준 일이 있다. 지금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 간단히 참견해보기로 한다.
매미는 세계적으로 4,000종 가량이 알려졌고, 우리 나라에서는 27종이 보고되었다. 하지만 한 매미 전문가가 몇 년 전에 남한에 있는 표본을 모두 조사해보니 15종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결국 12 종은 우리 나라에 살지도 않는데 사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셈이다. 곤충계에서는 이렇게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군다나 매미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관심이 많아 옛날부터 이들에 의해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18, 19세기에 유럽, 특히 영국사람들은 세계 각지로 항해를 많이 했고, 그들의 배에는 선원만 탄 것이 아니라 선교사, 군의관 등도 많이 탑승했다. 도처를 탐험하거나 정복하는 와중에도 항해나 전투에 전념하지 않는 사람들은 선착지에서 많은 생물들을 채집하여 자기네 나라 학자들에게 나누어주거나 또는 직접 연구하기도 했는데 이때 채집지를 잘못 기록해서 실수한 경우도 있다.
곤충학계에 오류가 심한 것은 이런 실수나 곤충학자들의 부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류의 진정한 원인은 우리가 곤충의 세계를 너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도 지방, 종족, 집안에 따라 그 생김새가 다르듯이 각 동물도 한 종 내에서의 변이가 심하다. 그러나 우리는 각 종마다의 변이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우리와 친숙한 짐승이나 개, 늑대에 대해서도 각각의 한계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하물며, 작은 곤충에서 종마다 변이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곤충의 세계에는 인간의 눈으로 본 외모는 똑 같은데 실제로는 서로 다른 종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점은 곤충끼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곤충들은 자기와 같은 종족을 알아보는 수단으로 냄새(페로몬)나, 소리, 빛 등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 같다.
매미, 여치, 귀뚜라미, 삽사리(메뚜기 류) 따위는 모두 소리로 자기 종족을 구별한다. 심지어 모기가 날 때는 날개에서 애∼앵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도 자기네 종족을 찾는 수단이고, 고등동물인 새들도 수많은 종이 외모가 아니라 울음소리로 자기 종족을 구별한다. 따라서 이런 동물들은 각 종별로 독특한 소리를 내야만 다른 종과 섞이지 않고, 자기 짝을 찾아 번식할 수 있다. 곤충은 대개 어느 지방에서나 비슷한 종들이 수 십 종씩 산다. 그러니 각 종의 소리가 정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면 서로의 종족을 찾을 수가 없다. 매미가 우는 것도 수컷이 암컷을 부르기 위한 것이며, 소리를 내는 고막(鼓膜)은 배의 첫째마디 등쪽에 있다.
고막으로 내는 소리의 주파수는 대략 4,000∼8,000Hz이나 종별로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내고, 거기에 곡조까지 붙여서 서로를 구별하는 것이다. 또한 고막은 단단한 성질의 판자로 되어있는데 종마다 크기와 모양이 일정해서 자기 마음대로 주파수를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만일 바꿀 수 있다면 종간의 혼란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주위가 시끄럽다고 자기 소리를 키울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키웠다가는 자기 짝을 못 찾거나 다른 종과 만날지도 모른다.
곤충에서 인생배울 점 많아
남한에서 가장 흔한 매미는 애매미(Meimuna opalifera)이고, 가장 드문 종은 전남 백양산에서 1931년에 한번 채집된 깽깽매미(Tibicen japonicus)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포함한 전국적으로는 참매미(Oncotympana fuscata)가 많으며,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는 털매미(Platypleura kaempferi)가 절대적으로 많다. 애매미는 벌판부터 높은 산까지 널리 퍼져 사는데 인가 근처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밤에는 가로등 불빛에도 많이 모인다. 더러는 집안까지 들어오고, 불빛 근처에서는 밤에도 울어대니 강남의 주민들이 괴로와 했을 만도 하다.
작년까지도 애매미가 극성을 부렸는데 금년에는 유난히 참매미 소리만 들렸다. 작년과 금년의 출현종이 달라진 이유를 조사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그러니 금년에 애매미가 잘 안 보이는 이유를 아는 사람도 없다. 조사를 하려면 매미 자신의 발생과 생태적 특징, 즉 내적인 측면과 공해나 기상조건 등과 같은 외적요인, 그리고 내적요인과 외적요인 간의 관계 등이 연구되어야 하는데 연구 자체가 간단히, 그리고 몇 년 내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지면관계로 극히 일부의 기초적인 부분만 필자 나름대로 추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금년에 출현할 애매미의 어미들이 산란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 산란했던 해에 특별한 공해나 기상이변이 있어서 정상적인 알을 낳지 못했는지, 아니면 산란은 했어도 알이 제대로 발생하지 못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애매미는 그 성장기간을 모른다. 따라서 금년에 나와야 할 매미가 몇 년도에 산란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설사 성장기간을 알고, 어떤 특정 공해물질이 이들의 발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산란 당시의 특정물질은 이미 흩어져버려 지금은 그 때의 상태를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매미는 어린 벌레 시대가 매우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대는 주로 땅 속에서 2∼5년 동안 나무 뿌리를 먹고 자란다고 하나 그 기간이 정확히 조사된 종은 매우 적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매미는 미국 동부지방의 17년 매미(Magicicada septendecim)다. 우리 나라 매미는 조사된 종이 하나도 없다. 다만, 두 종 정도만 5∼7년이라는 기록이 있을 뿐인데 이들 역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땅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란 매미가 지상에서는 겨우 몇 일 또는 한 달도 못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척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인생을 매미생 또는 곤충생과 1 : 1로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인간은 자손을 출산한 후에도 오래 살려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다른 여러 동물, 특히 곤충들은 번식 후에도 모자라는 자원을 구하느라 고생해가며 생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은 물고기, 특히 연어의 일생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우리 인간의 생활에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김 진 일 (성신여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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