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트앤휘트니 JT9D 엔진이 없었더라면 747 점보 여객기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고, 롤스로이스 올림포스 엔진을 빼면 콩코드 초음속 제트여객기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 전투기의 대명사였던 P-51 머스탱 전투기도 멀린(Merlin) 엔진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을 게다. 그저 엘리슨 엔진만을 장착했던 A-36 아파치 경폭격기가 고작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은 여객기와 시제 형태의 중폭격기를 제작하고 있었고, 그 결과 중량(重量) 운반에 적합한 대형 공냉식성형(星型) 엔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전쟁의 먹구름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때까지 흔히 쓰이던 둔중한 500마력 짜리 성형(星型)식 및 직렬식 엔진을 훨씬 능가하는 전투기 엔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수상비행기 스피드 레이싱이었던 슈나이더 컵으로 인해 영국인들은 거대한 12기통, 액냉식 V-엔진 개발에 착수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멀린 엔진이 등장하고 몇 년 후에는 그리폰 엔진의 탄생을 보게 된다.
한편,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전투기 제작이 금지되어 있었다. 1934년에 빌리 메사슈미트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민간 항공기 Me-108 (240마력, 접이식 4좌석 장착)를 디자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V자 모양 후미익의 비치 보난자(Beech Bonanza)가 등장할 때까지 성능 및 디자인 모두 이 항공기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었다. 기본 설계는 훨씬 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고 이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1935년 Me-108은 악명 높은 메사슈미트 Me-109로 재설계되었다. 독일 공군은 바로 이 전투기로 영국공군과 대결했다.
최근까지 이 항공기들에 장착되었던 엔진들은 실제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수천의 프래트앤휘트니, 라이트, 앨리슨, 롤스로이스 엔진들이 소이탄 폭격기, 화물기 또는 다른 목적의 군용기에 계속 사용되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Me-109에 장착하였던 수만 기의 다임러-벤츠 600 시리즈의 엔진들은 모두 1935년과 1945년 사이에 제작된 것들로 그 가운데 2기만이 캘리포니아*의 엔진 복원전문가 마이크 닉슨의 관리를 받으며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DB-601 엔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독일 기술의 정교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엔진은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이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했던 연료 분사형(연료 분사 장치는 보쉬사가 디젤용으로 만든 독일의 기술이다)이었다. 미국의 엔진들은 모두 카뷰레터형이었다.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Me-109를 바짝 추격하면 독일 조종사는 급강하를 하며 순식간에 벗어나는데 그 뒤를 따라 급강하를 하는 스핏파이어는 마이너스 G힘(중력)을 내며 카뷰레터 플로트를 떨어뜨리고, 따라서 멀린 엔진의 니들 밸브는 완전히 닫혀버리게 되었다.
그러면 스핏파이어는 제트기가 아니라 글라이더 신세가 되고 만다(1950년대 중반 메르세데스가 300SL 레이스 카에 연료 분사 장치를 장착했을 때에도 재규어는 여전히 카뷰레터를 쓰고 있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DB-601의 연료 분사 펌프 하나만 가지고도 엔진의 다른 부분과 맞먹는 수의 부품이 필요했으며(그래도 전체 부품 수는 영국 엔진에 소요되는 부품 수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라이카 카메라를 만드는 정도의 정밀성이 요구되었다. 이것이 바로 독일 기술의 진수인 것이다.
“영국전 동안 독일 항공기에 장착한 DB-601 엔진은 영국이나 미국이 보유한 어느 것보다도 1년 정도 앞선 기술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과급기(supercharger) 구동장치와 연료 분사 장치였죠.” 닉슨의 이야기다. 닉슨은 아마도 영어권에서는 DB-601 엔진에 관한 한 가장 으뜸가는 전문가일 것이다. 캘리포니아 테하차피에 있는 그의 회사 빈티지(Vintage) V125는 멀린과 그리폰 엔진 전문회사이기는 하지만 그는 매뉴얼들을 공들여 번역하며, 필요한 공구를 만들고 다른 엔진들을 뜯어 필요한 부품을 얻기도 하고 더러는 제작도 하면서 앞에 언급한 DB 엔진 2기를 완전히 원상 복구해냈다.
연합국의 과급기들은 모두 크랭크축에서 직접 기어로 구동되는 장치들이었다. 다임러-벤츠는 다이너플로우 자동변속기의 소형판이라고 할 수 있는 601의 블로어(Blower) 우아한 유압 구동장치를 개발하였다. 여기서 시대를 앞선 또 하나의 독일의 기술이 등장 한 것이다.
고도를 감지하는 아네로이드 조절기가 과급기의 속도를 조절하여 주기 때문에 메사슈미트 조종사는 공중전을 하면서 스로틀을 조절하기만 하면 되었다. 최소한 전쟁 초기까지 영ㆍ미 조종사들은 상승이나 강하 시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스로틀 조절에 신경을 써야 했다. 닉슨은 “109 전투기에서는 겨냥해서 사격을 하는 항공기여서 핸들을 끝가지 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DB-601은 짜임새가 훌륭하기 그지없는 설계였습니다. 요점은 최소한의 금속을 사용하여 최대의 토크을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고 덧붙였다.
닉슨은 이 독일 엔진에서 창의성과 흥미로운 여러 가지 사실들을 잔뜩 엿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예를 들어 마그네토 타이밍(magneto timing)은 유압으로 조절하였으며 조종석에는 ‘점화플러그 클리너(sparkplug cleaner)’라는 레이블이 부착된 레버가 있었다. 109 조종사는 저속으로 순항을 하다 영국기 P-51s가 나타날 때 스파크플러그가 기름으로 더러워진 것을 보면 그 레버로 마그네토를 늦출 수 있었다. 그러면 연소실이 순식간에 열을 잔뜩 만들어 내며 그 열로 스파크플러그가 청소가 된다. 그러면 다시 전속력을 낼 수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독일은 영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패인은 조종사들의 기술이 뒤쳐졌다거나 항공기의 성능 열세 때문이 아니었다. 독일 공군의 조종사들은 뚜렷한 우위를 누리고 있었다. 글라이더나 곡예비행 조종사들로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조종사들은 심지어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에 비하여 영국 공군의 초보 조종사 중 다수는 대학 항공기 조종클럽(대학 항공기 조종클럽이라면 독일 조종사들이 겪은 경험에 비하여 그 난이도가 훨씬 낮을 수밖에 없었다)에서 갓 차출해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109 전투기들이 영국공군의 스핏파이어를 필적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메사슈미트 전투기들은 프랑스나 독일로부터 그 먼 거리를 비행하여 결국 영국 상공에 도착하면 공중전에 쓸 연료가 5∼10분 정도 분량 밖에 되지 않는 훨씬 불리한 위치에서 영국 전투에 임해야 했다.
그에 비하여 영국공군의 전투기들은 자기 자신의 기지의 범위 내에서 움직였으며, 전투기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 조종사들은 낙하산을 타고 안전하게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과연 그랬는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독일은 며칠만 더 있었으면 영국 방어공군을 완전 격파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 그 때 히틀러가 영국 공군을 격파하기보다는 전격 기습을 통하여 런던에 폭격을 감행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닉슨이 원상 복구한 엔진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초기 모델 다임러-벤츠 V12로 전 세계 여기 저기 모든 곳을 날아다니고 있다. 이제 두 번째 것도 원상 복구되어 둘 다 완전한 Me-109의 모양과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 기묘하면서도 단명의 불운을 겪어야 했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무서운 병기에 장착되었던 엔진은 우리가 들어본 (사실 ‘들어본’이라는 표현은 불경스러운 표현이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피스톤 엔진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언젠가 에어쇼에서 닉슨이 원상 복구한 엔진의 작동소리를 듣게 되면 아마도 돌 부수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쇄석기 소리 같다는 표현은 전 메사슈미트 조종사 한 사람이 영국 작가 마이클 제람에게 쓴 표현이다. 제람은 DB-601을 장착한 항공기가 비행하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그는 그 소리를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유압 과급기의 바람 새는 소리가 뒤섞인 희한한 소리’라고 표현하였다(이 항공기는 1997년에 추락했다. 영국 공군 박물관에 전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나서 마지막 비행에 나섰다가 불운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닉슨이 꼼꼼하게 공을 들여 원상 회복한 2기의 엔진 중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립자이며 공군기 수집가인 억만장자 폴 앨런에게 곧 넘어가게 될 것 으로 예상된다(현재 이 엔진은 영국에 있다). 이제 폴 앨런이 사는 시애틀의 상공이 한 때는 영국을 거의 무릎 꿇기 직전까지 몰고 갔던 바로 그 엔진이 평정할 날이 올 것이다. 앨런이 매입한 메사슈미트의 날개 아래에는 아마도 ‘나는 요새’라고 알려진 B 17 폭격기 수천 대(각 폭격기마다 4기의 고출력 라이트 사이클론 9기통 방사형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다)를 만들었던 보잉의 거대한 공장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최고의 항공기를 움직였던 엔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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