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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우주 정거장:Back in Action

꿈과 희망을 담고 우주 공간에 쏘아 올려진 지 14년. 긴 세월이 흘렀지만, 낡고 거대한 ‘미르호’는 여전히 우주 공간을 가르고 있다. 미르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닌 러시아인들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수많은 난관과 세월의 여파를 극복하고 묵묵히 임무를 다해온 우주선 미르호는 한마디로 ‘경이’ 그 자체이다.

1999년 8월 우주비행사들이 미르호를 폐쇄하고 철수했을 때 미르호의 은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끌어내릴 것인가가 문제였던 것. 그러나 미르호는 서방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지금도 살아 있다.

지난 4월 6일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미르로 복귀하여 공기 누출 구멍 수리와 같은 내부 수리에 착수한 바 있다. 오는 9월 제2진이 출발하면 사상 처음으로 미르와 국제우주정거장(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우주 기지)에 승무원들이 동시에 체류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명 상태만 적절하다면 두 정거장의 우주비행사들은 서로를 쳐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4월말 미르와 국제우주정거장이 불과 32km 떨어진 간격으로 스쳐지나갔던 것. 동일 궤도는 아니지만 인접 궤도이기 때문에 그런 조우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미르의 불투명한 미래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3월 미르의 건설을 총괄하는 한때 베일에 가려 있던 모스크바의 ‘크루니체프 우주연구소’를 방문했다.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지어진 수많은 모형 우주선 중 한 곳으로 직접 들어가 내부를 구경한 뒤 과학자들이 미르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코롤레프 우주센터의 미르 통제실도 둘러보았다.

“미르를 러시아의 국기(國旗)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린 결코 미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모크스바의 한 호텔에서 기자에게 브리핑을 해주던 세르게이 고르부노프는 말했다. 그는 러시아우주국의 수석공보관이다.
그는 미르를 연명시키는 것이 국제우주정거장에 투입되어야 할 시간과 자금, 그리고 소유스 우주선을 묶어두는 셈이라며 미국의 입장을 강경하게 대변한 댄 골딘 미항공우주국(NASA) 국장의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현재로서는 우주정거장을 계속 활용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없었다면 우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아나톨리 키셀레프 크루니체프 우주연구소 사무총장은 오전 회의에서 NASA의 감독관이자 미르 비판에 앞장서온 제임스 젠슨브레너 미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목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젠슨브레너 같은 의원들이 뭐라고 떠들건 미르는 아직 떠 있고 러시아 문제는 러시아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키셀레프는 “자기 나라 문제나 신경 쓰라”고 언성을 높였다.

9월에 떠나는 우주비행사들은 미르에 상용 데이터와 실시간 화면을 지구로 전송하는 인터넷 포털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미르를 이용한 관광 사업도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미국의 갑부인 월트 앤더슨과 릭 텀린슨, 유럽의 한 벤처자본가와 미르를 운영하는 러시아 에네르지야사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새로 발족한 미르사를 주축으로 그들은 45일간의 미르 재가동 작업에 필요한 2천만 달러의 자금을 대주었다. 에네르지야는 영화배우를 미르로 보내 귀환 명령을 거부하는 한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하고 러시아의 영화사와 교섭을 벌였지만 영화사가 필요한 자금을 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재 미르사는 2억달러를 들여 우주정거장을 수리한 뒤 각종 기업들과 과학자들의 실험과 광고를 위한 공간,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 부호들을 위한 관광 코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계획들이 크게 차질을 빚지 않는다면 미르는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르는 아직도 떠 있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미르는 어지러운 구조물로 엮인 거대한 우주 종합시설이다. 공처럼 생긴 도킹 모듈이 있고 우주비행사들의 거처이며 작업실인 중앙의 깡통처럼 생긴 모듈도 있다. 그밖에 과학실험용 모듈이 5개 더 있다. 고속버스 크기만한 실험용 모듈도 있다. 그중 두 개는 만든 지 5년이 채 안 돼 값비싼 장비로 가득하다.

맨 바깥으로 나오면 소유스 우주선이 있다. 비상 탈출을 하거나 우주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 쓴다. 끝으로 태양전지판과 안테나가 거의 모든 모듈에서 날개처럼 뻗어나와 있다. ‘우주의 잠자리’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크루니체프 우주연구소의 모형 미르 내부를 걸어다니면서 기자는 그 규모와 복잡함에 놀랐다. 걷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한번 머리속으로 상상해 본다. 미르의 벽, 천장, 바닥은 무중력 상태에서 쉽게 닿을 있도록 배치되어 있고 저장실, 계기판, 기타 장비가 골고루 설치되어 있다.

중앙 모듈에는 주방과 휴게실로 쓰는 넓은 공간이 있다. 잠을 자는 숙소는 좁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서 침낭 안에 들어가 있으면 갑갑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자리 옆에는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창이 나 있다. 한쪽 천장에는 계기판이 달린 자전거가 달려 있고 그 밑에는 러닝 머신과 의료 진단 기기가 보인다. 운동 기구는 기나긴 임무수행 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과학실험 모듈 안의 보조 욕실 안에는 사우나 시설도 있다. 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규모로 사우나, 샤워, 물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는 특수 욕조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설치되어 있다.

나머지 모듈들에는 각종 카메라, 천문학 장비와 고에너지물리학 장비, 지구 관측 기기, 결정의 확대와 물질의 성장을 실험하는 고온의 오븐, 정교한 생체의학 설비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심지어 무중력 상태에서 양파 같은 채소를 기르고 식물의 성장과 재배 실험을 할 수 있는 작은 정원도 있다. 닭과 메추라기 알도 미르에서 부화한 적이 있지만 갓 태어난 새끼들은 우주 공간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르에서는 모두 2만번 이상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우주비행사들은 장기 우주 비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우주 최장기 체류 기간은 러시아의 발레리 폴리아코프가 기록한 438일이다. 그 외에 1년 넘게 미르에서 체류한 비행사만도 3명이나 된다. 이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귀중한 자료가 없었다면 국제우주정거장 승무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당했을 것이다. 7명의 미국인도 이곳에서 지냈다. 새넌 루시드는 188일, 제리 리넨거는 185일을 머물렀다.

안정을 유지하는 평형 장치가 탈이 나고 프로그레스 화물선이 도킹 중 충돌하는 바람에 파손되는 등, 하드웨어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미르는 돌아간다. 비교적 최근에 설치된 모듈도 있지만 아무튼 이 모듈들이 국제우주정거장에 더없이 유익한 자료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고르부노프는 습도와 온도의 갑작스러운 상승으로 미르의 파이프에 생겼던 곰팡이를 예로 들었다. 국제우주정거장에 러시아가 제공한 모듈도 미르와 동일한 파이프를 썼기 때문에 문제의 파이프는 즉시 회수되어 곰팡이 방지 피막을 입혔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국제우주정거장 사업이 다소 지연되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유인 우주정거장을 장기 운영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나라다. 1970년대에 벌써 규모는 작아도 살루트 우주정거장이 가동되었다. 지금 러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바로 자금이다. 모스크바에서 기자는 미르에 대해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미르의 운영 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상실해 괴로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러시아는 지금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구소련의 연구개발 기반은 막강했지만 지금은 시들었고 일부는 고사해버렸다”며 “민간, 공공부문 할 것 없이 통치의 틀 전체가 혼란에 싸여 있다”고 주러시아 미국상공회의소의 스콧 블랙린 소장은 지적한다.

이런 상황은 21세기에 걸맞는 경제를 건설하겠다는 러시아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현재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기관들과 러시아의 연구소들이 손을 잡고 러시아의 과학기술을 세계 시장에 진출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과 미래의 불확실한 지위가 미르처럼 극명하게 대조되는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NASA의 골딘 국장은 미르가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해 책정된 예산을 스폰지처럼 빨아먹을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미르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미국과 러시아 우주국의 ‘관계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의회에서 밝힌 바 있다. NASA는 미르의 완전한 철거를 원하고 있다.

키셀레프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어림없다”고 못박는다. 그는 “미르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보급선을 지을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자금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르를 국책 사업으로 선정하고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푸틴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한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2001년도 우주항공 부문 예산에 미르도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이 약속을 하는 그 순간에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잘레틴과 알렉산더 칼레리는 미르 안에서 작은 공기 누출 구멍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실험 모듈로 이어지는 해치에서 프로그레스와의 충돌로 인해 파손된 곳을 발견하고 즉시 봉합했다.

자금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또 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은 데이터 전송 위성을 통해 지상과 24시간 교신한다. 반면 미르가 이용할 예정이었던 러시아의 위성은 자금 부족으로 발사가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잘레틴과 칼레리는 러시아 상공을 통과할 때만 지상 기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나머지 시간은 지상과의 연락이 두절된 그들만의 시간이다.

지휘국의 규모도 미국보다 작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자금력이다. 미르의 궤도 비행을 나타내는 대형 세계 지도 밑에는 오메가, 휴렛패커드, 스캔, 와이너 등 미르에 각종 장비를 제공한 서방 기업들의 광고판이 덕지 덕지 붙어 있다. 러시아인들은 돈이 될 만한 일은 닥치는 대로 한다.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고르부노프는 솔직히 털어놓는다. 이것이 러시아의 냉혹한 현실인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미르는 대견스럽게도 지구 궤도를 순항하고 있다. 미르사는 이 특이한 시설을 과학적으로 상업적으로 교육적으로, 심지어는 오락용으로 활용해줄 고객을 찾고 있다. 하지만 ‘호텔 미르’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미르까지 한번 날아가보겠다고 4천만 달러의 거금을 내놓을 바보는 이 세상에 많지 않다”면서 고르부노프는 껄껄 웃는다.그는 “안정된 운영과 승무원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우리는 색다른 과학적 실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미르의 과학적 상업적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에네르지야와 미르사에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만약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러시아우주국은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고 우주정거장을 철거하게 될 것이다.”

주민을 기다리는 우주정거장 모듈
『러시아제 우주정거장 모듈 판매. 주문에 맞춰 제작, 발사하여 이미 궤도 비행중인 국제우주정거장에 부착될 예정.』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모스크바의 크루니체프 우주연구소는 승무원들의 생활 공간이 될 세 개의 거대한 서비스 모듈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납품했다. 자금난과 잦은 계획 변경으로 인해 예정보다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첫 번째 모듈이 마침내 오는 7월 발사된다.

크루니체프의 책임자 아나톨리 키셀레프는 “서비스 모듈의 지연에 따른 모든 불만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7월에 발사되면 그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다음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왕복선을 타고 가서 시설을 가동하여 2000년 가을께부터는 처음으로 영구 거주가 시작될 것이다. 2005년까지 후속 모듈이 꾸준히 추가되면서 국제우주정거장은 최소 15년 동안 운영될 전망이다. 미르의 경험을 살리면 수명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 궤도에 떠 있는 모델과 외형이 동일한 두 번째 서비스 모듈도 완성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모듈은 우주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말썽이 생겼을 때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될 엔지니어링 모듈로서 열차 한 량 정도의 크기로 강한 인상을 준다. 이 모듈이 추가로 발사되면 국제우주정거장의 무게는 정거장의 위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5톤의 추진체를 포함하여 9톤이 늘어난다. 승무원수도 지금 예정된 6명에서 9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크루니체프 우주연구소의 알렉산더 레베데프 부소장이 내부 단장만 남겨둔 또 하나의 모듈을 전격 공개하여 “이것은 판매용으로, 맞춤식 설계가 가능하다. 설비가 끝난 후 3개월이면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쏘아올릴 수 있다”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크루니체프측은 자체 자금으로 이 모듈을 제작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모듈을 추가 제작하면 비용이 경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레베데프 부소장은 경비가 얼마나 들었고, 구매자에게 얼마를 부를 계획인지는 함구했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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