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랩미어는 “앞으로 40년 동안 이 모델을 계속 생산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사실 이번 사업은 실패에 가깝다”고 말한다.
클랩미어의 시러스사는 물론 다른 회사들도 앞으로 몇 년 안에 지금의 신형 ‘SR20’보다 훨씬 조용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고, 조종이 간편한 자가용 비행기 신기종이 출시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 때 쯤이면 부유한 고객들은 현재 제트기 가격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항공기를 구입해 타고 다닐 것이다.
클랩미어 회장은 “이 항공기들은 일년에 수백 대가 아닌 수천 대씩 생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미국은 경비행기를 해마다 수천 대씩 생산해 왔다.1978년에는 단발 프로펠러기 14,400대를 포함해 총 18,000대의 자가용 비행기가 팔렸다. 그러나 경비행기 시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1987년에는 겨우 600대의 단발 엔진 항공기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항공기 산업의 쇠퇴원인에 대해 NASA의 행정을 맡고 있는 데니얼 골딘은 클랩미어와 견해를 같이한다. 1992년에 열린 항공기 실험 협회(Experimental Aircraft Associat-ion) 연차 총회를 처음 방문할 당시 골딘은 NASA의 신입사원이었다. 당시 항공기 산업이 겪던 불황의 규모 앞에 골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항공기의 엔진 커버를 살펴본 골딘은 “그당시 비행기들의 엔진들을 보니, 1950년대에 쓰던 기술들 뿐이었다”며 “심지어 로케트 과학자를 찾아가 수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경비행기 산업 자체가 낡을 대로 낡아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자가용 비행기는 최고급 벤츠 승용차의 가격과 맞먹는다. 그러나 자가용 비행기들은 승용차와 달리 수십 년 동안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시끄럽고, 유행에 뒤떨어지면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클랩미어는 이에 대해 “생전 처음 이 조그만 비행기에 올라본 사람들은 황당하기 그지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클랩미어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키트 항공기 제작사인 랜캐어 인터내셔널사를 설립한 랜스 네이보어의 생각도 같았다. 본사로부터 분사한 랜캐어사는 지난 2월 이 회사 최초로 단발 엔진 4인승용 경비행기를 생산했다. 모델명이 ‘콜럼비아 300’인 이 비행기는 시속 352km까지 날 수 있으며 기본 사양 가격 285,500달러에 팔리고 있다. 더 강해진 엔진과 함께 빠르고 세련된 이 항공기는 기업들에 올해에만 15~20대, 그리고 내년에는 90대를 각각 인도할 계획이다.
‘콜럼비아 300’이나 ‘시러스 SR20’은 자가용 비행기의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두 기종 모두 PC 계기판이 장착되어 있으며 GPS 기능, 합성 물질로 제작된 기체, 공기의 흐름을 계산하는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등이 내장되어 있다. 또한 SR20은 승무원을 위한 공간이 넓어지면서 기체 뒤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디자인은 이제까지 위험한 요소로 간주되던 형태이다.
또하나는 세련된 모델의 이 항공기에 신형엔진과 각종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일. 올들어 두 종류의 최첨단 엔진이 개발되었는데 랜캐어의 ‘콜럼비아 300’은 최첨단 조종실로 훨씬 편하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AGATE(Advanced General Aviation Transport Experiment)라 불리는 프로젝트에서 개발됐는데 1994년 데니얼 골딘이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는 NASA와 70여 기업이 팀을 이뤄 참여했다. 목표는 ‘고급 승용차보다 싼 항공기를 공급한다’는 것. NASA는 2010년에 10,000대의 자가용 비행기생산능력을 갖추고 2020년에는 그 두 배의 생산력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 NASA는 또 자가용 비행기 사고를 10년 내에 현재의 5분의 1로, 20년 후에는 10분의 1까지 줄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바로 항공기 ‘엔진’이다. 현재의 경비행기 엔진은 관리비가 많이 들고, 값비싼 옥탄가 100의 항공유를 사용한다. NASA는 시러스사와 랜캐어사 생산기종에 장착하기 위해 텔레다인 컨티넨털사와 협력해 ‘CSD 283’엔진을 개발했다. ‘CSD 283’은 제트 연료를 쓰는 200마력의 과급 2행정(stroke) 디젤 엔진으로 현재의 동급 엔진에 비해 연료소비가 25% 절감되고 한 번의 엔진 정밀 검사로 최장 3,000시간까지 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엔진이 좋아지더라도 항공기 사고율이 낮아지지 않는 한 신형 항공기 판매는 여간 어렵지 않다. 여객기 사고율은 그동안 항공기들의 첨단시스템화로 감소추세에 있지만 자가용 비행기의 사고율은 여객기에 비해 무려 10배나 된다.
자가용 비행기 사고의 원인은 주로 악천후에 있다. 기상이 나쁘면 조종사가 방향감각을 잃어 항공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개 10,000m 상공을 나는 제트 여객기들은 대부분 악천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여객기 조종사들은 실제와 흡사한 시뮬레이터를 통해서 계속 훈련을 쌓는다. 그리고 여객기들은 최첨단 자동 항로 장치와 선명하고 큰 전자계기판, 각종 기계 장치를 계속 감시하는 컴퓨터 장치가 구비되어 있다.이에 비해 자가용 비행기는 최첨단장비 없이도 제트여객기의 8km 아래 상공에서 비행 규정(IFR)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구름 층을 뚫고 가야 한다.
일년 동안 고작 100시간 정도의 비행 경험밖에 없는 조종사가 비행기의 현 위치와 자세가 올바른지 등을 알려면 인공 수평기, 고도계, 자이로 컴퍼스 등과 같은 여러 개의 장치들을 수시로 살펴 보아야 한다. 또한 초기 오작동 가능성 점검을 위해 각종 장치들을 꼼꼼히 검사하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클랩미어는 “엄격한 비행규칙을 제대로 지키며 비행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안전 운항을 위해 조작이 간편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로 주계기판(PFD, Primary Flight Display)을 꼽고 있다. 그는 PFD가 차세대 자가용 비행기 산업을 이끌어 나갈 유일한 기술이라고 믿고 있다.
AGATE 프로젝트의 일부분으로 개발된 PFD 시범 모델은 마치 노트북 스크린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항공기 전방의 시야를 스크린에 멋지게 담아낸다. 수평 계기판도 현재 나와 있는 것보다 네 배는 더 넓다. 따라서 비행기 날개가 수평을 잃고 있는지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PFD 시범 모델에는 또 항공기가 현재의 항로로 항진을 계속할 경우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스크린이 있어 조종사는 착륙할 때, 이 스크린에 나와 있는 고속도로가 활주로의 끝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착륙지점을 정확히 찾을 수 있다.
PFD 옆에는 또한 다른 항공기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스크린이 있어 라디오를 통해 스크린에 표시되는 기상정보 등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GPS 수신기를 통해 해당 항공기의 위치를 보여주며 주변의 지상고도 등을 계산하고 만일 필요 이상으로 저공비행을 하게 되면 경고음이 나온다.
여기에 공항에 대한 정보까지 표시되면 PFD는 완벽한 ‘착륙 보조도구’가 된다. 지상에 설치된 별도의 송신기로 작동되는 최첨단 GPS는 항공기의 위치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정확히 알려주면서 공항의 조감도를 스크린에 담아 낼 수 있다.
최신 항공 첨단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는 2005년경 생산될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비행기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4만 달러 이상의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수가 일년에 백만 명 정도 된다. 그 액수로는 비행기 한 대를 통째로 구입하지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상당히 비싼 부품도 너끈히 살 수 있다.
자동차 업계도 경비행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8년, 덜러스와 LA까지 배달되는 일부 지역지에 한 광고 문구가 실렸다. 저가 경비행기를 새로 개발하기 위해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광고주는 다름 아닌 바로 도요타였다. 도요타는 이미 기술팀을 구성, 시범 경비행기의 디자인과 제작을 하고 있다.
새로운 항공기 개발에는 엄청난 대가와 비용이 소요된다. 시러스사와 랜캐어사도 모두 시험 비행에 나섰던 조종사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 회사들은 ‘안전하게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든다는 당초의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항공기 디자이너 버트 루턴은 “앞으로도 항공산업이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NASA의 AGATE 프로그램을 총지휘하고 있는 브루스 홈즈는 “자가용 비행기 시장의 혁신적인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질적인 공항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중소도시들이 쇠퇴하고 운항 시스템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항공 요금은 더욱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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