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ABS 독자개발 성공
『꼭 3년이 걸렸습니다. 산고(産苦)에 비교하면 어떨까요?』 오준남 만도 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자동차장치인 전자제어 브레이크 시스템(Anti-lock Braking System)의 개발에 걸린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90년대 국내 자동차 전자제어 장치분야는 값비싼 외제를 수입하거나 기술제휴를 통해 고급차에만 장착하는 수준이었다. 세계 ABS 시장도 보쉬, 컨티넨털테베스 등, 유럽계 회사들이 80∼90%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술이전도 극히 꺼렸다. 이런 상태에서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받아 들여졌다. 吳 연구원이 연구에 나서기도 전에 주위에서 예상보다 차가운 눈길을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자동차 선진국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에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G7(선도기술 개발과제)의 국책과제로 선정돼 지원금만 노린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시험장비 만들며 3년 연구끝에 개가
그러나 吳연구원은 외제 ABS제품의 가격이 대당 300달러로 어떤 자동차 부품보다 고부가가치라는 사실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한가지 확신이 있었다.
『자체적인 연구로 독자기술을 개발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산보다 견고하면서도 값이 싼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로 밀어붙였지요.』
기초연구를 거친 뒤 본격적인 개발에 나선 것은 96년. 그러나 출발부터 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ABS는 자동차 구조상 엔진룸 안에 위치하는 유일한 전자제어 장치다. 외부의 고온이나 혹한 등 온도변화와 모래, 물 등 최악의 조건에서도 잘 견디고 작동해야 하는 군수용장비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 吳연구원은 ABS의 전자회로에 최신기술을 적용하고 열을 단계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새로운 전자제어 장치를 고안하는데 몰두했다. 특히 반도체는 150도 이상에서는 작동을 못하는데 ABS가 받는 열을 안전하게 밖으로 빼내면서 부피, 무게를 과감히 줄이는데 승부를 걸었다.
獨 지멘스社도 높이 평가 기술제휴 제의
연구팀은 ABS를 시험할 수 있는 시험장치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국내에서 외국 ABS업체들의 시험·계측장비를 구할 수 없어 복합진동시험기, 전자파 암실 등 30여 가지가 넘는 장비도 직접 개발했다.
연구를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은 불확실한 지원이었다. 연구의 직접경비만 연간 20억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회사도 초기에는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했다. 기초연구를 거쳐 겨우 회사를 설득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연구도 중단위기에 몰렸다.
『밤샘작업을 하며 연구에 매달린 연구원들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만큼 크게 낙담했습니다.』
다행히 연구팀은 독일 지멘스에서 조립생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지멘스가 만도의 ABS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기술제휴에 적극 나섰다. 이는 기술력에서 만도기계가 외국업체와 투자자들로부터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국산기술로 ABS 탄생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완벽한 경쟁력 갖춘 EHB 생산계획
吳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전자제어 장치의 기술수준이 어느 기업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에 개발한「MGH10」에 이어「MGH20」의 개발이 완료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안정성을 높이고 가격은 더욱 낮춰 경쟁사들이 2∼3년 동안은 따라올 수 없는 제품이 나올 것입니다.』
吳 연구원은 국내 독자기술에 의한 전자제어 브레이크 장치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자동차 첨단산업의 핵심 전자공학 기술분야에서도 국내기술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심사위원들도 국내 연구진이 물리, 화학, 반도체 등의 기초과학과 전자 및 기계기술 등 응용과학의 집합체인 전자제어 브레이크 장치를 성공적으로 개발함으로써 한국 자동차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가능성과 종합적인 응용기술을 요구하는 첨단제품 기술개발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吳 연구원은 앞으로도 전자제어 장치의 연구에만 매달릴 생각이다. 기존의 브레이크시스템을 대체할 EHB(Elec-tronic Hydraulic Brake system), 즉 기존 제어장치가 폐달을 밟으면 기계적 압력에 의해 작동되는 것과 달리 전기적신호에 의해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새로운 시스템 개발이 그가 잡은 방향이다.
『오는 2003년이면 초소형, 저가의 전자제어 장치를 선보여 경쟁사와 한판 승부를 겨룰 것입니다.』 자신감과 결의에 찬 그의 말에서 또 한번 「일 낼 사람」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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