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호는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3분의 1을 관리하는 18척의 트라이던트급 잠수함 중 하나다. 이 잠수함은 길이 168미터에, 무게 18,700톤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현재 142명의 사병과 15명의 장교가 탑승하고 있다.
잠수를 하기 위해 함교를 벗어나 좁은 계단을 따라 세 층을 내려가니 조정실이 나왔다. 캠프함장이“잠수, 잠수, 잠수”하는 소리와 함께 잠수함은 해치를 모두 잠그고 잠수에 들어간다. 미국 해군이 최초의 잠수함 홀랜드호를 진수시킨 지 100년이 흐른 지금, 잠수함의 새로운 미래가 바로 이 해저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날렵한 고래의 몸통을 닮은 잠수함 외형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신기술의 혁신적 도입으로 내부는 크게 변모할 전망이다. 이미 시울프급 공격형 잠수함 지미카터호에는 항공기의 폭격창과 비슷한 방수 격실이 선체 중앙에 마련, 21인치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나오는 무기보다 더 큰 공격무기와 탐지기를 배치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무인 해저 탐사선과 공중 탐사기도 포함된다.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잠수함의 원자로를 이용,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레이저와 극초단파 같은 새로운 병기를 실전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기능의 하나. 지금 제작중인 버지니아호는 연안 수역 방위에 투입될 새로운 공격형 잠수함으로, 잠수함을 추진하는 스크루를 특이한 원추체가 감싸고 있어 소음을 흡수한다. 2004년 즈음 선보일 예정인 이 잠수함은 역사상 가장 조용한 잠수함이 될 것이라고.
지금 핵미사일 잠수함은 새로운 변신의 기회를 맞고 있다. 냉전종식으로 핵무기 대결 위협이 감소하면서 미 해군은 2004년까지 트라이던트급 잠수함 수를 18척에서 14척으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 유력한 감축 대상 후보는 워싱턴주 뱅거 해군기지에 있는 미시건호, 조지아호, 플로리다호와 1981년에 건조된 가장 오래된 오하이오호다.
하지만 해군은 이 잠수함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최대 154문의 재래식 크루즈미사일로 재무장시킨다는 복안을 세워두고 있다. 이 정도 화력이면 한 대의 항공모함 전투단이 실을 수 있는 무기를 능가하기 때문이며, 또 잠수함 4대의 수명이 아직 20년이나 남았는데 굳이 지금 퇴역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게 이들의 입장.
테네시호의 승무원들은 사정거리 7,500km의 트라이던트 II D5 미사일 발사 모의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통은 승무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숙소를 비롯한 생활 공간을 수직으로 관통한다. “로빈 훗의 셔우드 숲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랭크 벤슬리 선임하사관이 미사일실의 애칭을 쓰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선임하사관은 함내에선 장교 다음으로 높은 계급이다. 대부분의 승무원들처럼 벤슬리도 틈틈이 공부하여 얼마 전 심리학 학위를 받았다. 한 번 출항하면 석 달 반 동안 해저에서 연안 경비를 하는 테네시호에 줄곧 갇혀 지내는 이 생활에서는 심리학 지식이 상당히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
이 때 갑자기 미사일실의 방사능 누출을 알리는 신호등 하나가 깜박거린다. 다행히 표시등의 오작동으로 밝혀져 겨우 안도의 숨을 삼켰지만 시스템을 점검하는 몇 분 동안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미사일 훈련은 예정대로 시행됐다. 발사 명령이 사실로 확인되면 나머지 절차는 장례식에서 행해지는 종부 성사처럼 냉정하게 착착 진행된다. “열 하나 전방. 열둘 준비. 열셋 표시 - 잠시 침묵 - 열둘 전방. 열셋 준비. 열넷 표시.” 복창은 계속된다. 여기서 말하는 “전방”은 복수핵탄두미사일이 미리 정해진 표적을 향해 순조롭게 날아간다는 표시. 요즘 미사일은 주택 하나까지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 미사일 발사 훈련은 신속하게 진행된다. 이런 기민한 동작은 앞으로 개조될 4척의 크루즈미사일 잠수함에도 그대로 전수될 것이다. 154문의 크루즈미사일을 6분 안에 모두 발사할 수 있다. 크루즈미사일의 사정거리는 870해리.
1988년에 진수된 테네시호는 다른 트라이던트급 잠수함과 동일하다. 예전에 이런 잠수함을 본 적이 있다면 그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트라이던트급 잠수함은 SSBN명으로 지칭하는데(테네시호는 SSBN 734이다), 앞으로 개조될 4척은 모두 이 SS GN으로 불릴 예정이다. SSBN은 잠수함 탄도핵을 가리키는데 SSGN의 G는 유도미사일을 뜻한다.
24문의 핵미사일 하나 하나는 7문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크루즈미사일로 대체될 것이다. 2척의 SSGN 잠수함에 154문의 크루즈미사일이 모두 실릴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2척의 SSGN 잠수함에 있는 발사관은 실(SEAL) 같은 해군 특수부대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개조할 예정이다. 최소 66명에서 최대 102명의 특수부대원을 수송하기 위해서다. 4개에서 8개 정도의 발사관은 각종 장비와 탄약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전방의 두 발사관은 해저에서 잠수함 밖으로 나가는 통로로 활용된다. 한 발사관은 잠수부들이 직접 해치를 열고 빠져나가는 통로로 쓰인다.
또 한 발사관은 현재 하와이에서 최종 시험 단계에 있는 소형 잠수함과 연결된다. 길이 약 20미터의 이 소형 잠수함은 버지니아호에 실리기로 결정됐다. 이 두 발사관은 잠수부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서로 연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잠수함의 임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SSGN은 전 세계의 심해를 누비고 다니는 대신 잠재적 적대국의 연안 수역 부근에서 작전을 펼칠 것이다. SSGN은 이런 임무를 수행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SSGN에 실리는 크루즈미사일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해상함들은 안심하고 다른 지역에 투입하거나 방공 임무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군 지도부에게 있어 SSGN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 즉, 한 지역에서 몇 달씩 머물면서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적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견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적국이 도발을 감행하면 SSGN은 언제라도 미사일을 발사한다.
물론 핵잠수함은 처음부터 육상 공격 임무를 염두하고 설계된 것은 아니다. 핵잠수함은 공격용으로 제작된 소형 잠수함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진다. 불과 몇 초만에 수심 60미터에서 180미터까지 15도 기울어져 잠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함내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역시 비좁은 공간에서는 행동의 제약이 많은 법. 테네시호는 수심이 낮은 곳에서는 뒤뚱거리는 오리 신세가 된다. 조지아주 킹즈베이에 있는 모항에서 테네시호는 견인선 두 척의 도움을 얻어야 방향을 틀 수 있다. 길이가 무려 600미터나 되는 교신용 안테나를 물 속으로 끌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기동성은 더욱 떨어진다.
캠프 함장은 얕은 수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명하지만 아무래도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할 것 같다. 워싱턴주 뱅거에 사령부를 둔 제9잠수함대 사령관 조지 볼커 해군 소장에 따르면, 잠수함은 적에게 탐지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깊이 잠수한다고 한다. “잠수 능력은 탈출의 기본 메커니즘. 깊이를 이용해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수역에서 SSGN이 택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선체가 반쯤 노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빠른 속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볼버 사령관은 말한다. 연안 수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려면 이런 식의 새로운 전술이 필요하다. SSGN은 또 선미의 주프로펠러 양옆에 보조 프로펠러를 달게 될 것이라고 SSGN 프로그램 책임자 크리스토퍼 디건은 덧붙인다.
연안에 빈번히 드나드는 선박들도 문제다. 잠망경 관측을 위해 수면 바로 아래로 부상할 때가 잠수함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항해 선박들이 내는 소리는 잠수함이 있는 깊은 바닷속까지 잘 들리지 않는다. 연안 수역에서 잠수함이 상승할 때는 새로운 형태의 수중 음파 신호와 불가피하게 만나게 된다. 잠망경 깊이로 올라갔을 때 레이더의 전자기 신호를 탐지하는 조기경보시스템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테네시호를 타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금새 깨달을 수 있었다. 수중음파탐지기가 테네시호의 진행 방향에서 수면으로 항해하는 이물체를 발견, 이것을 잠수함으로 결론짓는다. 미국 잠수함인가? 장거리 항해에 나선 러시아의 핵잠수함인가? 아니면 네덜란드나 스웨덴의 디젤 잠수함인가? 신속하게 분석한 결과, 문제의 이물체는 강한 바람 덕분에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형 어선으로 밝혀진다. 테네시호는 어선과 부딪히지 않도록 항로를 수정한다.
이것은 잠수함이 모든 배와 만났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대응책이다. 다행히 새벽녘이라 오가는 배가 많지는 않았다. 탐지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SSGN은 수면 밖으로 나와야만 비로소 적의 분주한 해안 수역을 통행하는 선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전 정보가 부족할 경우에는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핵잠수함 함장들은 하찮은 위협 때문에 어뢰를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어뢰만 싣고 다니는데, SSGN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해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예산지원을 받으려면 내년에나 기대할 수 있겠지만 SSGN 프로그램 추진건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미 합참본부에 따르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려면 2015년까지 모두 68척의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한다. SSBN을 제외하면 현재 56척의 잠수함이 있는데 이 중에서 특수 작전 임무를 띤 것은 1965년에 만들어진 650급 카메하메하호 뿐이다. 그러므로 4대의 핵잠수함을 SSGN으로 개조하면 전력 보강에 큰 보탬이 된다는게 해군측의 설명.
SSGN 개조 프로그램은 빠르면 2004년까지는 완료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새로운 크루즈미사일을 SSGN에 장착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신형 미사일은 쌍방향 교신 능력과 표적 일대를 저속으로 선회하는 능력도 갖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표적을 향해 날아가면서 표적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동하는 표적물을 공격하기에는 더없이 유리한 무기이다.
SSGN 개조 프로그램에 들어갈 예상 비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4척의 잠수함을 개조하는 데는 최소한 25억 달러는 들 것으로 추산된다. 모든 잠수함이 폐기되기 전까지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핵원자로의 연료 교체 비용이 포함된 가격이다. 하지만 START I, II 같은 핵무기감축협정의 난해한 규정으로 인해 해군은 비핵용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미사일 발사관까지 바꾸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경우 비용은 40억 달러로 치솟지만 잠수함의 수가 모자라고 SSGN의 전략적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군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버지니아호 정도의 공격용 소형 잠수함 한 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15억달러선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핵잠수함은 목표의 상실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자리에서 제2의 인생을 꽃피워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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