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과는 플라밍고와 논병아리가 외모가 다르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었다. 플라밍고가 긴 다리에 화려한 색을 띠고 있는 반면, 논병아리는 땅딸막하고 우중충한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플라밍고는 물가를 걸어 다니며 부리로 물을 여과시켜 먹는 반면, 논병아리는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해 고기를 잡아먹는다. 펜실베니아주의 진화론 생물학자인 블레어 헤지는 “우리는 고전적 조사방법으로 이 둘 사이를 연결 시켜줄 만 한 단 하나의 특징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생물학자들이 동물의 분류에 새로운 유전학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고정개념의 상당부분이 무너지고 있다. 예를 들어,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신체적 외형만을 가지고는 하마가 고래나 작은 고래, 또는 돌고래의 일족임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DNA 조사는 정반대인 동족(同族)이라고 알려준다. 고래의 조상은 소나 양 같은 가축은 물론 하마와도 가까운 친족관계라고 밝혀졌다.
인간인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동물학자들은 인간에게 별개 종류의 과(科)를 부여한 반면 침팬지는 오랑우탄과 고릴라와 같이 대형 유인원이라 불리는 과로 분류했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DNA 98% 이상은 침팬지의 DNA와 일치한다. 사실상 침팬지는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보다도 인간과 더 가까운 친족관계인 것이다. 워싱턴주 엘렌스버그의 센트럴 워싱턴대학 심리학자인 로저 파우트는 자신의 저서 〈Next of Kin>에서 “인간은 단지 이상하게 생긴 원숭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생물의 계보를 다시 그리는데 DNA 분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친족 관계의 정확한 DNA 수치분석은 과학자들이 진화를 더 잘 이해하고, 침략적인 종류와 싸우고 새로 출현하는 질병들을 인식하고, 유전자적으로 조작된 유기체를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이다. 국립과학재단의 단장인 리타 콜웰은 지난해 한 연설에서 “계보 추적은 식물 교배와 신약 개발, 그리고 다른 많은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동물을 군(群)으로 분류하는 분류학은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인 카롤루스 리니우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모든 생물체를 ‘종(種)’으로 구분한 다음, 연관된 종끼리 ‘속(續·genus)이라 알려져 있는 더 큰 부문으로 분류해 이름을 짓는 체계를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리니안 체계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식물이나 동물을 발견할 때 외형에 따라 구분 짓는 데 사용됐다.
후에 과학자들은 생물체의 형태, 즉 육체적 형태와 구조를 외관상의 모양만을 가지고 따지지 않게 됐다. 오늘날 분류학자들은 철저한 ‘신체검사’를 실시한다. 그들은 뼈와 이빨을 보고 비늘과 깃털, 꽃잎 수를 센다. 국립과학재단의 환경생물학부 부장인 쿠엔틴 휠러는 “비교 형태학자들은 1500년 이래로 유사성의 패턴을 설명하고자 노력해왔으며 분류의 대부분이 꽤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분류학자들은 종을 분류할 때 DNA검사를 빼놓지 않는다. 플라밍고가 논병아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도‘DNA나열’과 ‘DNA 교배’라는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DNA분자는 나선형으로 꼬아진 형태를 하고 있다. 네 분자는 영문자 A와T, C와 G로 불리는데 서로에게 선천적인 화학적 친화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단단히 결합된 화학적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펜실베니아주의 헤지스 연구팀은 DNA 나열을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DNA 나열’이란 서로 다른 두 개의 종을 구분할 때 유전자 속의 네 개 문자순서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문자의 패턴이 다를수록 두 종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별개의 종이 된 것이다. 논병아리와 플라밍고의 경우엔 패턴이 거의 다르지 않았다. 이와 같은 DNA나열은 DNA교배와 함께 위스콘신대 동물학 교수인 존 커슈가 확증을 했다. 이 기술들은 DNA 가닥이 앞서 설명한 화학적 친화력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가닥과 결합하고자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입각한다. 분리된 DNA 가닥은 가능한 최고의 파트너와 결합을 하지만, 상대 가닥이 가까운 쌍이 아니라면 덜 강력하게 결합을 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DNA에 열(熱)을 가함으로써 그 둘이 얼마나 가까운 쌍인지를 측정한다. 두 가닥이 잘 맞는 쌍일수록, 이들을 분리시키는 데에 더 많은 열이 소요된다.
커슈와 연구원들은 여러 종류의 새 DNA를 가열해 DNA가닥을 분리시켰다. 열이 식은 후, 이들은 한쪽 가닥씩을 같이 섞는 짝짓기를 했다. 이러한 짝짓기가 끝나면 교배 된 DNA에 다시 열을 가하여 어떤 온도에서 다시 서로 분리되는지를 관찰한다. 플라밍고와 논병아리의 교배된 DNA가 가장 마지막으로 분리된 것을 볼 때 이들은 서로 친족간임을 알 수가 있다.
커슈는 연구결과가 종래의 조류친족에 대한 학자들간의 의견이 나뉘어 있어 처음엔 연구결과의 발표를 꺼렸다. 그러나 헤지스박사가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결과를 얻어내자 두 과학자들은 공동으로 영국의 과학저널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조류 학자들은 탐탁해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조류의 서식지를 소개한 유명저서‘The Sibley Guide to Birds’의 저자 데이비드 시블리는 “이들의 연구결과에 상당히 놀랐지만 늘 그렇듯 다른 DNA 연구결과도 학자들을 놀라게 한다”고 말한다.
논병아리가 플라밍고와 그렇게 가까운 친척관계라면 그들은 왜 그렇게 달라 보일까? 해답의 열쇠는 ‘일탈(diverge)’에 달려있다. 이것은 연관된 생물들이 다른 종으로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논병아리와 플라밍고는 그들의 환경에서 다른 식량원(元)에 적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즉, 가까이 연관되어 있지 않는 생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슷한 특성으로 발달 할 수도 있는 ‘집합 현상(converge)’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고기와 고래는 물 속에 삶으로써 비슷한 형태로 발달하였지만 그들은 완전히 다른 동물과에 속한다. 사실, 고래는 물고기보다는 하마에 더 가깝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포유류라는 것을 오랫동안 믿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까지 형태학과 유전학은 지상 동물 중 정확히 어떤 것이 고래에 가까운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해왔다. DNA 분석은 원시고래가 하마와 소, 양, 돼지, 낙타, 사슴 등의 유제류(有蹄類)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과학자들의 원시고래의 뼈 조각을 연구한 결과도 원시고래가 멸종된 ‘메조니키드’라고 불리던 유제류 육식 동물류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발 굴 중이던 과학자들은 마침내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잘 보존된 고래뼈의 화석을 발견했다. 이 뼈는 원시고래와 하마가 친척이라는 DNA 연구 결과를 뒷받침해준다.
유전학 연구는 종들의 새로운 관계를 밝혀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버클리 대학의 브렌트 미슐러가 지휘한 ‘디프그린(Deep Green)’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유전적 정보를 이용해 녹색식물의 연계도표를 작성한 것으로 현재 살아있는 녹색식물들이 원시 담수 식물의 후예라는 것을 밝혀냈다. 디프그린 프로젝트는 지상식물들이 원래 바다로부터 왔다는 전통적인 시각을 뒤엎었다.
하지만 디프그린은 국립과학재단의 ‘트리 어브 라이프(Tree of Life)’ 프로젝트에 비하면 각주에 불과하다. 재단은 미세한 박테리아에서부터 엄청난 크기의 심장을 갖고 있는 푸른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에 대한 정확한 연계도표를 종합하여 정리했다. 생물학자들은 1800년대 중반이래 연계도표를 그려왔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1억 7천 5백만 종에서 약 5만 가지의 종류만 도표에 올라 있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종이 수백만에서 수천만에 이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연계도표작업은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연계도표 작업이 인간게놈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광대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계도표작업에는 DNA분석과 전산화작업이 병행되는데 이러한 방법들이 전통적인 방법을 대체할 수 는 없다. DNA분석은 유전인자를 분석하고 다른 종과의 비교에 결정적인 방법이다. 국립과학재단은 과학자들이 유전학적 방법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보고 이들을 상대로 전통적인 분류법을 교육하고 있다. 헤지스는 “고전적인 분류방법이 아직도 생물학적 다양성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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