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공기의 이름은 벨-보잉 MV-22 오스프레이 틸트-로터 수송기. 오스프레이는 비행기처럼 순항하고 헬리콥터처럼 이착륙하는 특이한 항공기로서 대당 가격은 4천 4백만 달러다. 개발하는기간만도 무려 18년이 소요된 오스프레이는 본격 배치를 앞두고 이 마라나 비행장에서 최종 성능 평가를 받고 있었다. 두 대의 항공기는 전쟁이나 재난에 대비, 험준한 지형에 착륙해 민간인을 구출하는 모의 작전 비행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오스프레이 수송기들은 수평 자세에서 가파르게 하강했다. 2명의 조종사와 17명의 전투원을 싣고 있던 두 번째 항공기는 시속 75km로 전진하면서 분속 300m가 넘는 속도로 하강했다. 정격 하강 속도를 넘어선 과속이었다. 75m쯤 내려갔을 때 문제의 오스프레이기가 오른쪽으로 쏠리며 회전하였다. 90도까지 계속 기울더니 순식간에 60m를 낙하하여 지상에 추락, 폭발했다. 탑승객 전원이 몰사한 대형 사고였다.
비행에는 가끔 사고가 따르는 법이지만 오스프레이의 추락은 외형만큼이나 특이했다. 주도면밀한 지상 시험과 훈련 덕분에 사실 제 아무리 까다로운 전투기라도 큰 사고 없이 시험 비행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맑은 날씨에 수송기가 시험 비행을 하다가 추락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더욱이 사고기는 얼마 전 출고된 항공기였다. 지난 1월에 인도되어 비행시간도 135시간에 불과했다.
7월에 나온 공식 사고 보고서는 이 사고 원인이 조종사의 기계 작동 실수였다고 밝혔다. 까다롭고 힘든 연습비행 임무 단계에서 두 항공기 조종사들이 동시에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병대 항공사령관은 V-22는 어느 한도를 넘어설 경우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오스프레이 개발을 주관하는 해군이 특수 경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며 사고 원인 조사관들이 밝힌 보고서 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오스프레이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사고 발생일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공 전문가들은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8월에도 해병대가 보유한 11대의 오스프레이가 잠시 비행장에 묶여 있었다. 이번에는 항공기 구동축의 연결장치에 문제가 있었다.
오스프레이는 새로운 수직 이착륙기의 시대를 예고하는 선두주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어설프게 절충한 괴상한 기종으로 개발하여 돈만 낭비했다는 오명과 함께 한때 반짝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군은 오스프레이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배치할 것인가? 20년 가까운 개발 기간 동안 380억 달러를 투자한 비행기를 두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기만 하다.
당초 해병대는 이 항공기를 구매할 뜻이 없었다. 1980년대 초 해병대는 노후한 CH-46 헬기를 대체할 새로운 기종의 개발 필요성을 느끼고 HXM으로 알려진 새 헬기가 구비해야 할 요구조건을 작성했다. 그러자 벨과 보잉사는 국방부에 솔깃한 제안을 던졌다. 틸트-로터기를 개발하면 해병대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그 밖의 다양한 임무에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량으로 제작하면 가격도 헬리콥터와 큰 차이가 없고, 속도와 작전 범위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 시기는 참으로 절묘했다. 미군이 헬리콥터의 좁은 작전 범위로 인해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직후였던 것이다. 1980년 4월 미군의 정예 부대는 이슬람 단체들에 의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갇혔던 미국인 인질들을 구출하는데 실패한 적이 있다. 테헤란까지 헬기를 보내기 위해 여러 번의 중간 급유를 거치는 복잡한 과정이 작전 실패의 중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었던 것이다.
국방부는 CH-46의 후속 기종을 틸트-로터기로 선택했다. 1983년부터 설계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시제기 개발에 착수했다. 최초의 비행은 1989년에 이루어졌고 1992년까지는 해병대에 첫 번째 항공기를 인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V-22는 예정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중량이 늘어났고 추가 비용도 더 들어갔다. 병력도 수송하고 잠수함도 추적할 수 있으며, 도시와 도시로 승객을 실어 나르겠다고 자꾸만 욕심을 내다보니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매버릭 미사일을 장착하여 공격기로 활용한다는 설계안마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용도를 구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매자의 반응은 시들했다. 해군은 잠수함을 추적하는 V-22는 너무 육중해서 웬만한 함정에는 실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육군은 부상병 후송 작전은 일반 헬기로도 얼마든지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선전은 요란했지만 일반 승객 수송 활용안은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989년 당시 국방장관이던 딕 체니는 V-22를 백지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의회가 반대했다. 벨과 보잉사는 가격과 중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오스프레이기 개발 계획은 지속될 수 있었지만 항공기 배치는 다시 10년 가까이 늦어졌다. 한편 오스프레이에는 잇따른 불운이 닥쳤다. 1991년 처녀 비행에 나선 오스프레이가 자이로의 이상으로 이륙 3분만에 추락했던 것이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 또다시 사고가 일어났다. 버지니아주 콴티코에서 있었던 시범 비행 도중 엔진 화재로 비행기가 추락해 7명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도 해병대는 오스프레이의 엔진만 돌아가면 “돌진!”을 외친다. 해병대는 360대의 MV-22를 구매할 계획이고 공군은 50대의 특수작전용 CV-22를 따로 구매할 예정이다. 물론 옹호자들의 시각에서는 오스프레이만큼 다재다능한 항공기도 없다. 헬리콥터보다 빠르고 교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설계되었을 뿐 아니라 악천후 및 야간에도 비행할 수 있는 완벽한 전자조종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6,150마력의 쌍발 엔진을 달고 있는 V-22는 시속 460km로 순항한다. 4,500kg 무게의 짐과 24명의 전투원도 실을 수 있다. 전함으로부터 430km 까지 날아가서 전투 부대를 투하하고 재급유 없이 귀환할 수도 있다. 장거리용 연료 탱크를 장착하고도 적재 하중이 적은 CV-22는 930km의 작전 반경을 갖는다.
오스프레이는 헬리콥터 방식의 수직 이착륙식이지만, 헬기가 갖는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로터의 추진축을 기울이면 헬기를 앞으로 전진시키지만 시속 320km가 넘는 속도에서 이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 된다.
오스프레이는 로터를 90도로 꺾으면 그대로 프로펠러 비행기가 된다. 정상 비행고도에서 시속 50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속도와 작전 범위가 모두 향상되었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다. 오스프레이의 로터는 일반 비행기 프로펠러보다 커서 순항시에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또 헬리콥터의 로터보다는 작아서 수직 이착륙시에 불리하다. 전환장치 때문에 중량도 더 나간다. 견고한 날개와 끝에 달린 엔진때문에 그만큼 더 무거워진다. 오스프레이의 조종시스템은 두 가지. 이착륙시에는 로터 블레이드의 피치를 변화시켜 조종하고 순항시에는 통상적인 비행기 조종법을 쓴다.
오스프레이를 종래의 두 항공기 기종과 비교해보자. 보잉의 CH-47은 세계에 가장 많이 보급된 중형 헬기지만 짐과 승무원이나 연료를 싣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게는 오스프레이보다 2,200-4,500kg 정도 더 가볍다. 엔진도 더 작지만 오스프레이보다 큰 항공기 적재실에는 더 많은 짐이나 승무원을 실을 수 있다. 오스프레이는 CH-47보다 빠르지만 CH-47은 1960년에 만들어진 기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요즘 헬기는 아주 빠르기 때문에 속도 측면에서 오스프레이만이 독보적 위치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스프레이는 작전 범위와 속도, 수직 이륙 능력이 탁월하여 특수작전에 안성맞춤이다. 마라나 비행장 추락 사건의 조사에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해병대의 공격작전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라나 추락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과욕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병대가 제시하는 설명은 석연치 않다. 사고 발생 한 달 뒤 해병대 항공담당 부참모장인 프레드 매코클 해병대 중장은 “‘파워 세틀링’ 또는 ‘원형 와류’로 알려진 현상([오스프레이는 어떻게 추락했나] 참조)이 사고의 일차적 원인으로 거론됐다”고 밝혔다.
‘파워 세틀링’ 현상은 양력과 추력이 충분치 못해 헬기가 전방으로 느리게 진행하면서 밑으로 급속히 하강할 때 발생한다. 날개 하단에 생기는 하강 기류, 곧 세류(洗流)의 속도가 헬기의 하강 속도와 맞먹으면 공기는 로터 블레이드 끝부분에서 재순환을 시작하면서 도넛 모양의 와류(소용돌이)를 형성한다. 설상가상으로 조종사가 스로틀 밸브를 개방하여 날의 피치각을 키우면 와류가 더 빨라지고 로터의 양력은 더 줄어든다.
파워 세틀링은 헬기 비행에서 익히 알려진 위험 요소라고 매코클은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교통안전국의 기록도 이런 진술을 뒷받침한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74건의 헬기 사고 중 파워 세틀링이 원인으로 지목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조종사들은 이상 징후를 식별하는 훈련을 받는다. 급강하시에 강하율이 과하다고 판단되면 기체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전진 속도를 높여 로터 주위에 형성된 공기 거품으로부터 빠져 나온다. 로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강력한 터빈 엔진을 장착한 현대식 헬기의 조종사는 강하율을 늦춰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오스프레이는 로터가 2개라는 점에서 기존의 어떤 헬기와도 다르다. 더구나 날개 끝부분에 달린 두 로터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저속에서 기체가 방향을 틀 경우 선회 방향 안쪽에 있는 로터의 공기 속도는 바깥쪽 로터의 공기 속도보다 느려질 것이다. 매코클은 사고기가 저속으로 우회전했을 때 오른쪽 로터에 발생한 원형 와류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한다. 두 로터 모두 원형 와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만약 한쪽 로터만 와류의 영향을 받았다면 문제의 오스프레이는 그쪽 방향으로 쏠리며 회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조종사는 조종간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을 것이다. 마라나 비행장에서 바로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렇게 되면 소용돌이의 영향을 받은 로터의 피치와 파워가 커지면서 양력은 계속 줄어들어 기체는 한쪽으로 더 쏠리며 회전하였을 것이다. 기체의 회전 제어장치는 사실상 역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즉, 원위치로 돌아가기란 아예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허용 강하율의 상한선을 크게 초과했고 기체의 전진 속도를 너무 느리게 잡아 파워 세틀링 현상을 자초한 조종사들의 과오를 지적했다. 기체를 착륙 구역 전방으로 밀어낸 배풍 (背風) 현상도 변수로 작용했다. 조종사들은 전진 속도 83km/h 미만에서 분당 240m가 넘는 강하율은 피하도록 교육받는데, 사고를 당한 오스프레이의 조종사는 훨씬 빠른 속도로 하강했던 것 같다. 선두 오스프레이와 나란히 지정된 장소에 착륙하려고 하다 보니 하강이 더욱 어려워졌다. 사고기 조종사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작전을 완수하기로 결심한 것일까?
매코클은 “두 항공기 모두 원래 예정된 지점보다 600m 높은 곳에 도착했다”며 “전통적으로 해병대는 차질 없는 임무 수행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고기 조종사는 작전 완수를 위해 착륙을 결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종사들에게 이런 조종은 파국을 낳는다. 하강보다 더 위험한 것이 롤링(기체가 옆으로 쏠리며 회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훈련 과정에서 충분히 숙지시켰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번 사고를 일반 비행기의 실속에 따른 급회전에 빗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비행기에는 실속 경고등과 경보장치가 마련돼 있다. 오스프레이에는 위험권에 접근하고 있을 때, 조종사에게 미리 경각심을 갖도록 만드는 그런 시스템은 없었다.
매코클은 원형 와류나 파워 세틀링으로 인한 위험 요인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면서 “급격한 강하율과 느린 비행속도를 수반한 무리한 접근, 승무원간의 호흡 불일치, 상황 판단 미숙 같은 이번 사고의 원인은 틸트-로터기에만 국한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매코클은 또 모종의 조기 경보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건의했으나 해군항공시스템사령부 전문가들이 시스템의 개발에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틸트-로터기가 무조건 위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며 안전 성능 범위를 넘어서 비행하면 어느 항공기나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부엔진과 T형 꼬리날개를 가진 일부 민간 항공기도 날개가 수평 안정판 위의 공기흐름을 가로막아 기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초실속(超失速)’ 또는 ‘악성 실속’에 취약하다. 초창기 몇 번의 사고를 당한 뒤 이 기종은 실속 경보장치를 도입했고 조종사들에게 실속을 방지하는 교육을 부단히 시켰다. 덕분에 지금은 여기 기종들처럼 안전하다. 사실은 앞으로 더 많은 틸트-로터기가 나올 전망이다. 벨사는 합작사인 이탈리아의 아구스타와 함께 신형 틸트-로터기 BA 609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스프레이보다 작은 BA 609는 화물 수송기로 적합하며, 리어젯 소형 항공기와 비슷한 내부 공간때문에 다양한 중장거리 임무 수행에 적합하다. 현재 80대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인데 내년 8월 즈음 인도될 예정이다. 벨과 아구스타는 BA 609를 공동으로 제작하는 한편 아구스타가 설계한 재래식 헬기 AB 139의 개발에도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AB 139도 BA 609처럼 프랫 앤드 휘트니사의 PT6 엔진을 장착한다. 틸트-로터기는 빠르며 높이 날 수 있다. 내부 면적도 훨씬 커서 더 많은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두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틸트-로터기가 어디까지나 헬기의 보완물이지 헬기의 대체물은 아님을 입증한다.
벨-아구스타가 합작 생산하는 헬기의 설계를 이탈리아가 맡은 사실은 또 하나의 중대한 점을 시사한다. 1980년부터 미국 정부는 오스프레이와 스텔스 기능을 가진 코만치를 중심으로 회전익 기술 개발을 지원했지만 두 기종 모두 아직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 유럽은 재래식 헬기 제작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어쨌든 미 공군에 배치될 오스프레이는 지난 9월 시험 비행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공군용 오스프레이는 연료를 3,400ℓ 더 실을 수 있고 정보수집장비도 추가됐다. 미 함정 사이판호 갑판에서도 시험 비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과다 중량으로 인한 해상 이착륙시의 문제점을 걱정하는 해군의 우려는 어느 정도 씻어낸 것으로 보인다. 공군도 2003년부터 오스프레이를 작전에 투입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별 탈 없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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