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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홍길(南洪吉) 포항공대 교수

한국과학재단(사무총장 김정덕)과 서울경제신문은 제 44회 「이달의 과학기술자상」(11월) 수상자로 남홍길(42) 포항공대 교수를 선정했다. 남 교수는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자이겐티아’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분리, 생체시계 유전자의 조절작용을 규명한 공로로 이 상을 수상했다. 남홍길 교수에게는 상패와 트로피, 그리고 1천만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시상식은 지난 17일 과기부 회의실에서 서정욱 과기부 장관과 김진동 서울경제신문 주필 등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식물 개화시기 조절 유전자 분자 구조 규명 ‘오레사라(oresara)’
말 그대로 남홍길 교수가 우리나라 말로 ‘오래살라’라는 의미로 붙인 이 단어는, 남교수가 식물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규명하는데 성공하면서 학계에서 인정받아 쓰이게 된 유전자 이름이다. 이 유전자를 응용하면 수확한 채소와 과일, 꽃 등을 장기간 신선하게 저장, 운반할 수 있다. 특히, 벼의 노화를 지연시킴으로써 약 10%의 증산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교수가 분리에 성공한 자이겐티아(GIGANTEA)유전자는 현재까지 알려진 생체시계와 관련된 유전자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유전자다. 이 유전자의 존재는 이미 30년이 넘게 알려져 왔다. 60년대 초 방사능 처리된 돌연변이체들 중 정상적인 식물체에 비해 크기가 2∼3배나 크고 잎도 3∼4배 정도 많은 개체들이 나왔고, 거대한 크기 때문에 그리스신화의 신들을 멸망시킨 거인족을 의미하는 자이게스(GIGAS)에서 유래한 자이겐티아로 명명됐다.

이 돌연변이체들의 특징은 꽃이 피는 시기가 정상개체들보다 2∼3배 정도 늦다는 것. 따라서 이 유전자가 식물개화 시기를 조절하는 중요한 인자로 인식됐고 전세계 많은 연구그룹이 이 유전자의 분리를 놓고 경합을 벌여왔다.

개화와 수확시기 마음대로
남교수 연구팀은 지난 98년말 1년생 십자화과 식물인 애기장대에서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애기장대는 배추, 무와 생물학적으로 가깝고 낮의 길이가 길어야 꽃이 피는 장일(長日)식물. 연구팀은 돌연변이체가 밤낮을 인식하지 못하고 꽃이 늦게 핀다는 연구결과를 얻고 이 유전자가 밤낮을 인식하는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분리하기 위해 기존 방법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유전체상의 자이겐티아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위에 비타민합성과 관련된 돌연변이 유전자를 먼저 분리하는 방법을 이용, 자이겐티아 유전자를 분리했다. 분리된 유전자를 바탕으로 연구팀이 얻어낸 또 다른 성과는 식물의 생체리듬과 자이켄티아 유전자의 상호작용이다. 동·식물의 수면 등 다양한 생체현상들은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에 따라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식물의 경우 잎운동, 기공의 개폐 등이 생체시계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왔다. 연구팀은 자이겐티아 유전자가 생체시계를 이루는 직접적인 구성인자가 아니라 외부의 빛의 변화를 감지해 그 신호를 생체시계로 보내주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 유전자는 생체시계에 일방적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유전자가 고장이 나면 건전지가 닳은 시계와 같다. 시계가 작동은 하지만 부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처럼 돌연변이체들은 개화시기를 잘못 결정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사위원들 “경제적 파급효과 클 것으로 기대”
개화시기 조절유전자는 대부분 농작물에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응용 가능하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남 교수는 “이 유전자를 이용하면 원하는 시기에 꽃이 피는 화훼류를 만들거나 원하는 시기에 수확이 가능한 농작물의 종자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벼의 경우 수확시기에 서리 등 이상기후로 매년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데, 이 유전자를 이용해 수확시기를 약간 앞당기는 종을 개발할 경우 수확량을 늘리고 농가피해도 줄일 수 있게 된다. 남 교수는 이러한 형질전화식물체를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심사위원들은 “이번 연구로 기존의 일장(日長), 온도조절에 의한 재배방법이 아닌 유전자를 이용한 새로운 품종으로 수확시기를 조절,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획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전자 조절을 이용한 작물재배를 할 경우 기존 농가의 광처리, 온도설비 등이 불필요하게 됨에 따라 경제적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평가했다.

남 교수는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자이겐티아 유전자를 98년말 세계 최초로 분리한데 이어 지난 7월 노화 관련 유전자의 분자구조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남 교수는 식물노화와 관련된 국내 식물분자유전학이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고 말한다.
열악한 연구환경, 아이디어와 인내로 극복

남 교수가 94년 생체시계와 자이겐티아 유전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을 때도 국내 식물분자유전학의 연구기반은 전무했다. 축적된 데이터는 물론, 아이디어를 교환할 만한 연구그룹도 없었다. 연구기간중에 몰아닥친 IMF는 연구개발에 더욱 큰 부담이었다. 환율이 폭등하는 바람에 시약이나 연구자재를 2배 이상의 가격으로 수입해 사용해야했다. 그는 “당시 경쟁중이던 독일,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의 연구기반을 고려해 우리는 최소 3∼5년은 앞선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이겐티아 유전자를 분리하는 연구부터 벽에 부딪쳤다고 한다. 연구팀은 데이터의 부족으로 기존의 정보만을 믿고 유전자분리작업에 매달렸다. 결국 유전자분리를 위한 1년 반 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 교수 연구팀은 포기할 수 없었다.

전략을 바꿔 자이겐티아 유전자 주변에 존재하는 비타민관련 유전자를 먼저 분리,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결과는 대성공. 연구는 급속도로 진전돼 98년 겨울 전략을 바꾼지 1년여만에 유전자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9월엔 과학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 《Science》지에 국내 처음으로 식물분야에 대한 남 교수의 논문이 발표됐다. 남 교수는 “연구팀이 생체시계, 개화시기조절 유전자, 식물노화 등 세계 식물학계에 지속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력이 바탕이 돼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식물노화에 대한 연구를 동물에까지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현재 세포가 노화되면서 많이 발생하는 단백질 20여종을 분리하는 등 연구를 진행중이다. 또 생체시계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발굴하는 게놈프로젝트 등 생명공학분야에도 남은 열정을 쏟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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