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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가격의 중형 고급 세단 6종을 분석한다.

3만달러대의 가격대로부터 시작하는 고급차는 승용차 부문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지녀 판매량이 높은 분야다. 과거 고급 중형차 시장은 유럽산이나 일제 자동차가 독무대였지만 최근 미국 자동차회사들도 첨단 기능을 장착한 중형 4도어 고급 세단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관록을 자랑하는 렉서스, 인피니티,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신 모델과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크라이슬러, 링컨, 올즈모빌의 제품을 면밀히 비교 분석한 결과를 소개한다.

크라이슬러의 300M은 국제 시장을 겨냥, LHS 세단을 업그레이드한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섀시와 동력전달계통은 크라이슬러의 대형 세단과 같은 것을 쓰지만 앞머리와 꼬리를 25cm 가량 잘라냈다. 덕분에 외양이 한결 산뜻해졌고 유럽과 일본의 좁은 도로를 마음놓고 달릴 수 있는 다부진 차체가 만들어졌다. 전륜(前輪)구동차 특유의 넉넉한 공간과 앞차축 전방에 세로로 장착된 엔진을 감안하면 세계 최초의 중형 리무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0M의 뒷좌석은 두 명이 다리를 쭉 뻗은 상태에서 나머지 한 명이 다리를 꼬고 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300M은 높아진 엔진 최고 회전수(6,500rpm)와 압축비(9.9:1), 전자제어식 2단 가변흡기시스템으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인 253마력, 크라이슬러가 자랑하는 알루미늄 불록의 부드러운 3,500cc급 6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300M의 중량은 1,620kg. 단위무게당 마력에서 비교 대상 차량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애석한 것은 300M이 탁월한 가속력으로까진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크라이슬러 300M의 속도계 바늘은 스위스 시계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96km까지 가속하는 데 약 8.5초가 걸려 비교대상 차중에서는 느린 편에 속했다. 크라이슬러의 출력 담당자들이 너무 안이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앞으로 치우쳐 있는 300M의 엔진은 발진시 노면접지력을 높히고 실내 공간을 넓혀주지만 제동거리를 줄이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시속 96km에서 300M을 정지시키면 브레이크가 열을 받은 상태든 받지 않은 상태든 ABS의 도움을 얻었는데도 42.9m의 제동거리가 필요했다. 똑같은 속도에서 렉서스 IS 300을 멈출 때보다 정확히 차 한 대의 길이만큼 더 나갔다. 지그재그 운행과 이중차선 변경 실험에서 300M은 중간 성적을 냈는데, 자동차의 앞뒤 차축 사이의 거리가 멀고 중량 배분이 고르지 않은(앞이 64%, 뒤가 36%)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핸들이 유격 범위가 크고 공격적인 주행을 하는 동안 이따금 동력 지원이 약화된다는 것은 300M이 비포장도로에는 강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300M처럼 인피니티의 I30t도 고급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가 원조다. 닛산의 맥시마와 똑같은 전륜구동 차체를 쓰고 있다. 정교한 3,000cc dohc 6기통 엔진에서 최대한의 힘을 짜내느라 인피니티 기술진은 배기 압력을 줄이기 위해 2,000rpm에서 배기 머플러의 밸브가 열리도록 하는 장치를 덧붙였다. 이런 편법을 썼는데도 I30t은 시속 96km까지 전력 질주했을 때 비교 대상 차량 중에서 여전히 조용한 편에 들었다. 소음측정치는 74데시벨로, 크라이슬러의 300M보다 2데시벨이나 낮았다.

I30t의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시험에 참여한 다른 모든 차종중 다양한 종류의 독립 후방 서스펜션을 채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2개의 뒷바퀴를 견고한 빔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구조를 단순화한 데는 무게와 원가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가 작용했다. 그러나 지그재그 주행의 승차감이나 도로와의 접지력에서 시험 운전을 한 1주일 동안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300M처럼 I30t도 1,530kg의 무게가 압도적으로 차체 앞부분에 실려 있어 뒷부분의 영향력은 미약하다. 두 번의 시험 주행에서 I30t은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기 전에 앞바퀴가 미리 충분히 방향을 틀어 신뢰할 만한 핸들 반응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 탁월한 예측성은 지그재그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하여 이 부문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중차선 변경에서는 이것이 불리하게 작용, 5위에 올랐다.

담백한 외양과는 달리 I30t의 내부는 첨단 장비가 장착되어 있어 매니아들의 관심을 끌 것 같다. 2,400달러의 세련된 네비게이션 및 오디오 패키지에는 트렁크에 장착되는 CD 체인저와 조절 버튼만 누르면 계기반 상단에서 환상적으로 회전하는 전자식 디스플레이 화면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네비게이션 시스템들과는 달리 인피니티의 네비게이션 시스템은 도로와 지형적 특성은 물론 주요 건물과 흥미로운 장소까지 인접 환경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돼 있다.

렉서스 IS 300도 운전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BMW 3 시리즈를 모방한 흔적이 역력한 IS 300은 BMW처럼 아주 컴팩트한 스포츠 세단의 면모를 과시한다. 3,000cc의 직렬 6기통 dohc 엔진은 215마력의 힘이 5단 자동변속기어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며, 핸들에 부착된 버튼을 사용해서 자동변속기어의 기어단수를 조절할 수도 있다. 최고 성능을 발휘하도록 조정된 서스펜션 시스템, 충분한 도로 접지력, 견실한 차체 운동 제어력은 울퉁불퉁한 도로의 충격을 순간순간 흡수하여 걸러낸다. 핸들의 크기는 작지만 도로 사정을 충실하게 전달하여 공격적인 주행을 하는 운전자로 하여금 앞바퀴의 접지력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안정감이 돋보이는 17인치 Z 등급의 굿이어 이글 타이어는 최고급 스포츠 세단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탁월한 코너링과 제동력을 보여준다.

곡선이 살아 있는 렉서스 IS 300은 이번 시험 운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시속 96km까지의 순간 가속력에서는 링컨 LS와 C-클래스 메르세데스에 간발의 차이로 뒤졌지만 시속 48km까지의 가속과 80km에서 112km까지의 순간 가속에서는 두 차를 모두 눌렀다. 제동력과 핸들링에서도 정상급이다. 렉서스는 2위보다 지그재그 주행에서 4.3km, 이중차선 변경 주행에서 7.4km/h 빠른 속도를 보여 지금까지 본지가 시행한 자동차 성능 비교 시험에서 2위와 가장 큰 격차를 벌렸다.
주행 성능만을 놓고 보면 합리적인 가격대라고 볼 수 있지만 다각적 기능을 고려하면 다소 비싼 느낌을 준다.

앞에서 아주 ‘컴팩트하다’고 한 것은 두 사람이 타기에도 빠듯한 비좁은 뒷좌석과 평평한 트렁크 바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스키 장비를 실을 수 있도록 뒷좌석 등받이에 뚫은 작은 구멍을 제외하면 탑승칸을 적재칸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이런 기능은 시험에 참여한 자동차 중에서 올즈모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공하고 있다.



링컨의 LS는 크기와 다용도성에서 렉서스와 정반대다. 시험 대상 차량 중에서 앞뒤 차축 사이의 길이가 가장 길고(286cm), 무게가 가장 무거우며(1,719 kg), 유일하게 8기통이고 6,100rpm에서 252마력의 힘을 내는 알루미늄으로 된 3,900cc 엔진을 장착했다. 210마력의 6기통 3,000cc 엔진을 탑재한 모델도 있다.

링컨 LS는 최적의 무게 배분(앞뒤 비율이 거의 50-50), 주행 안정성 , 전륜구동차 특유의 토크-스티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험에 참가한 3종의 미국 자동차 중에서는 유일하게 후륜구동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링컨의 이런 노력은 탁월한 성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8기통 엔진 덕분에 LS는 가속력에서는 정상급(96km까지의 순간 가속 시간 7.5초)이지만 제동거리는 중간급이다. 그러나 지그재그 주행에서 LS는 핸들 조작에 천천히 반응했으며 이중차선 변경 주행에서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형 타이어가 포함된 고가의 스포츠 패키지를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문에서 모두 최하위에 머물렀다. 역시 덩치가 크다 보니 순발력에서는 불리한 듯하다.

LS의 중량감은 4개의 길고 육중한 문,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넘어 달릴 때도 안정된 주행감을 보여준다는 데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뒷좌석은 여유있고 쾌적하다. 다만 가운데 자리에 앉은 사람이 발 놓을 자리가 다소 비좁다. LS는 저음으로 조용히 움직인다. 역시 부드러움에서는 8기통을 따라갈 수 없는 듯하다. 5단 자동변속장치 덕분에 스로틀을 최대로 연 상태에서 1단에서 2단으로 기어를 바꿀 때도 rpm이 600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핸들링은 시험에 참가한 세 종의 전륜구동차에 비해 훨씬 우수하다.

메르세데스-벤츠 C320은 첫눈에는 링컨 LS를 10분의 9로 축소한 정도로만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볼수록 꼼꼼한 배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앞좌석과 뒷좌석 탑승자의 머리를 측면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커튼을 포함하여 모두 8개의 에어백이 장착돼 있다. 브레이크 장치는 ABS를 뛰어넘는 수준. 뒷좌석의 쿠션과 등받이를 접으면 트렁크 공간이 대폭 늘어난다. 모든 손잡이와 각종 수납공간의 덮개는 사용자의 편의성을 완벽하게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단추를 누르면 숨겨져 있던 컵받이가 NASA에서 쏘아올린 우주선처럼 스르르 튀어나온다. 운전석의 실내등 위치도 자그만치 6군데나 있다. 메르세데스는 운전자가 복잡한 스위치와 손잡이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3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사용자 매뉴얼을 제공한다.

메르세데스는 차체를 대폭 쇄신하여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과 스트럿식 전방 서스펜션을 도입했다. 메르세데스가 오래 전부터 뒷바퀴에 사용해 온 멀티링크 후방 서스펜션 또한 개선되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차량 특성의 변화다. 새로운 C-클래스 벤츠는 옹골찬 느낌을 준다. 강력한 토크를 자랑하는 3,200cc의 6기통 엔진은 고속 주행을 즐겁게 만든다. 쇼크 옵소버의 조정은 화려한 주행보다는 효율적인 핸들링에 중점을 두었다.

불행하게도 시험 결과는 달리면서 느꼈던 이 눈부신 인상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신형 C-클래스는 빠르게 멈추고 조용히 달리지만,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돌릴 때 약간 휘청거린다. 여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타이어 폭이 좁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나머지 5대가 모두 V등급이나 Z등급의 17인치 고성능 타이어를 장착한 반면 메르세데스의 표준형 C-클래스는 H등급 16인치 굿이어 이글 타이어를 쓴다. 다행히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있다. 2,950달러의 스포츠 패키지를 선택하면 V등급 미쉐린 타이어(여전히 지름은 16인치지만 폭이 약간 넓다)와 가죽 커버가 씌워진 스포츠형 시트, 몇 가지 외장용품이 추가로 제공된다.

메르세데스가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 반면 올즈모빌은 어디까지나 보수적 노선을 견지하면서 오로라를 단장했다. 오로라는 4,000cc dohc 8기통 엔진을 개선하는 대신 GM의 3,500cc dohc 6기통 엔진을 장착한 덕분에 차체가 더 작고 가벼워졌으며 가격도 싸졌다.

신형 V6 엔진은 작동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원한다면 오로라의 1,665kg에 달하는 무게를 자동변속기로 요리할 수도 있다. 96km까지의 순간 가속에 8.4초가 걸려 다소 느린 편이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오로라가 동급 차종 중 연비가 가장 좋다는 사실이다.

제동력은 첫번째 정지 이후에도 양호했고 오로라는 이중 차선 변경 주행에서는 두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육중한 올즈모빌의 오로라가 지그재그 주행에서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메르세데스를 눌렀다는 것은 단연 톱뉴스감.
오로라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 편하다. 부드럽고 조용하며 차분하다. 코너에서는 핸들이 말을 잘 듣지만 중간 지점에서는 다소 뻑뻑하다. 최대 출력 상태로 1단에서 2단으로 변속할 때 핸들과 서스펜션이 미묘하게 돌아가는 것은 전륜구동차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지적할 만한 사항은 변속시의 감촉과 소리가 투박하다는 것, 라디오 버튼이 중앙 콘솔의 너무 낮은 곳에 있다는 것, 앞좌석 쿠션의 바깥 가장자리가 너무 딱딱하다는 것이다. 장점으로는 6대의 비교 차량 중 유일하게 올즈모빌만이 앞좌석 안전띠를 좌석에 바로 붙여 매기도 쉽고 착용감에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비교한 6종의 차들은 모두 성능이 좋았다. 미국 차는 성실성이 돋보이는 반면 유럽 차와 일본 차는 첨단 기술이 인상적이다. 크기와 가격대가 다양한 만큼 최고의 자동차를 고르기는 쉽지 않지만 본지는 두 가지를 추천하고 싶다. 20, 30대라면 렉서스 IS 300을 권하고, 서른 문턱을 넘어 중년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는 메르세데스를 추천한다.
<감수: 현대자동차 가솔린엔진팀 조영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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