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염병 시대(Plague Time)’라는 책을 출간한 생물학자 이왈드는 다리를 꼰 채 학생들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한 학생이 전염적인 다발성 경화증이 전염적인 유기체에 의해 야기됐을지도 모른다는 발표를 하고 있었다.다른 학생은 자폐증 아이를 출산할 때 계절적 변화로 인한 임산부의 감염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기자가 이왈드 교수와 같이 함께 그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 수업은 거의 웃음거리가 될 뻔 했다. 대부분의 과학도들처럼 기자 또한 통계적인 연관만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이왈드 교수는 바로 이러한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전염병 시대〉에서 대부분 만성질병(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발병하는 모든 병)이 감염에 의해 유발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단지 원인과 결과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료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다발성 경화증과 자폐증에서 공통으로 발견된 연관성을 넘어 진화적인 시점에서 이 경우를 다루고 있다.
이왈드 교수는 암과 심장병 또는 정신분열증이나 강박 신경증 장애 등이 본질적으로 나쁜 유전자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은 너무 진부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유전자들이 오래 전 자연도태로 제거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그는 어떤 유전자들은 사람들을 감염인자에 더 민감하게 만들 뿐이며 이러한 인자들은 만성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왈드 교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점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그는 늘 외롭다. AIDS 바이러스 공동 발견자인 저명한 바이러스 학자 로버트 길로와 같은 일부 학자들이 그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시의 화이트헤드대학 생화학과 암 연구자로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로버트 웨인버그는 “이왈드가 주장하는 대부분 내용은 터무니 없다. 이왈드는 감염적인 매개체가 사람의 질병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만성질병이 인간의 진화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개하는 등 다분히 계산된 주장을 펴고 있다”고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인버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인간의 평균 수명 기대치는 과거보다 현저하게 높다.
대부분 사람들은 암이나 노인성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을 얻을 정도로 오래 살지 못했다. 웨인버그는 “전통적으로 인간 평균 수명은 30∼40세였으며 60∼70세에 명백히 나타나는 유전적 결함에 대해 어떠한 선택적인 압력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왈드는 “과거에 살던 사람중 누구도 오래 살지 못했음을 증명한 적이 없다”며 “우리는 평균수명이 아니라 60∼70세까지 살았던 실제적인 경우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왈드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1984년 동료들로부터 많은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 불리는 박테리아가 대부분의 소화기 궤양을 야기한다는 것을 증명해낸 유명한 호주 의사 베리 마샬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덧붙인다. 당시 마샬의 학설은 본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의해 궤양이 야기된다는 일반적인 개념에 과감히 도전했다.
이와 같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왈드의 학설은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지난 수십년 간 일부 암은 명백하게 감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돼왔다.
경추암과 파필로마 바이러스가 그 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보고에 의하면 경추암의 원인중 많게는 93%까지 성적으로 전염되는 병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CDC는 HIV(미국인중 2천만 명이 감염)에 감염된 대부분의 여성이 경추암이 발병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이왈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약 100년 전 사람들은 경추암의 발병빈도율이 매춘부에게서 더 높았다는 것과 음경암과 경추암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 세기가 지나서야 유기체를 확인하고 전염 원인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카포시 육종을 유발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희귀한 형태의 백혈병을 초래하는 인간의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HTLV I), 그리고 간암을 유발하는 간염 바이러스들도 암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바이러스들을 포함, 다른 바이러스들도 모든 암의 15∼20%까지 원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변이 유전자 혹은 다이어트나 흡연과 같은 비전염적 환경인자가 암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왈드는 유방암을 포함한 다른 암의 원인이 전염적 바이러스들이라는 것이 곧 증명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뉴욕시 마운틴 시나이 의과대학에서 베아트리스 포고가 이끌고 있는 연구팀은 100개의 유방 종양 샘플 가운데 3분의 1이 쥐에게 유선 종양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진 쥐-유선종양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바이러스는 종양 세포에서만 나타났을 뿐, 주위의 건강한 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통제된 환경에서 실험된 샘플 하나만 양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발견된 바이러스가 유방암을 유발한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는 암세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복제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실제 암의 정확한 원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베아트리스는 현재 바이러스가 단순하게 세포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인지, 숙주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돕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이왈드는 그 예로 일본 서부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희귀한 형태의 백혈병을 유발하는 HTLV 1을 예로 들면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가 부족함에도 불구, 전문가들이 가능성을 전혀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이 바이러스는 성적인 접촉과 모유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감염이 된 후 50세이나 60세가 될 때까지 암을 발병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감염된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백혈병을 전혀 발병하지않는 경우도 있다. “HTLV 1의 경우 기정된 감염 규칙을 따르는 수두나 다른 유기체와는 다르며, 집단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전형질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고 이왈드는 말한다.
HTLV 1과 같이 전염적 유기체는 유방암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이를 감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AIDS 전문가이자 HTLV 1의 공동 발견자인 갈로도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도 유방암 병원균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해 이왈드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왈드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방암이 변이 유전자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하기에는 유방암이 너무 흔히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왈드는 이러한 관점을 알츠하이머와 심장병에도 적용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APO E4라 불리는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두 가지 질병에 더욱 감염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왈드는 결점이 있는 유전자가 진화 과정중 일정하게 유지되기에는 너무나 널리 퍼져 있으며(10∼50%가 APO E4보유) 이는 단지 사람들은 감염에 더욱 민감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박테리아 ‘클라미디아 폐렴’이 아주 좋은 예일 것이다.
E4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클라미디아에 훨씬 더 감염되기 쉬우며 일부 연구는 관상동맥 질병과 관련된 지방 세포 병소에 병원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유기체가 질병을 유발시키는지 악화시키는지를 식별해내는 일은 어렵다.
알츠하이머병에서 클라미디아의 역할은 훨씬 더 미미하다. 1998년, 미생물학자인 알렌 허드슨은 25명의 정상인의 뇌 중 한 사람만이 양성으로 나타난 것에 반해 알츠하이머 환자는 23명 중 22명에게서 이 병원균을 발견하였다고 보고했다.
허드슨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발표하기 전 유기체의 존재여부를 입증하는 데만 3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허드슨과 이왈드는 가까운 동료연구자가 되었지만 이들을 가깝게 했던 실제 이유는 상호간의 전문적인 관심 때문이었는지 , 이 분야의 아웃사이더들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을 스스로 ‘유전자 조작자’라고 칭하는 허드슨은 평생을 ‘유전인자들이 어떻게 유기체들의 역할을 돕는가’에 대한 연구로 보냈다. 그는 필라델피아 대학에서 정골요법을 연구할 때 우연한 기회를 통해 알츠하이머에 대해 알게되었다고 한다.
허드슨이 알츠하이머에 대한 자료를 한 학술지에 내려고 제출하였을 때 편집자는 모든 학술지에서 관행적으로 시행하는 동료의 평론을 구했었다. 허드슨은 「클라미디아」라는 잡지의 평론가들이 출판을 권유했으나 알츠하이머 연구가들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학술지 측은 처음에 출판을 거부했으나 일부 평론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결국 출판했다. 허드슨의 이러한 경험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자칫 세력다툼의 소용돌이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유명한 알츠하이머 연구가인 보스톤 브링햄 여성병원의 데니스 셀코이는 알츠하이머와 클라미디아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보는 전문가 중 하나. 셀코이는 알츠하이머와 클라미디아와의 관련성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며“오히려 특정 DNA 변형이 직접적으로 알츠하이머를 야기할 수 있다는 명백하고 확인된 증거가 있으며 이 질병은 대부분 유전적이다”고 말한다.
이왈드 교수는 베리 마샬 같은 세균이론자들이 의학적 제도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한 것처럼 대안적인 해석조차 질병의 유전적 기초를 위해 연구해 온 의학자들에 의해 부인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의학자들이 현존하는 이론에 너무 많은 기력을 소진한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이미 허드슨의 발견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타리오주 해밀턴 시에 있는 맥매스터대학의 클라미디아 권위자인 제임스 마호니가 그랬듯이 네덜란드의 한 연구팀도 알츠하이머와 클라미디아 폐렴사이에서 관련성을 발견했다.
문제는 유기체를 식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문제도 결과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허드슨은 강조한다. 이왈드의 진화적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조부모가 건강 상태에 기여한다는 것에 찬성한다. 문제는 어느 정도나 기여하는가다. 진화적 주장은 원인과 결과는 증명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왈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직접적인 증거를 보지 못할 지라도 우리는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단지 우리가 유전인자와 환경은 중요할 뿐, 감염은 중요하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만성 질병의 감염적 원인을 제외시켜야 할 증거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있었던 다수의 사람들이 죽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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