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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디지털 도서관 정책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

몇 해 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백악관 인턴 직원간에 ‘부적절한 관계’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이 사건을 수사한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가 미국 의회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445쪽의 보고서를 세계 각국에서 수천만 명의 독자들이 순식간에 다운로드 받았다고 한다.

다만 내용이 낯뜨거운 수준의 성관계 묘사가 대부분이라서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데 그쳤고 뭔가 교훈이 되거나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스타 검사의 보고서는 정보가 네트워크를 타면 얼마나 빨리 또 널리 전파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례가 됐다. 만약,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정보의 보고가 있어 그 주옥같은 내용을 디지털화하여 네트워크를 통해 서비스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디지털 도서관일 것이다.

책이 없는 도서관, 벽이 없는 도서관, 가상 도서관, 사이버 도서관, 논리상의 도서관, 네트워크화된 도서관. 이것들이 모두 디지털 도서관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명칭들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도서관은 말 그대로 ‘책을 모아놓은 집’이란 뜻인데 책이 없는 도서관이라거나 벽이 없는 가상의 도서관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면 ‘도서관’이란 용어 말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어야 옳지 않을까?

온라인에서 쓰이는 ‘도서관’ 대체 용어 필요
디지털 도서관은 기존의 ‘도서관’이란 이름과 기능, 시스템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무엇’이다. 그래서 일본 동경대의 아카히로 구보타 교수는 “디지털 도서관은 과연 도서관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디지털 도서관은 전통 도서관에서는 다루지 않았거나 또는 다룰 수 없던 종류의 정보와 자료를 포용할 수 있다. 가령, 강의 노트, 실험 데이터, 각종 설계도면, 그래픽 모델,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데이터, 회의 개최 정보 같은 것을 서비스할 수 있다. 자기 도서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도서관 또는 정보센터가 제공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디지털 도서관의 중요한 역할이다.



디지털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뛰어난 검색 엔진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찾는 시간도 엄청 줄일 수 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작은 공간에서 최소의 인력과 예산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면서도 서비스 대상 이용자와 지역을 무한대로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가 일하는 LG 상남 도서관(http://www.lg.or.kr)은 과학기술 분야의 최신 학술 자료만 모아 서비스하는 전문도서관이며 회원제 도서관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 동안 줄잡아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했으며 그들에게 약 570만 편의 소중한 학술논문 원문을 온라인으로 제공했다.
선진국의 디지털 도서관 정책
하지만 LG상남도서관의 개관 이후 뜨겁게 달아오르던 디지털 도서관의 구축 열기는 지난 해를 고비로 사그라지고 있다. 디지털 도서관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필수적인 도서관 자료의 디지털화와 전송 서비스를 불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저작권법이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여기서 길게 저작권법의 문제점을 짚을 수는 없지만 일방적으로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를 내세우고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접근 권리는 ‘제도권’인 도서관 안에서조차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저작권법이 전통적으로 유지해오던 저작자의 권리와 저작물 이용자의 권리 사이의 균형은 허물어졌다.
사실,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민간에서 할 일이 아니라 정보 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미국의 DLI(Digital Library Initiatives)를 비롯해 일본, 캐나다 등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국가 차원의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름은 거창한 국가전자도서관(http://www.dlibrary.go.kr)이라는 것이 있지만,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몇몇 도서관과 정보 제공 기관의 기존 서비스를 연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도서관의 무한한 가능성
미국이나 일본이 10년 가까운 기간을 두고 다양한 민간 기관들을 참여시켜 연구하고 실험하여 문서, 악보, 지도, 사진, 음향, 동영상,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인터넷상에서 교환하는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우리나라의 프로젝트는 마치 졸속 공사처럼 급조된 느낌이 다분하다.
이용되지도 않을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과 똑같다. 예산, 인력, 시간의 낭비이며 국력의 소모일 뿐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국가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치밀한 계획 아래 나라의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추진되어야 한다. 먼저 국민의 정보 니즈(Needs)를 조사해 무엇을 디지털화해야 할 것인지를 정하자. 그 다음에 작업 대상을 목록화시킨 후 작업 분담 책임 기관을 선정해야 한다. 디지털 도서관은 환상이 아니다.유용한 콘텐츠가 있으면 이용은 절로 되기 때문이다.

정윤석 LG상남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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