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지는 미 관세청 정찰지원본부가 비행장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대원들은 막강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무장 마약 카르텔을 상대하기에는 다소 왜소해 보이는 비행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비행기는 1950년대에 설계한 것으로 원래 해군의 잠수함 추적기로 사용하다 1990년 퇴역한 ‘P-3 오리온기’다. 현재 P-3는 반구형의 레이더를 장착하고 잠수함이 아닌 마약 밀매자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를 추적하고 있다.
미국 세관에 근무하는 조종사 게리 서드호프는 세 사람이 탈 수 있는 조종석으로 사뿐히 올라간다. 그는 스위치를 몇 개 조작하더니 주황색 불빛으로 주변을 밝힌다. 계기판은 원래의 아날로그 장비와 최첨단 디스플레이 화면이 뒤섞여 있다. 안전 책임자인 부조종사가 최종 점검을 마친 후, 4개의 대형 터보 프로펠러를 가동한 P-3는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받아낸다. 활주로를 따라 육중하게 전진하는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습기 찬 공기를 가른다. 속도가 충분히 올라가 서드호프가 조종간을 당기자 비행기는 맑은 밤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른다.
코퍼스 크리스티 비행장의 조명등이 멀어지면서 비행기는 멕시코만을 크게 휘돌아 순항 고도로 올라선다. 이 비행기는 미 관세청이 보유한 10대의 P-3 오리온기 중 하나다. 관세청은 내년까지 이 비행기의 보유 대수를 16대로 늘릴 계획이다. 조종실 뒤에서는 3명의 시스템 탐지 요원이 레이더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지상부터 고도 3만m까지의 상공을 통과하는 비행물체를 샅샅이 추적한다. 다시 그 뒤에는 중앙선실이 있고 여기에는 상황판, 조리실, 화장실, 3개의 침상이 있다. 정규 근무 시간은 8시간 남짓이지만 요주의표적(TOI; Target of Interest)을 탐지해 추격에 들어가면 20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게리 서드호프 조종사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대형 트럭처럼 육중하게 돌진한다. 30년도 더 된 P-3는 겉모양은 볼품 없지만 공중에서 마약 밀수를 탐지하고 추적하는 데 따르는 심각한 어려움을 제거하기에는제격이다. P-3는 정찰용으로 쓰이는 공중조기경보기로 착각하기 쉽다. 상부에 장착된 돔형의 레이더가 AWAC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450kg의 레이더를 지탱하기 위해 P-3 오리온은 최근 기체를 보강했다. 이 레이더는 원래 E-2 호크아이에 실렸던 것으로 항공모함 전투 함대 주변의 ‘전반적 동태’를 파악하는 데 사용됐었다. 호크아이 작전 반경이 2500km인 반면에 P-3는 7400km에 달한다. P-3는 최첨단 전투기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고 유지도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서드호프는“최첨단의 공중조기경보기 형태의 이 특수임무기는 미 관세청 외에 누구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자랑한다.
P-3는 적기의 활동저지에 적격이다. 장거리 비행능력과 시속 640km의 순항속도를 자랑하는 P-3 오리온은 밀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첨단 컴퓨터와 통신장비로 단단히 무장한 이상적인 추적·통신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서드호프는 “팔방미인형인 이 비행기는 못하는 것이 없다” 며 “아주 위험한 조건에서도 저속으로 저공 비행이 가능하며 흙먼지가 날리고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도 착륙하는가 하면 공중조기경보기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를 수도 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동안 P-3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다른 레이더 탐지 장비들과의 공조를 통해 P-3는 마약 밀수업자들로 하여금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루트를 개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세관 관리들은 요즘 마약 밀수업자들은 국경선을 바로 앞둔 지점에 착륙해 배나 인편으로 마약을 분산해 운반하거나 밀봉된 화물을 바다에 투하해 쾌속정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고 귀띔한다.
서드호프는 이어 “P-3가 출동하면 보통 두 세대씩 무리 짓고 있는 비행기들을 도처에서 발견한다. 이 비행기들은 일종의 마약 호송기들로 우리가 추적하기 시작하면 두 대, 세 대 심지어 네 대씩 갑자기 출몰하기도 하는데 일단 추격에 들어가면 결코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삼엄한 경비때문에 공중을 통해서는 더이상 마약 운반에 따른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비행이 시작된 지 몇 시간 후, 서드호프는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 부근이다. 4,800m의 순항 고도에 도달한 비행기는 정찰지역의 일차 궤도비행에 들어간다. 미국 남서부 국경선 지역의 갈색 구름이 비행기 밑으로 굽이치며 유유히 흘러간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P-3 오리온은 이 지역의 파수꾼 노릇을 할 것이다.
레이더 요원들은 어느새 헤드폰을 끼고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두 명은 밀수업자의 동태를 감시하며 P-3 오리온의 항로와 인근 구역을 관찰한다. 비행기 위에 달린 직경 7.32m의 회전 레이더는 한 번 회전으로 50만 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을 감시하며 분당 6회의 새로운 정보를 쉴 틈 없이 내보낸다.
모니터에는 레이더가 받은 정보가 다양한 색깔로 표시된다. 해상이나 지상의 표적물은 동그라미, 네모와 V자를 뒤집어놓은 기호는 공중 표적물로서 요주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표적기의 속도와 방향, 고도와 관련된 정보는 물론 의심이 가는 비행기는 집중적으로 추적할 수도 있다.
공중에 떠있는 비행기가 있으면 ‘삐리릭’소리가 나며 화면에 뜬다. 공중에는 문자 그대로 수백 대의 비행기가 항상 떠 있다. 전송 및 수신신호를 보내지 않고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공으로 느리게 비행하거나 저공으로 아주 빠르게 비행하는 물체는 특별 경계 대상이다.
레이더 요원들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마치공군기지에 있는 관세청 공중·해양저지공조센터로 의심이 가는 비행기를 즉시 조회한다. 일반적으로 레이더를 탑재한 돔기는 번개라 불리는 ‘P-3기’와‘더블 이글’로 짝을 이룬다. 돔기가 수상쩍은 비행기를 발견하면 관세청은 번개를 출동시킨다. 번개가 가장 자랑하는 장비는 전방 투시 적외선 시스템. 기체 앞머리 쪽에 설치한 이 시스템은 요주의표적의 정체를 집요하게 분석한다. 이 시스템은 밤낮을 불문하고 놀라울 만큼 상세한 흑백 사진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돔기는 레이더상에서 개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다음 번개를 출동시킨다. 표적물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번개는 F-15 전투기에서 사용되는 APG-63이라는 독자 레이더를 가동한다. APG-63은 빔 폭이 비교적 좁아 표적기의 고도, 속도, 방향, 가속률 등을 상세히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번개의 레이더는 적외선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어 16km 거리에 있는 표적기의 영상을 정확히 제공한다.
번개가 보유한 또 하나의 첨단 장비는 자이로스코프로 균형을 잡는 광학망원경이다. 미 관세청 공중안정광학시스템이라 불리는 이 장비는 놀라운 초점 거리를 가진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다.
서드호프는 “이전에는 500m까지 접근해 쌍안경으로 관찰해야 했으나 이 카메라를 사용하면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22km에서 32km 사이의 먼 거리에 있는 물체도 식별할 수 있다. 이로써 10km 떨어진 거리에서 비행기 꼬리 부분에 새겨진 30cm 크기의 숫자까지 식별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한다.
번개에 실린 이 망원경은 옆쪽에 달린 오목렌즈 창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두 개의 화면을 통해 원거리에서 촬영한 전체 모습과 확대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은 마치 비디오 게임화면을 연상시킨다.
서드호프는 “망원경과 적외선 시스템이 레이더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표적물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레이더의 생성 정보는 정확하게 컴퓨터에 입력되어 다시 망원경이나 적외선 시스템으로 재입력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표적위치 확인 매뉴얼도 조종실 안에 있기 때문에 조종사는 육안으로 광학 시스템을 원하는 표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P-3 오리온에 장착된 레이더의 임무는 의심이 가는 비행체를 탐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마약 루트로 알려진 구역에서 표적을 찾는다”고 서드호프는 말한다.
문제의 비행기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서드호프의 무선통화가 시작된다.
“신호가 들리나, 오버! 신호가 안 오면 그때부터 비상! 표적기의 시착발을 말하라, 오버! 현지시각을 말하라! 지금쯤 저공비행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니 번개를 급파하겠다! 오버!”
다음 단계는 밀수업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P-3 레이더의 지휘와 통제 아래 세관 소속 비행기는 투하 지점까지 표적기를 끝까지 추적한다. 최근 마약업자들이 흔히 쓰고 있는 방법이지만 대기중인‘쾌속정’이 있는 해상으로 마약을 투하할 경우, 세관당국은 자체 공격조를 해상으로 파견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가 육지에 착륙할 경우 관세청이 보유한 ‘시콜스키 블랙호크’ 헬기에 분대 규모의 특공대를 실어 파견해야 한다. 이 헬기에는 사건 현장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야간조명등과 적외선 투시 장치가 있다. 블랙호크 헬기에는 또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연료 탱크가 실려 있어 시속 240km의 속도로 6시간동안 비행할 수 있다.
저지 작전의 전체적 조율은 공중·해양저지공조센터가 맡는다.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있는 이 센터말고도 미국에는 이런 지휘소가 3개가 더 있지만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기관은 이곳뿐이다.
이 센터는 푸에르토리코를 포함해 카리브 해와 미국 남부 전역을 레이더로 ‘샅샅이’ 감시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민·군·관 레이더 기지에서 물샐틈 없는 정보를 보고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리버사이드의 레이더 센터가 미국 영공은 물론 국경 지역의 상공을 비행하는 모든 물체를 족집게처럼 잡아낼 수 있다.
드디어 오늘의 비행 임무가 끝났다. 서드호프는 육중한 비행기의 기수를 돌려 코퍼스 크리스티 비행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비행에서는 특별한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마약 밀수 조직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 이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세관감독관을 역임한 레이먼드 켈리는 “P-3 프로그램은 저렴한 비용으로 마약 밀수를 저지하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마약을 실은 비행기가 월경(越境)하는 것을 저지하고 사실상 봉쇄하기 위해 이만큼의 최소 비용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치밀해지는 마약업자들의 행태는 양질의 비행정찰기 수를 계속 늘려야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감수 : 한국 항공대학교 장영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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